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여인 (La Femme Infidele, 1969) 영화

1969년작 “부정한 여인”은 제목과는 달리 남편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주 행복해 보이게 잘 사는 것 같은 부유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남편이 있는데, 우연히 부인이 바람 났는지 의심하게 되고 그것을 점점 따라가다가 범죄도 한 건 저지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남편에게 집중해서 간단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따라 가는 방식입니다만, 그 과정에서 일어날만한 조마조마한 사연들을 꾸준히 잘 펼치고 있어서 흥미 있게, 재미 있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이 영화는 시작 이후 미셸 부케가 연기한 남자를 중심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평화롭게 살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교외의 그림 같은 집에서 돈 잘 벌고 별 고생은 하지 않는 직장에 다니며 주인공은 여유롭게 살고 있고, 부인은 우아하고 인자하며, 아들은 귀엽고 똘똘합니다. 이 영화에서 미셸 부케의 연기는 최고 수준이어서, 이 대목에서 착하고 돈 많은 잘 사는 남자를 파노라마로 화면 위에 펼쳐 보여 줍니다. 못 그린 그림보다 잘 그린 그림이 그리기 어렵듯이, 화 잘내는 사람, 음침한 사람, 비열한 사람보다 이렇게 “멋있게 잘 사는 모습”을 그럴싸하게 보여 주는 것이 더 심오한 연기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영화 시작 무렵 미셸 부케의 모습은 평화로운 것이 거의 도가 지나칠 정도라서, 이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면 무슨 착한 어린이처럼 보일지경입니다. 덩치가 작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머리가 허연 중년 아저씨가 이렇게 보인다면 뭔가 이상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이상한 느낌은 초장의 평화로운 장면조차도 곧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한 위선이라도 되는 듯이 계속 아슬아슬함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하다 못해 이렇게 평화로우면 너무 재미 없을 것 같으니 부인이 뭔가 어긋나지 않을까 하는 냄새도 풍기고 말입니다.

게다가 초반을 지나면서, 주인공이 부인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범죄로 빠져들면, 시작 장면 주인공의 이 차분한 모습은 완벽히 대조를 이루어 감정을 더 살리고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정원에 서 있는 아들과 아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 가는 지 끝까지 다 밝혀 보면서,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는 오쟁이 진 남편이 바람난 부인을 의심하고, 추적하고, 괴로워하고, 바람 났다는 사실을 알아낸 상황에서 부인을 대하는 그 속터지는 상황을 하나하나 잡아 내서 저마다 그 긴장감을 살려 냅니다. 부인이 정말 바람을 피웠을까 안 피웠을까,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물어 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 바람난 상대방은 어떤 놈일까, 결정적인 속터지는 궁금증을 착착 잡아 냅니다. 일일연속극의 결정적 장면에 나올 만한 아슬아슬한 내용을 이것저것 뽑아서 계속해서 던지는 것입니다.

주인공은 부인에게 왜 바람피웠냐고 따지지는 못해 알면서도 넘어 가고, 대신 바람 피운 상대를 찾아 갑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는데, 처음에는 조용히 진행되다가 순간 흥분해서 상대를 없애 버립니다. 그리고나면, 이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죄를 숨기기 위해 노력하고, 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고,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는 이야기들이 또 차례로 나오면서 영화 끝까지 긴장감을 지켜 나가는 겁니다.

이렇게 짜놓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한 줄기로 쭉 이어지는 이야기이고 천천히 나아 가는 내용이지만 지루할 새가 별로 없었습니다.

나중에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고 숨기려고 노력하는 대목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았던 영화들에서 뽑아 와 모방해 내용을 채워 넣기도 했습니다. 시체를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는데 자동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도와주려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의 에피소드 하나와 같습니다. 다만 그때는 경찰이 달라 붙었고, 이번에는 오지랖 넓은 파리 시민들이 우루루 달라 붙는다는 점만 다릅니다. 연못에 시체를 빠뜨린 뒤에 “얼른 가라앉아라, 얼른 가라앉아라”라면서 기다리는 장면은 “싸이코”와 같습니다. “싸이코”에서는 자동차를 통째로 빠뜨리고, 이 영화에서는 차가 벤츠라서 아깝기 때문에 시체만 따로 빠뜨린다는 차이가 있는 정도 입니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을 프랑스의 히치콕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만큼 모방한 점이 잘 보이는 영화도 몇 안 될 것입니다.

