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2013 (LA 탈출,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 속편, Escape from L.A., 1996) 영화

1996년작 “LA 2013”은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LA 주변이 물에 잠기면서 LA일대가 섬이 된 상황으로 출발 합니다. LA 지역은 미국이 아닌 것으로 선포되어 추방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자 무법 천지가 됩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당시로서는 미래였던 2013년, 대통령의 딸이 엄청난 무기를 가진 채 이런 LA에 떨어지게 되는 사건이 터지는데, 그러자 당국에서는 그 무기를 되찾아 오라고 주인공을 특수요원으로 파견합니다. 주인공이 말을 안 들으면 안 되니까 당국에서는 8시간 내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죽는 바이러스를 주인공 몸에 주입해서, 성공 못하면 죽는다고 협박합니다.


(포스터 - 자세히 보면 포스터에도 문제의 서핑 장면이 자랑스럽게 나와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엑스트라와 야심찬 분장, 미술, 세트가 넉넉히 동원된 영화이고 이것저것 이야기 거리가 많은 내용을 촘촘히 엮어 놓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장면이 장난 비슷하게 툭툭 들어가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무법 천지 LA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서 수백명의 엑스트라들을 동원해서 한 명 한 명에게 다들 거기에 걸맞는 분장을 시키게 해서 커다란 군중 장면을 보여 주는 영화인데, 동시에 그 LA로 잠입하는 주인공의 잠수함의 컴퓨터 그래픽 특수 효과는 터무니 없이 가짜 같아 보여서, 이게 영화 속 실제 사건을 표현한 것인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 입니다. 제법 진지한 표정의 주인공이 비장하고도 비정한 표정으로 말 없이 저벅저벅 걸어 가는 장면으로 출발하지만, 그래 놓고, 주인공이 줄잡아 백 명이 넘는 악당들과 총격전을 벌이는데 별다른 방어 장비도 없이 태연히 버텨내는 놓은 맹랑한 장면도 부담 없이 팍팍 나옵니다. 이 싸움에서 주인공이 행글라이더를 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게 무슨 도움일지?


(지진으로 망한 LA풍경)

재미를 찾아 본다면, 우선 현대 문명이 일그러져 망한 미래 풍경이 촘촘히 묘사 되어 있어서 일단 구경거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몇몇은 그 표현도 말끔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는 비버리힐즈의 성형외과에 정신 나간 성형 수술 중독자들이 무슨 사이비 종교 숭배자들처럼 병원에 붙어 살고 있는데, 수십번 수백번씩 계속 수술을 하기 위해 지나가는 생사람을 납치해서 그 몸을 해체하는 것이 생활이다라는 이야기가 일견 오싹하고 일견 우스꽝스럽게 튼실히 묘사 되어 있습니다. 풍자 효과는 훌륭했습니다.

이 밖에도, 쓰나미 때문에 도심 한 복판에 밀려온 거대한 초호화 여객선이 그것을 차지한 사람들의 호텔 내지는 저택 역할을 하고 있다든가, 허구헌날 “소돔과 고모라 같이 심판 받을 것입니다”라고 떠들던 얼간이 독재자 정치인이 있었는데 마침 LA에 대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고 총통처럼 행세한다든가, 등등 이야기 거리가 많이 들어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상당히 헐렁하고 헛웃음 나오게 하는 장면들도 동시에 계속 꾸준히 나와 줍니다. 스티브 부세미의 웃긴 말투처럼 작정하고 값싸게 웃기려고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의 특징은 뭔가 멋있고 신기한 장면처럼 보이려고 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어처구니 없이 한심한 느낌도 동시에 드는 이상하게 엉뚱한 맛이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에는 악당이 주인공을 붙잡은 뒤에 바로 안 죽이고, 굳이 10초에 한 골씩 안 넣으면 사살하는 죽음의 농구 게임을 시켜서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악당이 일부러 이렇게 주인공을 어렵게 죽게 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지겹도록 여러 영화에서 보던 것인데, 한편으로는 이 장면에서 뭔가 주인공이 놀라운 모습이나 특별한 꾀를 써서 극복할 것처럼 기대감을 살짝 주기도 합니다. 그래 놓고, 골 넣는 것을 굳이 또 다 보여 주는데, 별 대단한 꾀 없이 그냥 주인공이 아주 잘해서, 너무나 뻔하게도 정확하게 0초 남는 것에 맞추어 성공하는 이야기로 죽죽 갑니다. 또 굳이 마지막 한 골은 굳이 아슬아슬하게 느린 동작으로 보여 주기도 하고, 이 뻔한 장면을 끝내 놓고 주인공은 비장하면서도 비정한 승리의 표정을 짓는다는 뻔뻔한 연출로 이어지는 겁니다.


