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 (뉴욕 1997, 뉴욕 탈출, Esacpe from New York) 영화

1981년작,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는 당시로서는 미래인 1997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범죄가 너무 심해져서, 맨해튼을 빙 둘러 벽을 세워서 통째로 감옥섬으로 만들어 버린 미국입니다. 내용은 우연히 미국 대통령이 그 안에 떨어지게 되는 바람에 커트 러셀이 연기하는 주인공을 특수 요원으로 보내서 구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도 반항적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구해 주지 않으면 몸 속에서 폭발하는 초소형 폭탄을 몸에 주사한 채로 투입하는데, 주인공의 별명이 “스네이크”이고 남은 시간은 22시간이기 때문에 제목은 코브라 22시가 되었습니다.


(포스터. 이렇게 자유의 여신상이 부서진 장면 자체는 안 나옵니다.)

우선 눈에 들어 오는 것은 미술적인 구성과 촬영 결과 담긴 화면이 꽤 그럴듯하게 보기 좋다는 것입니다. 고층빌딩이 가득한 화려한 도시였던 맨해튼이, 텅텅 빈 채로 걸레 같은 몰골의 아무도 나올 수 없는 감옥섬으로 바뀐 모습이 잘 담겨 있는 편입니다. 텅빈 거리에 쓰레기가 굴러 다니고, 여기저기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는 밤 풍경은 고요하고 스산합니다. 그런 가운데에, 넝마를 걸친 반쯤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소리 없이 비틀비틀 걸어 다니며 화면 멀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허드슨 강 너머 높은 콘크리트 장벽을 쳐 놓고, 장벽 위에서 맨해튼을 바라 보는 경찰들의 모습이라든가, 글라이더를 타고 침투한 주인공이 가장 높은 건물인 세계 무역 센터 옥상을 골라 착륙하는 모습 등등은 운치가 있습니다. 한때 화려했던 건물이 낙서가 가득한 꼴로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브로드웨이의 극장에서 맛이 간 재소자들이 세상을 욕하는 내용의 뮤지컬을 자기들끼리 만들어서 히죽거리며 공연하고 있는 모습도 잠깐씩 비치며 지나갑니다. 말끔한 헬리콥터들이 바깥 세상에서 천사나 악마처럼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경찰들을 태우고 날아와, 버려진 무덤 같은 이곳과 시체 같은 이곳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고 가는 모습도 그 절망감과 냉정함, 양극화된 풍경의 감상을 이끌어 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차근차근 꾸준히 자리와 시간을 바꿔 가며 계속 나와 줍니다. 격투기 대회처럼 펼쳐지지만 야구 방망이를 하나씩 들고 하는 이 망한 뉴욕 만의 스포츠라든가, “뇌”, “공작” 같은 별명으로 불리우는 개성 있는 등장 인물들이 하나 씩 나타나서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호텔의 샹들리에를 떼어 와서 덕지덕지 장식한 캐딜락이라든가, 무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화살을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 등등도 자잘한 재미거리가 되어 줍니다. 개판이 된 뉴욕 공립 도서관의 모습, 망가진 자동차 더미로 길을 막아 버린 성벽 같은 소재들이 꾸준히 나옵니다. 이런 내용들이 거의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적막하고 쓸쓸한 배경 속에 담기면서 더 암담하고 한편으로 더 진지한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망한 뉴욕)

부족한 점을 꼽아 보자면, 의외로 줄거리 자체는 다소 싱겁다는 겁니다. 싸움 장면은 방망이 들고 하는 격투기 대회 장면을 빼면 딱히 화려한 것이 없고, “악명 높은 사나이”로 계속해서 언급되는 주인공 커트 러셀도 사실 임무인 대통령 구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대목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전설적인 초강력 특수요원”처럼 계속 언급되고 폼은 엄청 잡지만, 막상 주인공이 멋있는 역할을 하는 대목은 무척 부족해서 영화가 좀 비뚤어진 듯한 느낌입니다. 주인공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그보다야 그냥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가 꽤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주인공의 옛 동료를 알려 주고, 그 옛 동료가 “탈출한다”는 주인공의 말에 동조하는 바람에 슥슥 일을 풀어 주는 것이 중심입니다.

그래도 전체 내용을 보면 꽤 괜찮은 것이 악당 쪽의 이야기와 조연 이야기들이 다 괜찮습니다.

