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거리 (The Big Street, 1942) 영화

꼭 그 당시 유행하던 느와르 영화 제목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1942년작 영화 “거대한 거리(The Big Street)”는 범죄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느와르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코미디가 가미된 사랑 이야기인데, 내용은 루실 볼이 연기하는 뉴욕 밤무대의 가수를, 헨리 폰다가 연기한 가난한 웨이터가 흠모하는데, 루실 볼이 망하면서 고생하고 그러면서 헨리 폰다와 가까워지고 그러는 동안 다른 소동도 벌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포스터)

초반 3분의 1까지는 유쾌한 코미디 분위기 입니다. 당시 옛날 브로드웨이를 떠돌던 날건달들이 많이 먹기 대회를 두고 큰 돈을 건 내기를 펼쳐서 거리의 화제가 된다든가, 세상 물정에 환한 닳고 닳은 루실 볼이 비아냥거리는 농담을 툭툭 던지면서 그 바닥 사람들과 마주치며 지나가는 이야기들은 화려하고 거대한 빌딩과 그 사이 골목의 수많은 사람들이 얽힌 사이에 퍼져 나가는 뉴욕 거리 이야기의 흥취를 잘 갖고 있었습니다. 헨리 폰다는 성실하고도 착한 젊은 웨이터로 이런 분위기에 엮이면서 관찰자 역할도 해 주고, 한편으로는 갈등을 만들어 가는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 밤무대의 인기 가수, 루실 볼)

이야기가 중반으로 접어 들면서 내용은 조금은 더 어둡게 바뀝니다. 루실 볼이 다치게 되어 크게 앓고 그러느라 하반신을 못쓰게 되고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느라 돈도 거진 다 날려 먹게 됩니다. 누구 보다 아름답게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루실 볼이 항상 자리에만 누워만 있게 되고,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면서 겪는 좌절이 묘사 되며 상황은 변해 갑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웨이터 헨리 폰다와도 점점 가깝게 엮이게 됩니다.


(가난한 웨이터 헨리 폰다)

그런 중에 새로운 위기를 겪거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꾀를 내고 억지를 부리느라 몇 가지 놀라운 일들을 벌이는데, 그런 놀라운 일들을 다소간 낭만적으로 표현해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 줄기를 차지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일들을 언급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차비는 없는데 겨울이 되어 루실 볼이 플로리다에 너무 가고 싶어 하자 헨리 폰다가 하는 수 없이 루실 볼을 휠체어에 앉힌 채로 고속도로로 밀고 뉴욕에서 마이애미까지 가면서, 교통 경찰에게 “이것도 바퀴는 있으니 차량 아니오”라고 한다든가, 다시 한번 부유하게 살기 위해서 마이애미의 루실 볼이 옛 애인에게 접근하면서 억지로 병들지 않고 잘 사는 척 하려 한다든가, 마지막으로 루실 볼에게 한번은 다시 스타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려고 헨리 폰다가 권총 강도가 되어 갱단 두목을 위협해서 무대를 만들어 주고 루실 볼의 옛 애인도 섭외해 오고 관객들이 환호하도록 해 준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휠체어로 마이애미에 도착)

후반으로 갈 수록 서글픈 루실 볼의 신세와 어떻게든 그 와중에도 주인공을 기쁘게 해 주려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헨리 폰다의 이야기가 부각되면서 어두워진 내용을 볼 때는 정말로 살짝 느와르 영화 느낌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렇게 어두워져 가는 중에도 영화 내내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라는 뭔가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는 처음에는 죽고 못살것 같던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이 결국 점점 망해가는 신세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피폐해지는 줄거리로 나아가는 경우가 대단히 많지 않나 싶습니다. 요즘 영화야 그런 경우가 워낙에 많거니와 옛날 이야기 중에도 “카르멘” 같은 예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끝까지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사랑과 명예를 우직하게 계속 잘 지켜 나갑니다. 이런 점도 지금 보면 오히려 신선하고 반가운 면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결말 정도는 조금 더 할리우드 영화 답게 좀 더 재치있고 명랑한 느낌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웃고 넘어가는 이야기 속에서도 도시 빈민층의 삶과 부유층의 위선에 대해 풍자하는 이야기를 계속 조금씩 섞어치는 이 영화 흐름에 비춰 보면, 지금 정도의 슬쩍 신파극 같은 결말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IMDB Trivia 등에 있는 내용을 보면 루실 볼이 그렇게 좋아했던 영화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가씨와 건달들”이나 영화 “성룡의 미라클” 등의 원작자로 친숙할 법한 데이먼 러니언 원작의 영화이고 데이먼 러니언이 제작에도 참여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슬리 나이슬리 존슨” 같은 데이먼 러니언의 다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도 등장하고 있고, 뉴욕 브로드웨이의 날건달들이 나름대로 자기들의 회의와 규칙을 준수하면서 짐짓 신사인척 할 때도 있다는 식의 너스레를 떠는 이야기도 들어가 있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