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길 (The Crooked Way, 1949) 영화

1949년작 영화, 꼬인 길은 끝내 주는 도입부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2차 대전 중 군대에서 훈장을 탄 사나이인데 그만 머리에 파편이 박혔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기억상실증. 군대에 남아 있는 서류에는 이름과 어디에서 입대 했는지 밖에 기록이 없습니다. 제대한 주인공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 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 지 찾으려고 합니다. 돌아온 LA 거리에서 주인공은 누가 자신을 알아 볼 지 항시 두리번거리고, 주인공을 슬쩍 알아 본 듯한 사람의 반응은 의아스럽고, 놀랍습니다.


(포스터)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멋진 소설이나 영화는 몇 편이 있고, 요즘에는 일각에서는 너무 많이 남용된 느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 영화는 1949년작인 만큼, 그런 중에서는 초기작에 해당하는 편입니다. 앞부분은 연출도 좋아서, “이게 누구야? 얼마 만이야.”라는 평범한 말로 주인공에게 인사를 건내는 사람을 보며 주인공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고, 저 사람이 얼마나 친한 사람인지 위협적인 인물은 아닐 지 계속 계산하고 심각해 하는 표정을 화면에 팍팍 보여 줍니다.

거리를 걷고 사람과 스치고 지나가고, 인사를 하고,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그 일상적인 일 하나하나가 수수께끼가 되고 조마조마한 문제의 순간이 되는 이런 이야기 특유의 재미를 잘 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멋진 부분은 이 초반부이고, 정체가 대단하지 않은 인물들도 정체 불명으로 등장해서 호기심을 살려주며 장면장면에 새로운 이야기 거리를 던져 주면서 빡빡하게 이야기를 채워 나갑니다. 저는 비슷한 소재로 출발하는 “본 아이덴티티” 같은 영화에 비해 싸움 장면은 훨씬 적어도 결코 초반부의 재미는 약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느와르라면 이런 분위기)

그에 비해 중반부 이후는 아쉽습니다. 주인공의 정체는 느와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느와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로 범죄 조직에 발목을 잡혀 질척거리며 이야기는 굴러 갑니다. 주인공은 점점 오갈 곳 없어져 가는 상황에 매달리고, 범죄 조직 악당들은 총을 들고 다가 오고, 경찰도 다가 오고 뭐 그런 이야기로 흘러 갑니다. 살벌해 빠진 악당들이 괜히 주인공만 바로 죽이지 않고 시간을 끌고, 막판 결말은 그냥 경찰이 성실하게 잘 함에 따라 악당과 주인공의 노력과는 상관 없이 그냥 끝날 때 되니까 경찰이 스윽 마법처럼 권선징악으로 끝내 주는 것이라 좀 허전합니다.


(과감한 느와르 연출)

그래도 저는 재밌게 본 편이었습니다. 재미가 약해진 중반부 이후라고 해도 이야기 거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사랑했는지, 진짜로 사랑했는 지 이용한 것인지 모르는 여자를 만난 주인공이 과거를 계속 알아 내려고 노력해 가면서 서서히 다시 감정이 생기는 장면은 그야 말로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난 사랑 같은 느낌도 들 정도의 이야기인데, 그게 비정해 빠진 느와르 영화 감상으로 표현 되고 있습니다. 위험하고 알 수 없는 신비의 여인을 만나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과거에 내 부인이었다는 멋드러진 이야기의 전환도 기억에 남습니다.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두운 밤 엷게 새어 나오는 빛 사이에서 실루엣만 보이는 사람들이 살금거리며 걷고 긴장한 얼굴을 내 비치는 느와르 영화 특유의 연출도 넉넉히 나올 수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막판에 딱 느와르 영화 같은 최후를 맞는 인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악당 두령이라는 점은 싱겁지만, 쏟아지는 기관총 소리를 비롯해서 총격전 장면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화려하고 힘있게 담겨 있는 영화라는 점도 눈에 뜨입니다.


그 밖에...

로버트 먼로의 라디오 극 “No Blade Too Sharp”가 원작이라고 합니다.

존 페인과 엘렌 드류가 남녀 주인공을 맡았고, 로버트 플로리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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