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2017) 영화

은행 강도 사건으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특징은 은행 강도의 본론 자체는 거의 안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이 영화의 핵심은 강도질을 한 사람들이 도주할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 기사입니다. 이 운전 기사는 이제 갓 스물을 넘겼을까 말까한 어린 사람인데, 어딘가 장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이상하게 말이 없으며, 항상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이 영화 배경음악으로도 울려퍼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개성입니다.


(포스터)

초반부가 대단히 훌륭한 영화입니다. 일단 자동차 추격전 장면의 연출 자체가 비슷한 내용을 다룬 돈 많이 들인 대작 못지 않게 깔끔한데다가, 뭔가 성격부터 과거사까지 아주 특이할 것 같은 수수께끼의 인물을 중심으로 둔 것도 이야기에 사람을 빨아 들이게 합니다. 이 인물은 말이 없고 긴 시간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빛도 보기 어려워서 초장에는 도무지 뭔 사람인지 궁금한 것 투성이인데, 주변에 워낙 날건달 범죄자들이 그득그득하므로, 관객 입장에서는 자연히 그래도 이 수수께끼의 인물에 더 동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주인공은 대사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화면과 동작만으로 자신의 사연을 관객에게 전해 줍니다. 관객은 주인공을 낯설고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주인공에게 공감하게 됩니다. 이런 구성과 연출은 훌륭했습니다.

게다가 음악은 또 어떻습니까. 옛날 “허드슨 호크”는 거하게 망한 영화로 악명 높았습니다만, 저는 이 영화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 시간 맞추기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범죄자가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춰 작업을 한다는 장면 하나 만은 아주 기억에 깊게 남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음악에 딱 맞춰 작업을 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음악이 전면에 드러나 영화를 끌고 나갑니다. 자동차의 움직임과 주인공의 동작에 맞춰 화면이 흘러 가고 거기에 음악이 장단을 맞추는 초반부는 어떤 본격 뮤지컬 영화보다도 더 뮤지컬 같습니다. 주인공이 커피를 사 오는 장면은 그냥 그대로 뮤직비디오로 써도 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주인공의 인물 이외에도 주인공이 식당에서 만나는 여자 주인공의 경쾌하고 대조되는 모습이라든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껄렁하고 험한 인물, 그 인물의 위협,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도 다 독특하게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두 다 역할에 잘 어울렸습니다. 남녀 주인공은 특히 기가막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후반부로 접어들면 영화가 확 평범해진다는 것입니다. 후반부도 재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독특한 인물과 재치, 개성으로 넘치는 초반부에 비하면, 후반부는 “영웅본색”, “첩혈쌍웅” 같은 홍콩 느와르 영화에서 대단히 자주 보던 “범죄자가 손을 씻으려 하지만 잘 안 된다”는 이야기로 흘러 갑니다. 연출은 홍콩 느와르 영화와는 많이 다르지만 줄거리는 아주 흔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등장과 주인공과의 대화가 신선했던 여자 주인공은 그냥 별 의미 없는 흔한 남자 주인공 장식으로 쪼그라 들어 보이고, 가장 지긋지긋한 악당 같이 보였던 인간이 갑자기 “그래도 의리는 있는 범죄자” 역할이 되어 쌍권총을 들고 장렬하게 싸우는 이야기로 흘러 가는가 하면, 그 와중에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인물이 영화에서 처음부터 핵심으로 나오던 인물도 아니고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막사는 건달)

무엇보다도 후반부가 되면, 주인공이 말이 없고 항상 음악이 나온다는 초반부의 특이함이 없어져 버립니다. 주인공은 주절주절 말을 많이도 하고, 음악은 그냥 보통 평범한 자동차 추격전, 총격전 영화에 거의 가깝게 나옵니다. 초반의 멋진 느낌을 생각하면 이런 끝은, 그래도 재미 있었지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 밖에...

실제로 감독을 맡은 에드거 라이트가 90년대에 음악을 듣다가 떠올린 장면에서 아이디어가 출발한 영화이고, 2003년에는 그 아이디어로 “Blue Song”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중간에 나오는 할로윈과 오스틴 파워즈 농담이 아주 흥겨웠습니다. 그때가 차라리 이 영화의 절정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2017년에 글을 써본 것 중에서 최고의 영화들 영화 2017-12-29 08:36:43 #

    ... 게 와닿도록 보여주는 모습이 내용 핵심보다도 훨씬 더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4. 2016년의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2017) http://gerecter.egloos.com/5331372 상투적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는 후반부와 그 후반부에서 당황스럽도록 대충 만든 듯한 줄거리로 움직이는 악역들은 싫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초반부에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