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비친 여인 (The Woman in the Window, 1944) 영화

1944년작 느와르 영화 “창문에 비친 여인”은 느와르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신비의 여인”으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다만 영화 본론은 이 소재와 큰 상관은 없고, 작은 반전이 몇 차례 있는 영화이고 대체로 좋은 평을 받고 있지만, 막판에 괴이한 반전 한 방이 악명 높은 영화입니다.


(포스터)

내용은 이렇습니다. 평화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늙수레한 남자 교수가 있습니다. 이 교수는 거리의 어느 쇼윈도에 걸려 있는 그림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한 아름다운 여자가 있고 교수는 여기에 빠져 듭니다. 이런 식으로 시작 되는 영화이니, 이 남자가 어떻게 이 신비의 여인과 관련된 일에 엮이는가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구경거리가 되는 영화일 겁니다. 이 영화는 거기에 대해서는 제법 잘 해 나가는 편입니다. 이제부터 그 내용을 한번 언급해 보겠습니다.


(쇼윈도의 그림과 그 그림에서 걸어 나온 듯한 모습의 신비의 여인)

그러던 어느날 밤, 남자는 그 그림 속 여자와 꼭 빼닮은 여자를 실제로 그 앞에서 거리에서 만납니다. 남자는 여자와 말을 주고 받고 따라 다니며 어찌저찌 하며 꿈 같은 일탈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러던 중 그만 성질 급한 여자의 남자친구의 눈에 뜨이고 그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남자는 다투다가 그만 남자를 살해 하게 됩니다. 남자는 시체를 숨기고 범행을 은폐하기로 하고, 여자와는 이제 다시는 서로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말기로 합니다.

중반부의 이야기 거리는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시체를 숨긴 동안 남긴 작은 단서와 흔적들이 하나 둘 드러나는 것입니다. 남자는 마침 범죄학 교수로 수사 관계자와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수사 관계자로부터 그런 단서들이 드러나는 것을 직접 전해 듣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범죄학 교수였지만 정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서 얼마나 단서를 많이 남겼는 지 경험하며 경악할 정도입니다. 남자는 경찰의 수사 과정을 보며 놀라고, 겁먹고, 초조해 하고,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는 것을 향해 서서히 조여 드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분량을 많이 차지 하는 대목이고, 그런 대로 표현도 재미 있습니다.

당황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잘 나오고, 나쁜 짓한 것이 들킬 것을 걱정하는 그 불편한 느낌을 다름 아닌 관객도 같이 느끼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시로서는 어느 정도 독특한 이야기 거리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중반부는 경찰을 따라다니며 자기에게 점점 수사가 조여오는 걸 보며 초조해하는 내용. 가운데가 남자주인공입니다.)

후반부의 이야기 거리는 남녀 주인공이 살인한 것을 짐작하는 죽은 사람의 똘마니가 여자 주인공을 협박하고, 남자 주인공은 그 협박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여자 주인공에게 똘마니를 독살하도록 도와 준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신비로운 여자 주인공의 등장에 잘 맞아 들지 않고, 중반까지 내용을 주도하던 주인공이 한발 물러서기 때문에 약간 약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뒤 이어지는 반전은 제법 괜찮아서 이 후반부 내용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반전이란 이렇습니다. 똘마니는 독살을 눈치채고 여자를 제압한 뒤, 남자 주인공이 죽였던 남자가 여자 주인공에게 선물해준 보석 따위를 내놓으라고 하여 뜯어 내고는 앞으로 계속 돈 뜯으러 올 거라고 을러댄 뒤 돌아 갑니다. 그런데 돌아 가는 길에 이 똘마니는 총격전에 휘말려 사망하는데, 똘마니의 시체에서 남자 주인공이 죽인 사람의 남긴 보석들이 발견 되기 때문에 경찰은 이 죽은 똘마니가 앞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죽은 똘마니가 살인죄를 덮어 썼으니, 남녀 주인공은 이제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남자 주인공에게 연락하려 하는데, 죄책감과 이 모든 것이 드러날 경우의 수치심에 질린 남자 주인공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이제 자기가 붙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느새 스스로 약을 먹는다는 것이 사실상의 결말입니다.


(후반부는 또 여자주인공 중심)

이것을 사실상의 결말이라고 한 이유는 이 뒤에 그 악명 높은 최후의 끝마무리 반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다 남자의 꿈이었다는 겁니다. 반전 중에서도 악명 높은 수법인 “이게 다 꿈이었다” 반전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남자는 사실은 창문에 비친 여인을 실제로 만난 적도 없었고, 그 직전부터가 모두 꿈이었습니다. 남자는 그 사실에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황당한 끝마무리 반전이 덧붙은 것은, 아무래도 1940년대 당시 분위기에서 권선징악 느낌을 주어야 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보면 이렇게 용감하게 집어 넣은 이게 다 꿈이었다 반전도 진귀한 구경거리이긴 합니다만, 일단은 그 대목은 떼어 놓고 영화를 다시 돌아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신비의 여인을 만나는 초반부, 남자 주인공이 남긴 단서가 드러나고 수사가 조여 오는 걸 남자 주인공이 직접 목격하며 초조해 하는 중반부, 똘마니의 협박과 여자 주인공의 독살 시도 반전이 이어지는 후반부, 각각은 다 재미있었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중반부에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였던 신비의 여인, 여자 주인공이 거의 안 나오고, 반대로 후반부에는 영화를 지탱하던 남자 주인공이 활약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즉,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 각각은 재밌었지만, 각 부분의 이야기가 그 다음 부분과 잘 이어진다거나, 그 다음 부분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드는 역할을 잘 못했지 않나 싶었습니다. 특히 많은 단서가 발견 되면서 범죄학 교수인 남자 주인공이 겁 먹는다는 중반부의 이야기 거리가 후반부에 거의 이어지지 않는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남자 주인공 역할을 한 에드워드 G. 로빈슨은 훌륭한 명연기를 보여 줍니다만, 저명한 남자 교수가 신비의 여인에게 빠지고 살인을 한 뒤 인생 망치는 느낌을 보여 주려면 좀 더 젊은 배우가 하는 것도 좋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여자 주인공 역할을 한 조운 베넷은 신비의 여인 역할에서는 훌륭했지만, 후반부에 독살을 시도하고 거짓말로 똘마니를 속이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연기는 잘했지만 앞의 신비로운 느낌과 잘 통하는 각본은 아닌지라 역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밖에...

프리츠 랑 감독작 입니다. 원래는 “이게 다 꿈이었다”는 반전이 없었는데, 그렇게 끝내면 권선징악 구도가 약해지고 살인이 충분히 드러나고 처벌 받는 이야기가 안 된다고 했는 지, 프리츠 랑 감독이 “이게 다 꿈이었다” 반전을 덧붙였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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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더카니지 2017/10/28 20:14 # 답글

    와...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분노하며 환불을 요구할법한 반전이군요ㅎㅎ 이게 다 꿈이었다는 반전이 사실은 약 먹고 죽어가는 남자의 망상이었으면 아주 재밌었을듯 합니다.
  • 게렉터 2017/10/29 19:37 #

    아닙니다. 이 시절만해도 그게 그렇게 안좋은 반응만을 불러오는 마무리 수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말씀하신대로 볼 여지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 rumic71 2017/10/29 15:56 # 답글

    어째 칼리가리 박사가 생각나는군요.
  • 게렉터 2017/10/29 19:36 #

    옛날에는 그래도 "이게 다 꿈이다"가 통하거나, 오히려 그러면 안도하는 관객들이 확실히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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