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 영화

“클로버필드”는 고층 빌딩 크기의 거대한 괴물이 어느날 밤 도시에 나타나 도시를 부수고 군대가 괴물과 싸우는 재난이 벌어진다는 일본식 정통 괴수 영화의 줄거리를 따라 가는 영화입니다. 비슷한 옛날 영화들과 한 가지 선명한 차이점은, 군대 관계자나 학자, 괴물을 좌지우지하는 영웅이 아니라, 그냥 이 상황에서 도망가는것만이 목표인 일반 시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표현을 잘 해내기 위해 영화가 주인공 중 한 명이 촬영한 비디오 영상의 형태로 되어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포스터)

이 아이디어는 아주 신선하게 잘 들어 맞고 있었습니다. 이런 커다란 괴물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괴물 표현이 너무 적으면 답답하고, 너무 많으면 특수효과가 엉성해진다는 것인데, 이 수법으로 둘 다 때우고 있었습니다.

괴물 영화에서는 긴장감을 높이고 뜸을 들이기 위해, 초장에 괴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괴물의 발자국만 보여 준다든가, 괴물이 부수고 남긴 흔적만 보여 준다든가 하면서 슬쩍슬쩍 모습을 가리며 관객을 기다리고 안달나게 합니다. 이런 것은 전통적인 연출 수법이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보다보면 답답하고 짜증스러울 때도 많다고 생각 합니다.


(언뜻언뜻 보이는 괴물)

이 영화는 주인공들 자체가 괴물과 직접 마주할 일이 없고, 없기를 원하는 그냥 일반인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말이 되게 초장의 괴물 등장을 피해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언뜻언뜻 멀리서 보이는 괴물의 모습만을 보고, 그것도 다 특수효과 꾸미기 좋은 밤 장면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그저 긴장감 높이고 특수효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연출 수작이 아니라, 말이 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룻밤 동안의 일을 녹화한 영상이라는 것이니까 밤일 수 밖에 없고, 주인공들은 최대한 빨리 도망치는 것이 목표이니까 괴물과 마주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영화 후반, 결말로 갈 수록 괴물의 등장은 점점 더 많아지고 결말 즈음 가면 어느 괴물 영화에 못지 않게 후련하게 괴물의 모든 모습을 다 잘 보여 줍니다. 이런 구성은 초장에 괴물을 잘 안 보여주고 뜸 들이는 다른 괴물 영화들이 노리고 꿈꿀 만한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꼭 안 그런 척하면서 멋드러지게 그런 재미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막판이 되면 후련하게 보여 주는 괴물 모습)

일반인 입장에서 그냥 촬영한 비디오를 보여 준다는 점 때문에, 신비감과 궁금증으로 재미를 더하는 효과도 무척 좋았다고 생각 합니다. 괴물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습성인 것인지,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 현재 상황이 어떤지, 군대의 작전은 무엇인지, 일반인 입장에서는 결코 다 알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적당히 추측하고 상상해 볼만한 단서만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더 알고 싶어지고 더 신비해집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더 실감은 납니다.

어마어마한 난리가 났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괴물이 바로 저 앞에 있는데, 알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무섭기만한 이 긴긴 재난의 밤에 다들 놀라서 소리지르며 뛰어 다니는 풍경이 화면에 담기니, 어떤 종말론적인 풍경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 합니다. 괴물 영화이지만, 화끈한 파괴와 싸움 장면만 기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느끼는 그 공황 상태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이 신선하기도 했고, 나중에 더 비중이 커지는 괴물 이야기의 힘도 더 실어준 듯 합니다.


(박살난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웅성거리는 시민들)

그러니, 이렇게 쌓아올린 이야기에서 막판에 괴물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면, 거대한 우주의 알 수 없는 일 가운데에는 인간이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뭔지 알 수 조차 없는 것이 있다는 공포감을 드러내는 코스믹 호러와도 통하는 감성이 보일 정도입니다. 바다와 관련 있고 벌레처럼 보이는 괴물 모습도 코스믹 호러와 통하기도 하거니와.

애들 장난 같았던 이야기 소재를 최대한 사실적이고 진지한 방향으로 풀어 보자는 식의 아이디어가 꽤 잘 풀린 영화였다고 생각 합니다. 9.11 테러의 사회상이 그대로 영화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또다른 가치였습니다. 겁에 질린 뉴욕 시민들이 어마어마한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끝없이 걷고 있는 군중이 맨하튼을 벗어 나려는 풍경은 21세기 초의 테러가 어떤 괴물로 느껴졌는지 영화 속에서 잘 비유해낸 순간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초반 도입부에서 잠깐 주인공들 소개하는 대목이 약간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을 뿐, 독특하고 좀 더 새로운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에 성공하면서도, 끝까지 보면 거대한 괴물이 나오는 영화에서 기대할 만한 전통적인 재미도 충분히 잘 느낄 수 있었던 기억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그 밖에...

실제 캠코더 촬영 분량에 걸맞게 80분 정도 밖에 안되는 길이의 영화입니다. 음악도 없는 영화입니다.

그러고 보면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가짜로 만든 뉴스만으로 비슷한 거대한 괴물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방송국 스튜디오도 박살나면서 방송이 갑자기 끊기는 모습으로 꾸며도 될 것이고.

IMDB Trivia를 보면 괴물 디자이너는 이 영화의 괴물은 아기 동물로 낯선 환경에서 겁먹고 엄마를 찾기 위해 날뛰는 것 때문에 그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랍니다. 이 역시 그럴싸하면서도 색다른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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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렉터블로그 : 2016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2016-12-31 21: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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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리퍼 2016/07/09 11:14 # 답글

    트리비아 듣고보니 더 재밌어지네요.
  • 게렉터 2016/07/12 17:21 #

    괴물 디자인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데, 영화에서 보면 제 역할을 톡톡히 잘하는 모습이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2016/07/09 12: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7/09 12: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7/12 17: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rumic71 2016/07/09 15:43 # 답글

    말씀하신 것과는 살짝 다르지만, <대괴수 동경에 나타나다>라는 영화가 있었죠. 시골에서 뉴스 보도만으로 괴수와 접한다는 플롯이었습니다.
  • 게렉터 2016/07/12 17:21 #

    뉴스 보도 장면에 비교적 많이 집중한 "디스트릭트 9"이 저는 상당히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영화는 "싸인"에서 외계인에 대한 약간 거리두는 소시민 시각과 비슷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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