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노출 (죽음의 입맞춤, Kiss of Death, 1947) 영화

1947년작 느와르 영화인 “이중 노출(Kiss of Death)”는 느와르 영화의 전통적인 이야기 틀 한 가지를 그대로 차근히 따라 갑니다. 그것은 바로 범죄를 저지른 제법 뛰어난 범죄자가 이제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되어 계속 과거의 엮인 인물과 사건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틀을 따라가는 사례는 제법 많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나중의 홍콩 느와르 영화 중에도 이런 것들이 제법 있는 편입니다.


(포스터)

이 영화에서는 처음에 보석 강도 장면을 보여 주고, 보석 강도에 참여한 뛰어난 범죄자 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범죄자가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것이 초반부 입니다. 중반에서 이 사람은 마음을 고쳐 먹어 손을 씻기로 결심하고, 후반에는 이 사람을 괴롭히는 과거의 악당이 나타납니다. 그야 말로 틀 대로인 것입니다.

특징이 있다면, 이 영화에는 손을 씻으면서 주인공이 하는 일이 다른 동료 범죄자들을 검사와 수사진에게 다 불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뒤를 봐주기로 했던 범죄자 동료들이 사실은 자신을 털어 먹었고 자신의 아내까지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진절머리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수사진 역시 단순하게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함정을 파고 악당들을 통째로 걸려 들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에 맞는 좀 복잡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수사진과 사실은 한 팀이지만 사실은 수사진을 증오하는 범죄자인척 하면서 다른 범죄자에게 접근하여 정보, 단서와 증거를 몰래 빼돌려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사실은 경찰 편인데 가짜로 범죄자 편인척 하고 범죄자들 사이에 끼어든다는 이야기 거리가 나오는 셈입니다. 이런 소재는 후대에도 자주 활용되었고,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는 더 인상적으로 활용된 감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영화는 경찰 편인데 범죄자 사이에 잠입한 이야기의 옛날 고전 느와르 시절 원조에 좀 더 가까운 판본이라고 할 만합니다.


(남녀 주인공)

그렇습니다만, 틀을 차근차근 잘 따라가고 있을 뿐이지 아주 특출난 개성을 보여 주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보석상을 털 때의 조용한 풍경 속에서 긴장감을 잡아 내면서 걸음걸이에 맞춰 복도를 따라 화면이 움직여 가는 것은 멋진 연출이지만, 보석상 강도에 특별히 대단한 수법이나 놀라운 장면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검사와 수사진이 범죄자들을 붙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도 딱히 복잡하거나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주인공이 여전히 악인인척 하고 잠입해서 벌이는 일도 특이한 사연이나 독특한 연출이 많다기 보다도 그냥 그런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충직하게 중심만 차근히 따라 가는 영화에 가깝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런 주인공 역할을 대단히 열심히 하고 있는 주인공 빅터 머추어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커다란 덩치의 빅터 머추어는 임꺽정을 연상시키는 대단한 범죄자라는 느낌도 주지만, 한편 손씻고 평화롭게 살려고 할 때에는 그만큼 순박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악역)

게다가 악역을 맡은 리처드 위드마크의 더러운 놈 역할은 거의 환상적인 수준이라서, 욕하는 장면이나 칼질 장면 같은 게 있는 게 아닌데도 위험하고 무섭고 악랄하여, 금방이라도 복수랍시고 가족을 헤치러 올 느낌을 악몽처럼 드러내는 배우였습니다. 그러니, 막판 결전을 앞두고 두 사람이 담판을 짓는 장면은 그야말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화만 하는 장면인데도 그렇게 긴장감 넘치고 무슨 장면이 어떻게 나올 지 조마조마하니 기다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넘겨 가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들이 잘 와닿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명대사가 많다거나 잔재미가 있는 대사가 많은 영화는 아니지만, 뚜렷하게 인상을 남기는 인물들이 한 마디 한 마디 주고 받는 장면이 눈에 잘 들어오게 되어 있어서 단촐한 줄거리의 영화지만 보는 맛을 있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느와르 영화다운 주인공)

어둠 속에서 정체 불명의 인물이 다가올 때에 어두운 그늘 진 모습만 보이다가 나중에 절정 장면에서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어두운 화면을 과감하게 쓰는 대목처럼 한 두 장면은 멋지게 연출되어 있기도 합니다. 막판 총격전 장면은 아주 짧지만 거리 하나를 담은 세트를 완벽히 이용해서 박진감 넘치게 움직이는 차와 사람, 총의 사선과 총성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

리처드 위드마크의 첫 영화라고 합니다. 첫 영화에서 이렇게 환상적인 악역 연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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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17/11/21 17:23 # 답글

    첫 영화라니 좀 놀랐습니다.
  • 게렉터 2017/11/28 20:44 #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절대 첫번째 영화일리는 없고, 아주 악역 연기로 닳고 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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