(죽음의 농구 장면)

이런 식으로 한심한 듯, 진지한 듯, 웃긴 듯, 만 듯한 장면이 많은 영화고,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채로 아주 약간 과장된 비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 역할의 커트 러셀은 이 분위기에 지독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커트 러셀)

이런 괴상한 장면의 최고봉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장면으로 유명한 서핑 장면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은 꽤 괜찮은 풍자입니다. 대지진으로 LA가 파괴 되었지만 그덕분에 어마어마한 쓰나미 파도가 밀려 오니 적당한 지점을 찾아서 그 짜릿한 파도를 타는 것을 넋놓고 스포츠로 즐기는 서핑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총을 맞고 하수도로 탈출해서 쓸려 내려온 주인공이 하필이면 마침 이 서핑족 앞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시간이 없는데 급히 이동해야 하는데 마땅히 교통 수단이 없으니까 이 쓰나미 파도를 서핑해서 자동차 보다 빨리 LA시내를 가로지르겠다고 결심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면 점차 이게뭐지 싶어 가슴이 두근거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실한 합성 기술로 만든 엉성한 파도를 타고 역시 그 와중에 비정한 표정으로 파도 타는 시늉을 하는 커트 러셀의 표정과 “멋있지 않은가”라고 합창하는 듯 펼쳐지는 화려한 음악이 나오는데 한편으로 이 모습을 보고 놀라는 스티브 부세미의 댕그란 눈까지 화면에 나오면, 어지간한 관객이면 웃든, 한숨을 쉬든, 울든 뭐든 반응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의 서핑 장면)

물론 이외에도 순수하게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은 구석도 적지 않은 영화 입니다. 인상적으로 등장해서 열심히 역할을 한 팸 그리어의 조연 역할이 막상 퇴장할 때는 얼굴도 제대로 안 보여주고 대충 그냥 “뭐 갔겠지”하고 엉성하게 넘어 가는 연출이라든가, 우연히 주인공 옆에 나타났다가 영화 이야기가 안 풀릴 때마다 항상 공교롭게 끼어 들어 다음 장면으로 넘겨 주는 역할을 하는 스티브 부세미의 역할이라든가, 특수한 성능이 있다며 소개해 준 주인공의 코트가 끝까지 봐도 사실 별 역할을 안 한다든가,등등, 그냥 대충 넘어 가라고 아예 영화를 만들었구나 싶기도 할 정도 입니다.

무법 천지의 악당들과 무시무시한 무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고 주인공은 계속 비정한 표정만 짓고 있는 영화지만, 적막하고 황량하기 보다는 가볍고 떠들썩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절대 안 죽는 영화 속 주인공 역할 그대로 막 뛰어 다니고, 펼쳐지는 소재들은 눈길을 끌고 가짓수도 많습니다. 그런 중에 끝까지 보면 이 모든 것이 다 한바탕 광대 놀음 같은 이야기라는 향취도 은근히 서려 있는 영화입니다.


그 밖에...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 http://gerecter.egloos.com/5325766의 속편으로 나온 영화입니다. 음악이 거의 없는 가라 앉은 분위기의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에 비해 이 영화는 음악 부터가 넉넉해서 분위기가 다릅니다. 일탈로 가득한 LA를 묘사하는 헤비메탈에, 막판 결전의 화려함에 어울리는 교향악 풍의 음악까지 다양하게 들을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정확하게 어울린다기보다는, 이 역시 “이게 이런 음악이 나올 정도의 장면이냐” 싶게 만드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1981년에 나온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가 당시로서 미래인 16년 후, 1997년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는 막상 1997년이 가깝게 다가 온 1996년에 1997년으로부터 다시 13년 후인 2013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였던 겁니다.

악당 두목은 체 게바라 비슷한 모습으로 나오는 인간으로 항상 혁명을 부르짖는 사람인데, LA에서 록스타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딸도 이 사람에 동조해서 자진해서 무기를 들고 뛰어든 것입니다.

지진으로 군데군데 물에 가라 앉은 LA가 악당 소굴이 되었다는 것이나, 그곳에서 가끔씩 사람들이 여진을 겪는다는 이야기 등등의 소재는 몇 년 앞서 나온 “더블 드래곤” http://gerecter.egloos.com/5325824과 약간 겹치는 점이 있습니다. 아마 그 무렵 있었던 실제 지진 공포나 LA폭동 등의 사건이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안티 히어로”라는 말처럼, 주인공이지만 착하고 영웅적이기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한 면도 있다는 점을 살리는 영화입니다. 옛 서부 영화에서 종종 보던 형태의 인물인데, 전작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가 그런 식의 주인공을 제법 인상적으로 완성했다면, 이 영화 “LA 2013”에서는 그런 느낌을 확 부풀려 코미디처럼 꾸민 장면까지 나옵니다. 유명한 것이 이 영화의 “방콕 룰렛” 장면입니다.

IMDB Trivia를 보면 각본에 커트 러셀이 직접 참여했고, 결말도 커트 러셀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90년대 후반에 괜히 여러 번 보았던 영화입니다. 90년대말에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고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 다루었던 영화도, 바로 이 영화 “LA 2013”이었습니다.

덧글

  • 더카니지 2017/10/29 09:44 # 답글

    케이블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속편이 너무 늦게 나와서 실패한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게렉터 2017/10/29 19:38 #

    아무리 그래도 저는 저 서핑 장면은 뭔가 너무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장면을 넣는 순간 전편하고는 절대 비슷한 분위기가 될래야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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