자칭 “뉴욕의 공작”인 이 어둠의 세계의 지배자 두령이, 인질로 붙잡은 대통령을 내세워서 모두에게 탈출 시켜 줄 것을 약속해서 구세주처럼 떠오르는 이야기라든가, 그러자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뉴욕의 공작”을 단 하나의 희망으로 숭배한다든가 하는 내용들은 묘하게 서글픈 감흥마저 있었습니다. “공작” 역할의 아이작 헤이즈의 모습과 연기는 기막힌 수준이라서, 그냥 흔하게 영화에 나오는 무섭고 더럽기만한 비슷한 “망한 미래의 악당”들과도 썩 달라 보였습니다.


(스네이크, 커트 러셀)

노골적인 웃음 거리가 될만한 풍자 장면 없이도, 뉴욕 맨해튼이 통째로 악당 소굴이며, 대통령은 그 악당 소굴에 떨어지고, 희망도 미래도 없는 감옥섬의 빌딩들을 끝없이 떠돌아 다니는 얼굴 없는 사람들이 미친 잔치를 벌이는 곳이라는 이야기 전체가 멋진 풍자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습니다. 격투 대회에서 관중들의 조롱과 야유를 받으며 당연히 패배할 줄 알았던 커트 러셀이 고생 끝에 승리해 버리자, 관중들이 서서히 커트 러셀을 연호하며 환호하는 대목의 묘함은 그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그 밖에...

기술이 발전하고 전체적으로는 범죄가 줄어든 미래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만, 동시에 그러면서도 거대한 감옥섬이 된 뉴욕을 배경으로 해서 영화가 펼쳐지는 내내 암담한 세계 종말 이후의 느낌을 물씬 낸다는 점도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세상을 평등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랍시고 저지르는 테러로 전용기가 납치되는 바람에 이 난리를 겪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 본인은 추락하는 전용기에서는 탈출장치로 탈출했지만, 그렇게 탈출해서 떨어진 곳이 감옥섬, 맨해튼인 것입니다. 스쳐지나가는 작은 장면이지만 이 테러리스트 악당들이 굉장히 거창한 말로 부르짖는 테러의 의의와 어이 없게 읊어 대는 사회에 대한 준엄한 비판도 이야기도 볼거리였습니다.

공작에게 붙잡힌 대통령은 공작에게 조롱 당하고 고문 당하면서 “당신이 최고이고, 당신이 지배자이다”라고 외치라는 말을 듣고 비굴하게 외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마지막에 가까운 대목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스네이크, 대통령등 일행은 지뢰가 잔뜩 묻혀 있는 다리에서 지뢰를 겨우겨우 잘 피해서 탈출하고 경찰들이 내려 준 줄을 타고 방어벽을 넘어 갑니다. 그 뒤를 공작이 용케 따라 오며 공작도 목숨을 걸고 간절히 탈출하기를 원합니다. 공작이 스네이크를 붙잡을 듯, 결정적으로 위험한 순간, 방어벽을 넘어 갔던 대통령이 다시 나타나 기관총을 공작에게 갈겨 대며, “네 놈의 자식이 최고고 지배자다!”라고 조롱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상하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고문 당하던 대통령이 복수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말이 공작이고 지배자이지 사실은 애절하게 자유를 갈구하던 악당 두목이 방어벽 바로 앞에서 죽는 애잔한 면도 있는 장면이기도 하고, 대통령이 미친 갱단 두목과 동급으로 싸우는 것이 비굴함과 잔인함을 돌이키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한 장면에 엮여 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고 보면, 엄청나게 폼을 잡는 주인공이 나오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역시 그 주인공 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의 재미 있어서 재밌어진 영화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악당 두목을 물리치는 것 조차도 주인공이 아니라 인질이니 말입니다.

게임 "메탈기어"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별명 "스네이크"와 모습은 물론이고, 역전의 용사가 홀로 떨어져 무전기로 통신을 하면서 진행해 나간다는 내용 자체도 참조한 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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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에규데라즈 2017/08/21 21:11 # 답글

    이제 뽑아라~!
    장면 생각나네요 ㅋㅋㅋ
  • 게렉터 2017/08/22 20:13 #

    말씀하신 것은 속편인 LA2013의 장면이지요.
  • 에규데라즈 2017/08/23 11:03 #

    아 하! 그렇군요 !
  • 게렉터 2017/08/23 20:10 # 답글

    마침 속편 LA2013에 대한 글도 오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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