부인이 바람난 것을 알았는데도, 어쩔 줄을 모르는 너무나 예의 바른 주인공이 마음의 고통을 받는 것은 참 오묘하게 표현 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속 터지고 괴로운 상황일텐데, 이 영화에서는 소리 지르는 장면, 화내는 장면 하나 없이 참고 또 참으며 태연한 척하고 웃는 얼굴을 띄우며 버티는 모습으로만 나타납니다. 이렇게 화나지만 웃고 있는 척하는 장면을, 웃고 있지만 화내는 감정을 갖는 척 연기해서 표현하는 미셸 부케의 솜씨는 다시 빛이 났습니다.

영화 연출 역시 미셸 부케의 그 묘한 연기를 그저 조용히 보여줄 뿐 입니다. 조잡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독백이랍시고 “아아아, 마음이 괴롭구나. 그렇지만 어찌한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같은 나래이션 따위가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부인을 의심하고 추적하고 자신은 괴로워하는 내용인데, 정작 화면에 보이는 것은 주인공의 예의 바른 얼굴 뿐이라는 겁니다.

앞 뒤의 미묘한 표현, 살짝 나온 서글픈 음악, 이야기 연결 형태 때문에 그 편안한 얼굴 뒤에 꾹꾹 눌러 참는 고통은 감춰져 있는 것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린왕자에게 상자를 그려 주고 양은 그 상자 안에 있다는 식의 연출인데, 그 그림을 어린왕자가 좋아하듯이 그래서 정말 감정이 더 묘하게 전달 되는 형국입니다.

이 주인공의 아무 일 없는 척하는 얼굴이 위선적이라면, 이 영화의 연출 자체도 위선적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표현하는 내용과 방식이 맞아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이 절정을 이루는 대목은 주인공이 부인의 바람난 상대를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은 바람난 상대 남자를 찾아 가서도 “에라이 개자식아”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부인과 그냥 서로 사생활에는 간섭하지 않고 살기로 협의 했으므로 아무 거리낄 것 없다고 거짓말 하고는 별 유감 없으니 이야기나 하자며, 그 남자와 웃으며 대화하려고 합니다.

남자는 얼떨떨해 하지만, 도망가야 하는 줄 알고 겁먹었는데 그 말을 듣고 안심합니다. 그리고 부인과 바람 피운 이야기와 부인에 대해 자기가 교류하고 느낀 이야기를 주인공과의 대화 중에 털어 놓습니다.

그런 내용 중에는 당연히 남편인 주인공의 심장을 꽝꽝 내려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화면은 주인공의 얼굴을 비춥니다. 주인공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 이야기를 듣는 얼굴입니다. 그렇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온 힘을 다해 참으며 겨우겨우 짓는 억지 미소라는 것은 아무 설명이 없어도 관객 모두 다 알 수 있습니다. 잠깐 반짝이는 미셸 부케의 눈동자는 그 터져 나오는 슬픔을 억누르며 흘리는 눈물이 비친 것만 같습니다.

이러다가 결정적인 순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주인공은 남자를 조각품으로 후려 갈겨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남자 입장에서는 실실 웃고 있는 주인공이 갑자기 돌변해 공격한 것이겠지만, 관객은 왜 저러는지, 어떤 감정 변화 때문에 저러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화면에 충실히 담겨 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선 순간부터, 앉아서 말을 붙이고 술을 한 잔 마시고, 주위를 둘러 보는 그 모든 시간이 별 생략 없이 영화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부인의 바람난 상대를 만나는 그 결정적인 대면이 충실히 효과를 발휘하도록 세세히 다 나와 있습니다. 배경 음악도 없이 조용히 펼쳐지는 장면이지만, 마치 몇 분 동안 길게 이어지는 오페라 절정 장면의 아리아 같은 역할을 하는 느낌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조각품을 휘두르는 순간은 장면이 짧게 짧게 잘려 연결되면서 연출이 대단히 좋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하게 상황을 표현 합니다. 잠깐의 순간의 연출이지만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그 상황을 생생히 지켜 보게 만듭니다. 아예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그 옆에서 서서 지켜 보는 것보다도 이 영화의 장면이 더 생생합니다. 옆에 서서 범행을 목격하는 제3의 관찰자 시점 뿐만 아니라, 조각품을 휘두르는 주인공의 시선으로도 그 순간을 느끼고, 얻어 맞는 남자의 입장에서도 그 순간을 느낄 수 있게 편집이 휘감아 주고 있습니다. 좀 과장하면 “싸이코”의 샤워실 장면과 맞먹습니다.


