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결혼식 (Les noces rouges, 1973) 영화

1973년작 “붉은 결혼식”은 한 쌍의 남녀가 바람 난 이야기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가득 차 있는 영화입니다. 다른 이야기 거리는 많지 않고,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로 봐도 남녀 둘 중에 하나가 나오는 장면이 거의 대부분인 영화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처음부터 긴장감이 풍부하고 마지막까지 뭔가 터질 것 같은 힘이 들어 차 있는 범죄물이었습니다. 스테판느 오드랑이 주연을 맡고 당시 남편이었던 클로드 샤브롤이 감독을 맡은 영화인데, 그 이름 값을 하는 재미난 영화였다고 느꼈습니다.


(표지)

우선 바람난 남녀의 격정과 그 격정이 뿜어내는 불길하고 조마조마한 느낌을 충실히 잘 담아낸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그냥 눈 감고 아무 영화나 고르면 포스터에 “시작 된다”라는 말이 적혀 있거나, 혹은 소재에 불륜이 있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해당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흔하디 흔한 바람난 남녀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영화인데도, 이 영화는 계속해서 거기에서 눈 여겨 볼만한 내용을 찾아 뽑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 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잘 긁어 모아 내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바람난 이야기에 엮어 볼만한 소재라면 빠짐 없이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다 돌아가며 다루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열정에 휘말린 중년남녀가 다시 사춘기 소년소녀 같은 일탈 행동을 하게 된다든지, 바람난 것이 들킬 것 같은 조마조마한 상황이라든지, 저러면 안되는데 저러지 말지 하는 순간이라든가, 바람 피우려고 남녀가 만나 대화하던 중에 서로의 배우자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는 부도덕하면서도 정직한 상황이라든지, 모른척하고 상대방의 배우자를 만나는 어색한 장면이라든지 다 나옵니다.


(바람난 남녀)

바람 난 두 사람이 너무 철썩철썩 찰떡 궁합이라는 점도 이야기를 팽팽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열정에 불타 오르는 모습이라는 것이 계속 화면을 통해 나타 납니다. 그래서 금지된 쾌락이라는 소재의 특징과 그 불안한 느낌이 연결 되어서 뭔가 잘못 돌아가며 망할 것 같은 예감을 계속해서 퍼붓고 있었습니다.

여기다가 더해서 중반부에는 나름대로 괴이한 이야기 거리 하나도 뚜렷하게 들어가 있어서, 달려가는 불륜 기관차라는 널리 쓰이는 소재에 강한 양념도 하나 끼얹습니다.

결말과 함께 그 괴이한 전환점까지 다 이야기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문제의 괴이한 전환점이란, 바람 난 것을 들킨 직후 여자 쪽 남편의 반응입니다. 여자 쪽 남편은 정치인인데, 부인이 바람 난 것을 발견한 후에도 두 사람에게 당장 헤어지라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을 불러다 놓고 실컷 조롱한 뒤에 바람난 상대 남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자네에게 감사하네. 진심으로 감사하네. 내가 아내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자네가 제공해 주었으니 말일세.” 그리더니, 이 정치인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나도 좋으니, 그 대신 남자가 정치판에서 자기 입장을 지지해 줘야 한다고 협박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자, 견디다 못한 두 사람은 남편 즉 정치인을 없애 버릴 계획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남자 쪽 아내는 이미 남자가 저 세상으로 보낸 상황 입니다. 그 아내는 만성 질환에 빠져 항상 병들고 날카로워 있으며 자기 입으로 인생에 아무런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는 그런 이유 때문인지 편하게 “보내줬다”고 둘러내는 판 입니다. 정치인 남편이 제거 되면 두 사람의 결합에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지는 겁니다. 서로 대칭도 맞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여자의 남편을 없앨 계획을 세 웁니다. 어떤 수법을 쓰는지 미리 보여 주지 않고, 관객에게 사건을 펼쳐 보여 주어서, 언제, 어떻게 일을 저지르는 지 계속해서 궁금하게 만드는 수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긴박하게 펼쳐지는 범죄 장면은 생략 없이 실시간으로 성실히 보여 줍니다. 배경 음악도 안 나와서 사실감도 살립니다. 끝까지 지켜 보면 결국 그냥 교통사고 위장 수법 입니다만, 이렇게 내용을 배치하고 연출을 한 덕택에 평범한 범죄 장면인데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길을 붙잡아 두면서 그 두려움과 파멸의 느낌이 잘 살았습니다.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낸 뒤, 두 사람은 의심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 동안 만나지 않고 시간을 때웁니다. 모든 걸림돌이 사라졌는데 의심을 피하느라 한동안 못 만나는 기간은 애절하게까지 표현 됩니다. 여자는 남자를 안 만나지만 일부러 괜히 남자의 집 앞을 지나가고 남자는 그 순간 몰래 먼발치에서 여자를 내다 보는 장면 등이 나옵니다. 마침, 정치 판 돌아가는 이상한 꼴과 엮이는 바람에 죽은 남편 사건은 별로 열심히 조사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딸)

