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A New Leaf, 1971) 영화

1971년작 영화 “새싹”은 시작 부분이 가장 재미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시작되면 물려 받은 돈을 그냥 계속 쓰기만 하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평생을 살아 온 갑부 중늙은이 한 명이 나오고, 이 사람이 딱히 화려하지도 않게 대충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와중에 이런 주인공에게 변호사가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면서 계속 연락합니다. 주인공은 귀찮아서 줄기차게 피해다닙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 것이겠습니까?


(포스터)

이 영화는 코미디 입니다. 어설픈 행동과 멍청함, 우스꽝스러움 과장을 요소요소에 웃음거리로 끼워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표현하는 형식이 재미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약간 느린 박자로 이야기를 펼쳐 나갔습니다.

장면과 장면을 연결한 편집도 상당히 도전적이어서 색다른 효과와 특이한 상황의 낯선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뚝 잘라 먹고 다음으로 연결해 치는 것이 기억에 남을 만했습니다. 거기다가 더하여 배경 음악이 거의 없다는 점도 이런 독특한 맛을 더 잘 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느긋하면서도 생소한 연출은 주인공과 주인공이 경험하는 주변 배경과도 잘 들어 맞았습니다.

주인공은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삶을 산 인물로, 한 평생 스스로 먹고 살아 볼 것은 꿈도 안 꾼 사람 입니다. 페라리를 몰고 뉴욕 시내를 질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20세기의 부자이지만, 생활력이라고는 전무한 그의 성향은 18세기 유럽 귀족에 가깝습니다. 현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집사와 이 사람의 대화를 보여 주는 것도 이 느낌을 더 강조 합니다. 그렇게해서,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한 없이 무능한 옛 귀족 같은 부자라는 인물이 이상스럽게도 조용한 분위기의 이 영화 연출과 들어 맞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독특한 맛을 펼쳐 보여 주는 초장이 재미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반면 중반 이후로는 비슷한 내용을 다룬 많은 다른 코미디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이한 정도의 영화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주인공을 비웃는 주인공의 친척 아저씨)

중반 이후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좀 더 밝혀 보자면 이렇습니다.

변호사는 주인공이 돈을 다 써서 파산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무일푼이 된 주인공은 이제 자기 인생은 끝장 났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껏 자기가 출입했던 고급 클럽, 고급 식당 같은 곳들을 조용하고도 쓸쓸하게 한번씩 둘러 봅니다. 그리고 인생을 완전히 포기할까 생각합니다. 이 장면에 이르면, 방금 전까지 인생 아무 생각 없이 산 갑부였던 주인공을 무심코 관객들이 감정이입 하여 동정하게 될 정도가 됩니다. 그러다 주인공은 집사의 말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바로, 부유한 여자와 결혼해서 다시 부유해지는 방법을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돈만 노리고 인기 없는 여자에게 접근했다가, 그 여자의 진정한 매력을 깨닫고 진짜 사랑에 빠진다는 형식의 많고 많은 이야기 그대로 입니다. 남자 주인공이 중늙은이이고, 여자 주인공도 좀 나이가 들었다는 점, 정도가 차이 입니다. 다만, 끝까지 보더라도 요란한 대소동이 벌어지는 형식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해서 묘한 풍자 느낌을 살리는 것은 특징으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인물 그 자신처럼 보이는 느낌으로 잘 들어 맞았습니다. 월터 매소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이 시대에 뒤떨어진 옛 귀족 느낌이라고 했는데, 그 느낌이 잘 표현되어 터무니 없는 단어를 써가면서 무슨 시를 읊거나 연극의 독백을 하듯 욕을 하거나 비아냥거릴 때에도, 그 맛이 농담으로 살아나는 효과도 좋았습니다. 일레인 메이가 연기한 여자 주인공은 물건을 잘 떨어뜨리고 음식을 잘 흘리는 좀 둔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런 개인기로 많은 웃긴 장면을 혼자 때웁니다. 옷을 거꾸로 돌려 입는 식의 실수를 보여 주는 장면은 정말 구식 코미디 입니다만, 진짜 현실 생활 같아 보이는 연기와 차분한 영화 분위기가 겹치니 꽤 재미있었습니다.


(페라리 안의 남녀 주인공)

중반 이후가 많이 보던 놀음이라고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각본 역시 평균 이상은 된다고 느꼈습니다.

결말을 밝히면서 예를 들어 보자면, 애초에는 돈만 차지하고 결혼 후 여자 주인공을 살해해 버리려고 생각했던 비열하기 그지 없는 인간인 남자 주인공이 마지막에는 마음을 바꾸는데, 그 중간 단계를 설정해 놓은 것은 깨끗한 수법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결혼해서 여자 주인공 집에 와 보니, 여자 주인공의 하인들이 여러 명 있는데 전부다 어리숙한 여자 주인공의 돈을 털어먹을 궁리만 하고 있는 사기꾼들이었던 겁니다. 남자 주인공은 그것을 보고 분노해서 그 협잡을 모두 밝혀내고 그들을 모두 쫓아 냅니다. 세세하게 묘사는 안 되어 있지만, 이런 내용을 통해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 편에 서게 되고, 여자 주인공에게 사기 치는 행동이 악행임을 스스로 반성하게 될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끼워 넣어 두니, 나중에 남자 주인공이 마음을 바꿔 먹는 변화를 영화에 담아 놓은 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그 밖에...

결말은 이렇습니다.

여자 주인공은 식물학자로, 새로운 종을 발견해서 자기 이름을 붙이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식물채집에 몰두하는 사람인데, 신혼여행 때 치집한 것이 정말로 신종 고사리로 밝혀집니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은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붙입니다. 그 일을 겪으며 남자 주인공은 마음이 조금씩 흔들려 갑니다.

그 후 캠핑을 갔다가 여자 주인공은 물에 빠집니다. 남자 주인공이 구출해 주지만 않으면 여자 주인공은 죽을 상황입니다. 그러면 재산을 독차지 하는 남자 주인공의 계획이 완전범죄로 성공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남자 주인공은 물가에서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고사리 싹을 봅니다. 그러자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구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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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7/05/24 13:59 # 답글

    마지막이 감동적이로군요.
  • 게렉터 2017/05/24 21:44 #

    그 장면조차도 잔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약간 햇살이 반짝이는 조명 효과 정도로 표현하고 넘어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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