(스테판느 오드랑(왼쪽)과 미셸 부케(오른쪽))

결말 무렵이 되면 형사들이 추적 끝에 부인을 찾아 오고, 부인과 주인공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부인은 가족들 앞에서 “그 사람이 내 바람난 상대요”라고 대답하지 못하니, 거짓말을 합니다. 부인의 거짓말을 주인공은 뻔히 들으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 합니다. 한편 주인공도 “내가 그 사람을 저승으로 보냈소”라고 실토하지 못하니 거짓말을 합니다. 나중에 부인은 주인공이 그 사람을 없애 버렸다는 단서를 얻지만, 역시 드러내지 않고 모른 척 합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서로서로 한 쪽이 바람을 피웠고 다른 쪽이 그 상대방을 처치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같이 모른 척 하는 개같은 상황이 됩니다. 이것은 한쪽이 바람났던 부부인 두 사람 사이에 묘하게 다시 끈끈한 유대가 돌아온 느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지로 뛰어 오른 위선을 보여주는 듯 하기도 합니다.

결말은 계속해서 형사들이 찾아 오자, 주인공은 부인에게 “나는 정말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해요”라고 말하고는 형사들을 따라가 뭐라고 말하는 겁니다. 정확한 것은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은 아마 자수를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멀리 보이는 부인과 아들의 모습이 화면에 담깁니다. 숲에 둘러 싸인 아름다운 정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모습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환상의 세계에 나타난 망령처럼 기이해 보입니다. 주인공이 부인의 진실한 마음 바닥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깊은 허망감을 남기기도 합니다.


(스테판느 오드랑)

중심 내용을 꾸며 주는 다른 장점들도 분명했던 영화였습니다. 음악이 조금만 사용되는 편인 영화이지만 단정한 곡조로도 불길하고도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만이었고, 파리 시내의 현실 풍경과는 단절 되어 있는 교외의 집을 화면에 촬영한 솜씨도 훌륭했습니다. 현실감 있는 집처럼 보이면서도, 또다른 세계처럼도 보입니다. 뭔가 진짜 같지 않은 느낌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부인을 가두는 곳으로 볼 수도 있을만 했습니다.

단점을 찾는다면, 저는 범죄를 추적하고 사실을 밝히는 쪽의 이야기가 너무 없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구질구질하게 꼭 들어 가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 주인공이 노력하고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장면도 아주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 합니다. 갑자기 죄를 저지른 주인공이 점점 더 고난에 빠지고 구렁텅이로 빠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렇게 죄를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을 넣었다면, 어떻게 들키는가에 대한 내용도 조금 더 살려도 좋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이나 충격 없이 너무 쉽게 결말로 뽑는다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한 줄기로 된 내용이라서 구조가 아주 간단한 영화라서 내용이 좀 허하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만큼 결말 무렵 묘한 처지가 된 부인의 감정과 입장을 드러내는 내용도 조금은 더 많았으면 어떤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
스테판느 오드랑이 하필이면 “엘렌(Hélène)”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연기하고 당시 그 남편이었던 클로드 샤브롤이 감독을 맡은 영화로 60년대말 70년대초에 몰려 나온 4편의 영화 중 첫 편입니다. 대강 엘렌 시리즈라고 부를 만한 영화들인데, 흔히 엘렌 사이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대강 엘렌 시리즈라고 부를 만한 영화들인데, 흔히 엘렌 사이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네 편은 나온 차례대로, “부정한 여인”, “도살자”, “파멸”, “어두워지기 전에” 입니다.

엘렌 시리즈 중 마지막 영화인 “어두워지기 전에”와 저절로 견주어지는 영화입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역시 미셸 부케와 스테판느 오드랑이 교외에서 사는 부유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일군 부부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둘 다 미셸 부케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도 같고, 미셸 부케의 극중 이름이 샤를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다만 “어두워지기 전에”에서는 미셸 부케가 바람 나는 역할입니다. 두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같은 부부인데, 하나는 여자가 바람 났을 때를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남자가 바람 났을 때를 보여 준다는 식으로, 두 가지 다른 경우를 보여 줬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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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6/09/05 13:20 # 답글

    어째 다이안 레인의 언페이스풀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하긴 그 영화도 리메이크였지만...
  • 게렉터 2016/09/05 13:46 #

    정확히 보셨습니다. 리처드 기어랑 다이안 레인 나오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의 리메이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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