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마약단 (Un Flic, 리스본 특급, 1972) 영화

1972년작 “불타는 마약단”(한국 극장 개봉 때 "리스본 특급"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적도 있습니다)은 알랑 들롱이 범죄자가 아니라 형사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그 상대는 최고 수준의 전문가부터 처음 범죄를 저질러 보는 듯한 초보자까지 다양하게 엮인 범죄단입니다. 이 범죄단이 은행을 털고, 뒤이어 마약까지 훔치는 일을 벌이는데, 알랑 들롱이 이끄는 경찰팀이 이들을 추적한다는 것이 영화 내용입니다. 큰 범죄가 벌어집니다만 요란하기 보다는 천천히 느릿느릿 진행되는 영화로, 그 고요함 속에서 한탕으로 울적한 자기 신세를 바꿔 보려는 범죄자들의 작전과 도피가 이어집니다.


(포스터)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점은 알랑 들롱이 형사이고, 그 때문인지 형사쪽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형사 쪽 이야기보다는 범죄자쪽 이야기가 훨씬 더 재밌었습니다. 개성 풍부한 사람들도 더 많고, 더 절절하고 아슬아슬한 상황도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 끊어 먹고 잘라 먹어 가며 형사 이야기가 나오니, 안 그래도 느리고 느긋한 영화인데 더 내용이 끊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게다가, 형사 쪽의 수사 방법도 결국 “평소 알아 두었던 정보원을 열나게 몰아 붙인다”는 것 한 가지일 뿐인 셈이라 크게 신기한 것도 없었습니다.


(알랑 들롱)

한편으로는 앞뒤 사정을 잘 알려 주지 않고 모호하고 신비롭게 넘어 가는 것이 좀 지나치게 과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알랑 들롱과 범죄자들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하는 문제에서부터, 도대체 막판에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며 반대로 또 왜 얼른 일을 끝내려 했는지, 중요한 정보원인 카트린 드뇌브의 정확한 심정은 뭐였는지, 왜 이 장면이 그 다음 장면으로 넘어 가야만하는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심지어, 은행강도와 마약범죄가 어떻게 연결 되어 드러나는 지조차도 그렇게 명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트린 드뇌브)

기억에 남는 대목들은 대부분 범죄자쪽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전형적인 단편 소설 소재이겠습니다만, 총에 맞은 범죄자를 위로하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하지만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간단한 장면부터가 안타까움, 허망감을 잘 살렸습니다. 정말로 범죄자가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관객도 그것을 궁금하게 됩니다. 이렇게해서 총을 맞은 범죄자와 관객은 같은 것을 궁금해하면서 잠깐 사이에 저절로 같은 감정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조용한 해변의 은행에서 배경 음악도 없이 느긋하게 영화가 진행되는 것 같은데 문득 긴박한 은행 강도가 벌어지는 집중력 높은 장면도 일품이었습니다.


(은행 강도)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은행에서 실직한 이후, 이제 나이는 들어 먹고 살 길은 막막한 늙은이가 단연 뚜렷했습니다. 이 늙은이는 부인에게는 새 일자리를 얻을 것 같다고 웃으며 둘러 대면서 사실은 마지막 한탕에 손을 대는 초보 범죄자가 되는데, 그 서글픈 면면은 어느 미남 배우들 보다 뚜렷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밖에...
헬리콥터를 타고 기차에 가까이 다가 간 뒤에 기차에 잠입해 마약을 훔치고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친다는 제임스 본드스러운 작전이 중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멈춤 없이 실시간으로 하나하나 다 보여주는데, 그러다 보니 심지어 중간에 주인공이 얼굴 씻고 수건에 닦는 장면까지 다 빠짐 없이 나왔던 것이 기억 납니다. 너무 느린 진행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대신에 잠입한 주인공이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함은 살고, 헬리콥터로 침투한다는 진기한 수법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쩌려고 저러나 구경해 볼만했습니다. 대신에 이렇게까지 연출한 장면치고 사실감은 빠지게 되었습니다.

장 피에르 멜빌 감독, 알랑 들롱 주연으로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나온 3편의 영화 중 세번째, 마지막으로 나온 영화입니다. 저는 세 영화 중에 대충 중간 정도 아니었나 싶습니다.

덧글

  • 2016/12/29 08: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31 21: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12/31 21: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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