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강철이의 정체 기타

괴물 백과에 정리된 수많은 괴물들 중에 제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꼽으라면, 오늘은 "강철(強鐵)"을 꼽겠습니다. 강철은 하늘을 날아 다니는 커다란 소, 말을 닮은 괴물이면서도 용도 닮은 이상한 것인데, 빠르게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주변의 농작물을 온통 파괴하는 재해를 일으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서수도육폭병풍 중 발췌)

강철이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17세기 이후 기록에서도 자주 언급된 괴물이면서 꾸준히 그 전설이 이어져서 현대까지 지방의 민속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꽝철", "깡철"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에는 "강철이"라는 항목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옛 기록에 자주 쓰인 말을 살려서, "강철"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유행하지 않고 조선 이후로 한국에서만 유행한 괴물이면서, 그 겉모습도 상당히 특이하다는 점도 눈에 뜨입니다.

강철에 대한 기록 중에 시기가 비교적 앞서는 것은 1614년 기록인 "지봉유설"에 실린 내용입니다. 이것은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 즉, 강철이 오면 추수할 것이 없어진다는 당시 조선에 돌던 속담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글쓴이 이수광이 시골 노인에게 물어 보니, "강철"이란 괴물인데 그 근처 몇 리(몇 백미터)의 풀, 나무, 곡식이 모두 타 죽는다는 전설을 알려 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수광은 강철을 중국 고전에 나오는 소와 닮은 모습의 "비(蜚)"라는 괴물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것이 나타나면 전쟁이나 전염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산해경의 "비" 그림)

이후의 기록들은 비슷하고도 조금씩 다릅니다. 나름대로 재미가 있으니, 이것저것 알아 보겠습니다.

1740년 경의 기록인 "성호사설"에서는 중국 고전의 "독룡(毒龍)"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것이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 속의 강철과 비슷한 것 같다고 언급합니다. 여기서도 묘사는 소와 비슷한 것인데, 이번에는 "지봉유설"과 달리 불 기운으로 말리고 타 죽이는 괴물이 아니라 폭풍우로 농사에 해를 끼치는 동물로 되어 있습니다.

1742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학고집"의 "기이"라는 글에서는 강철을 뿔이 있는 독룡 비슷한 것이기는 하지만 온몸에 털이 있고 황색 기운을 띄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는데, 번개와 폭우를 내려서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입니다. 글쓴이 김이만은 중국 고전의 "효(蟂)"라는 것이 강철과 비슷한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1779년 경의 기록인 "학산한언"에서는 이의제라는 사람이 계룡산에 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하고 용 같기도 한 동물을 보고 강철(江鐵:한자가 다릅니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철원의 연못 속에 사는 괴물을 제거 하기 위해 근처 관원들이 물 속에 뜨거운 장작을 집어 넣었더니 말처럼 생긴 괴물이 튀어 나와 우박을 뿌리며 날아 갔는데, 그것도 강철인 듯 하다고 언급합니다. 글쓴이 신돈복은 강철이 가뭄을 일으키는 중국 고전의 "한발(旱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맨 먼저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삼재도회"의 "발(魃)" 그림)

비슷한 시기의 기록인 "양엽기"에서 강철은 망아지 같은 괴물로 김포의 늪 속에 살고 있는데 가뭄을 일으켰고, 바다 속으로 숨으니 바닷물이 끓었던 일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철은 중국 고전의 "후(犼)"와 비슷한 것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는 "용이 되려다 못한 것이 강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북경동물원의 "후" 동상)

1780년의 일을 기록한 "열하일기" 중 "성경잡지"의 "상루필담" 대목에서는 청나라 사람이 불 같은 기운으로 주변을 뜨겁게 해서 일대를 고생시킨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른 청나라 사람들은 그 이름을 화룡(火龍), 응룡(應龍), 한발(旱魃) 등으로 지칭 합니다. 그런데 글쓴이 박지원이 그런 것을 조선에서는 "강철(罡鐵:한자가 다릅니다)"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도,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을 인용합니다. 아울러 가난한 사람이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별 득이 없을 때 "강철의 가을이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중국 명나라 호문환의 "응룡")

정리해 보자면, 폭우, 번개, 우박을 일으켜서 농사를 망치는 종류가 있고, 가뭄, 불, 뜨거운 기운을 일으켜서 농사를 망치는 종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강철이라는 괴물이 가진 힘에 대해 처음부터 구체적인 특징이 있었다기 보다는, "강철"이 어떤 형태로건 농작물을 망치는 자연 재해의 상징 정도로 취급 되었기 때문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강철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난히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이 인용되고 있는 것에 주목합니다. 저는 이 알 수 없는 속담이 당시 조선에 먼저 돌았고, 이후 그 속담의 뜻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강철이라는 괴물에 대한 상상이 따라 붙은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강철에 대한 한자 표기가 조금 엇갈리는 것도 그런 느낌입니다.

