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수학책, 사극에서 써먹기 기타

보통 사극이나 역사물에서 주인공이 공부하는 장면을 넣는다면 흔히 중국 유교 경전인 "논어", "맹자"를 읽는 장면을 넣곤 합니다. 그렇습니다만, 조금 색다른 장면을 구상한다면, 저는 주인공이 수학 공부를 하는 장면을 넣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조선시대 수학책인 “구수략”으로, 규장각 한국학 문화연구원이 출처입니다.)

예를 들어, 신라에는 "삼개(三開)", "육장(六章)"과 같은 수학책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 수학책들 중에는 이런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마 한국 지역에서 자체 개발된 수학책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습니다.

내용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문제와 풀이를 다루고 있는 책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육장"이 중국의 대표적인 수학 고전인 "구장산술"과 이름이 비슷한 것으로 미루어 "구장산술"에서 중요한 내용을 발췌해서 재편집, 해설한 것이라거나, "구장산술"의 일부를 더 배우기 쉽게 개선한 내용이 아닐까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구장산술"은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넓이 구하기, 비례식, 방정식, 피타고라스 정리 활용 문제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육장"의 내용도 아마 그 중 몇 가지를 다루거나 그 비슷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에 비해 "삼개"는 조금 더 심화된 어려운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닐까하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아마 측량에 관한 기법 중에 어떤 것을 다루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육장", "삼개"는 비교적 널리 읽혔을 것입니다. 우선 신라의 국립 교육기관에서 과목으로 편성이 되어 있었고, 거의 같은 이름이 일본의 제도에도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장"과 "삼개"는 한반도에서 개발되어 일본에도 수출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 기록에도 "삼개"에 대한 내용은 나오기 때문에 수백년 동안 이 내용이 활용 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육장"과 "삼개"의 저자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김용운, 김용국 선생의 "한국수학사"에는 이 내용이 일본에 전해진 것을 근거로 원래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던 백제에서 생긴 책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맞다면, 삼국시대에도 유통되던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한편 가와하라 히데키의 "조선수학사"에는 일본 기록을 근거로 이 책의 저자가 고(高)씨라고 추측하고 있는데, 만약 이 말이 맞다면,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저자를 "고생(高生)"또는 "고랑(高郞)"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타임머신을 타고 삼국시대로 가서 고등학교 수학을 전해주면서 자신의 신분을 '고교생'이라고 주변사람에게 설명한 것이 이렇게 기록된 것이라면??)

조선시대로 넘어가면, 중국에서 "산학계몽", "상명산법", "양휘산법" 같은 훨씬 수준 높은 내용을 다룬 수학책이 도입되면서 교재로 일상적으로 활용됩니다. 그러면서 "육장", "삼개"의 흔적은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러면서도 중국 수학의 내용을 이해, 발전시켜서 중국과는 다른 갈래로 발전시켜 나가서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고, 조선후기가 되면, "묵사집산법(默思集算法)", "산학원본(算學原本)" 이나 "산학입문(算學入門)" 같은 조선 사람이 쓴 수학책 중에 잘된 것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더 체계적이고 쉬운 해설을 소개하기도 했고, 나름대로의 연구결과를 담기도 했습니다. 공부의 편의를 위해서, 공식이나 풀이법을 쉽게 외우기 위한 노래나 시를 수록하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이런 것도 신기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사극에서 주인공이 공부하는 장면을 넣을 때, 중국 유교 경전 뿐만 아니라 우리 수학책을 공부하는 장면을 넣는 것을 저는 한번 추천해 봅니다. 고려시대 이전이라면, "육장", "삼개"를 공부하고, 조선시대라면 "묵사집산법"이나 "산학원본"을 공부하는 장면을 넣는 겁니다. 땅 넓이를 계산하는 일이나 돈 계산, 이자 계산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실용적인 목적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수학자, 천문학자, 또는 기술담당자나 회계담당자로 관청에 취직하기 위한 꿈을 품고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은 자연스러울 겁니다.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전문 수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양반들도 수학을 교양으로 익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명한 황희 정승도 수학에 밝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조선 수학책의 수작으로 꼽히는 "구수략"의 저자 최석정도 숙종 때 정승이었습니다. 그러니 뭔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에 심취하는 것을 좋아하고, 괜히 여러 분야의 연구에 흥미를 보이는 재미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사극 속에서 그려낼 때에도, "육장", "삼개", "묵사집산법", "산학원본" 같은 수학책을 공부하는 모습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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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역사관심 2018/02/13 12:03 # 답글

    강추, 동감입니다!
  • 게렉터 2018/02/18 01:44 #

    매번 저도 좋은 자료 역사관심님 블로그에서 잘 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뇌빠는사람 2018/02/13 16:15 # 답글

    사농공상이라 하여 도량형을 세거나 돈 따위의 셈을 하는 것은 제일 아랫것들 짓이라 여겼었습죠 ㅎㅎ

    그렇게 돈 버는 일을 사갈시하는 문화였다가보니 이상한 공산주의 신봉 사상 같은 게 뿌리내린 게 아닐까 할 정도로
  • 해색주 2018/02/13 20:37 #

    지금도 금융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식이 안좋습니다. 유구한 전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게렉터 2018/02/18 01:44 #

    윗 글에도 써 놓았지만, 조선시대에는 수학 자체는 사대부 교양으로 여긴 측면도 일부는 있었습니다.
  • 남중생 2018/02/13 18:25 # 답글

    오오, 이런 사극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곧 소개 포스팅을 하지요^^
  • 게렉터 2018/02/18 01:43 #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소개해 주신 문답이 드라마에는 또 더 잘 어울리는 듯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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