그러나 결국 범죄는 탄로 납니다. 어머니가 받는 의심을 벗기려고 딸이 경찰에게 재조사를 요청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여자는 한참 멍한 얼굴이 되더니 경찰에 협조하기로 합니다. 경찰이 남자를 찾아가 여자가 자백했다고 말하자, 남자는 자포자기 하고 모든 죄를 털어 놓습니다. 두 사람은 경찰차 안에서 수갑을 찬 채로 만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공포로 떨고 있으면서도, 오래간만에 만난 기쁨에 열렬한 최후의 동지애를 느끼는 것처럼, 손을 잡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굳이 “공포로 떨고 있다”거나 “최후의 동지애를 느낀다”거나 하는 잡다한 서술 없이 다 그냥 표정과 동작, 담담한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 떨리는 화면으로 함축적으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격정적인 속도감과 대파국의 허한 느낌까지 다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검거)

부실한 점을 찾자면, 여자 쪽 남편이 비중이 있는데 비해, 남자 쪽 아내는 이야기가 좀 부족했다는 점, 전체적으로 꽉 들어찬 구조인데 막판에 모든 것이 한순간에 탄로 나고 망해버리는 이야기가 약간 흐릿한 것이 헐거웠다는 점 정도 입니다.

그에 비해, 장점은 볼 때마다 늘어나는 영화였습니다. 예를 들어, 중간 중간 소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오후의 햇살이 잘 잡혀 있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른한 낮잠 속 악몽이라는 분위기까지 감돌았습니다. 정치적 비판이 들어 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도 살짝 적당한 수준으로 가미 되어 있어 잘 끼워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보다보면, 심지어 막판의 헐렁함조차도, 그 애매한 잘 표현한된 내용 때문에 “도대체 왜 자포자기했을까”를 상상하게 만들어서 더 신비롭고, 더 긴 여운을 감돌게 하는 기능이 강해 보입니다.


그 밖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배경을 제시하는 시작이 바로 눈을 사로 잡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시작되면, 병든 아내와 암담하게 살고 있는 남자가 나옵니다. 이 남자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어딘가로 갑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남자는 거기서 한 외간 여자를 만나 격정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이제 화면은 남자 대신 여자를 따라가며 움직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 가, 정치인 남편과 딸이 있는 저택에 도착하고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부드럽게 하나로 이어진 내용으로, 이동 장면까지 다 영화 속에 그냥 느긋하게 담아 내면서 역동적으로 배경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떨어져 살고 있고, 어떻게 마음이 이어져 있는지 화면으로 드러내 주었습니다.

정치 비판은 본론에 거의 영향을 안 미치게 약간만 들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보면 당시 실제 문제에 영향을 미칠까봐 이 영화가 1개월간 프랑스에서 금지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