상상을 해 보자면, 저는 임진왜란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 속담이 사람들 사이에 돌기 시작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일본이나 중국의 괴물에 대한 다른 전설이 전해진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한 지역의 괴물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진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강철" 비슷한 발음의 어떤 사람, 직업을 일컫는 말이 퍼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전쟁의 무기, 쇠붙이를 상징하는 "강철"이라는 말이 근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흉폭한 사람이 나타나면, 혹은 어떤 사건이나 전쟁이 터지면 농사 지은 것은 몽땅 망한다는 뜻 정도의 말이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이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랬던 것이, 원래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된 상태에서 자연재해 때에 본 신기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들러 붙어 "강철" 전설이 완성 된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예를 들어서, 폭풍우가 몰아 칠 때에 어느 초가집 지붕이 날아가 지푸라기가 온통 날리는 광경을 멀리서 보고 무슨 괴물이 춤추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 "저게 그 농사 망친다는 강철 아니냐?"라고 했다는 겁니다.


(청도 대비사 대웅전의 괴물 그림 - 현대에 채집된 전설에는 이곳 대비사의 승려가 용이 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꽝철이가 되어 농사를 망치므로, 이 지역에서 "꽝철이 쫓기" 풍속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 방향이 비슷한 자료로 "강철"과 발음이 비슷한 "강길"이 나오는 "연도기행"의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강길(羌吉)" 또는 화룡이라는 괴물의 소문이 이렇게 소개 되어 있습니다. 1656년에 용천을 지나다가 말 꼬리 같은 괴물이 비바람을 타고 날아 다니는데, 크기는 두 세 길 정도이고, 뭔가 톱으로 써는 것처럼 하며, 집을 부수고 숲의 나무를 박살내며 곡식을 망가뜨려서 주변을 황폐화시킨다는 겁니다. 1626년에도 이런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전쟁의 징조였다는 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현대에 조사된 민속에서는 “용이 되려다 못된 것이 강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특히 눈에 뜨입니다. “양엽기” 말미에도 나와 있는 강철의 특징입니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는 “꽝철이 쫓기”라는 기우제가 소개 되어 있는데, “꽝철이”는 용이 되는데 실패하여 땅으로 떨어지는 괴물로, 가뭄을 일으키며 날아 갈 때는 불덩이가 보이고, 코에 물이 들어가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꽝철이는 산 능선에 앉곤 하기 때문에, 경북 남부, 경남 지역에서 산 능선을 다니며 꽹가리와 징을 치며 꽝철이를 쫓는 풍속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괴물 백과를 만들던 2000년대 후반만 해도, "강철"은 훨씬 덜 알려져서 그저 "이무기를 일컫는 사투리" 정도로만 설명되는 경우가 다수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요즘에는 관심 갖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서 "강철"이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 나타난 뱀 모양의 괴물이 아니라, 널리 알려졌던 독특하고 다채로운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 전보다는 여러 매체에 소재로 활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기도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시미(이무기) 인형)

만약 강철을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 본다면, 저는 킹콩이나 방사능으로 커진 괴물 영화처럼 도시를 부수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거대한 괴물 이야기로 만드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재해를 일으키는 괴물이라는 강철의 가장 큰 특징에도 잘 들어 맞습니다. 번개나 우박으로 공격하는 강철이라면 어지간한 현대의 무기로는 싸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구름과 안개 사이로 조금씩 보일듯 말듯 신비감 속에서, 그걸 보고 한 학자가 진짜 강철이라는 괴물 나타다고 주장하면서, 믿지 않는 다른 학자들을 뒤로하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이야기도 재밌어 보입니다.

끝으로, 강철에 대해 제가 가장 여러번 읽어 본 기록은 다음 내용입니다.

(1957년 8월 11일 동아일보 기사) "깡철의 마력" - 양산군 금산부락 앞 물 들판에는 홍수가 휘몰아치던 지난 3일 "깡철"이란 동물 두 마리가 나타나 가산과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은 "깡철" 구경에 한창 법석댔는데, "깡철"의 움직임에 따라 그 지대 수면이 약 5미터 가량 높았다 얕았다 동요하더란...

놀랍게도 1950년대 후반의 현대 대한민국에도 강철 목격담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양산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입니까? 이러니 이 괴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덧글

  • 존다리안 2017/02/18 22:19 # 답글

    클로버필드... 그 생각나는군요.
  • 게렉터 2017/02/18 22:27 #

    그런 느낌의 사람들에게 절망과 공포를 주는 괴물에도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 합니다. 옛 기록 속에 좀 구체적인 목격담이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곧 번역해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rumic71 2017/02/19 21:12 # 답글

    강철(强鐵)이라 하니 불가사리가 쇠를 먹는 게 연상되는군요.
  • 게렉터 2017/02/21 21:22 #

    아무래도 재난을 일으키는 괴물이다 보니까, 한자로 기록하던 사람들도 좀 센 어감의 한자를 골랐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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