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2016)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대부분은 여자 주인공이 전남편에게 우편으로 받은 소설 원고를 밤에 읽는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읽다가 놀라기도 하고, 몇 가지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현실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일단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하고 담담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비롯해서 영화 속 가상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격한 인상을 갖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리저리 섞어서 펼치면서 감상을 점점 깊게 만들고 장면장면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였습니다.


(포스터)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맛 볼만한 재미의 대부분은 이런 인상적인 내용들을 이어다 붙이는 구성과 편집이었습니다. 영화 속 소설 내용이 극화 되어 화면 위에 펼쳐지다가, 그 소설을 읽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과 현재 상황을 보여 주다가, 여자 주인공의 과거 회상 장면을 보여 주다가 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이야기를 뛰어 들며 이야기가 왔다갔다 합니다.

전환 마다 비슷한 화면 구도를 따라 가면서 연결하기도 하고, 같은 소재를 두고 연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 주인공의 딸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문득 화면을 바꾸어 소설을 읽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실제 딸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 뛰는 것입니다. 화면을 이렇게 바꾸는 것은 경쾌하고 도전적으로 되어 있어서, 과거 회상 장면을 보여 준다고 “10년 후”라고 자막을 띄운다거나 하는 것 없이 바로 건너 뜁니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서 떠올리는 내용을 따라 간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그래도 이런 널뛰기 같은 전환을 부드럽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여자 주인공이 소설에서 딸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을 읽었고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실제 딸이 생각이 나서 실제 딸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으로 영화를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야기를 휙휙 넘어 다니는 구성이기에 놀랍고 강한 인상으로 이야기를 보면서도, 이해는 어렵지 않고 여자 주인공의 마음 속에 깊숙이 들어 가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나래이션으로 주인공의 마음 속을 실제로 들려 준다든가 하는 내용 없이, 그 표정과 태도만을 지켜 보게 하는 형식입니다. 더군다나 문제의 전남편은 자신이 쓴 소설 원고를 보냈을 뿐이지 현재 모습으로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야기 속 인물의 심정과 생각에 굉장히 밀착해서 내용을 다루는 듯이 진행되는 영화면서도 동시에 구체적인 심정 자체를 직접 전달해 주는 장면은 적어서, 자꾸 관객이 그 심정과 마음을 상상하게 하고, 그렇게 상상한 삶과 생각과 감정에 미루어 이야기를 돌아 보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얻어 맞는 장면이 나왔다고 합시다. 맞는 장면이니까 강한 장면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 바로 뒤이어 소설을 읽던 여자 주인공이 약간 놀란 듯한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읽던 소설을 갑자기 덮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왜 그러는 것일까요? 여자 주인공의 마음 속에 남자 주인공이 그렇게 얻어 맞는 장면이 어떤 큰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여자 주인공은 충격을 받은 것일까요? 무서움을 느끼거나 화가 난 것일까요? 미묘한 표정을 계속 관찰하게 되고, 소설 속에서 남자 주인공이 맞는 장면의 의미도 관객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한 대 맞는 장면인 소설 속 장면이 그 이상으로 더 깊고 강하게 보이게 됩니다. 이런 모든 궁금증과 몰입을 불러 일으키도록 하면서 소설을 읽는 모습을 연기하는 에이미 아담스의 모습도 아주 훌륭합니다.


(소설 읽는 사람)

이런 여러가지 구성과 아이디어들이 멋지게 잡혀 있는 것에 비하면, 정작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는 소설 속 줄거리 자체는 좀 퀴퀴한 구석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한 남자가 껄렁한 패거리를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외딴 시골에서 만나는데 자신의 부인과 딸을 보호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고 어쩌고 하는 내용인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조마조마한 초반에 비해서, 계속 따라가 보면 그냥 이런 이야기에서 자주 보던 대로 흘러갈 대로 이야기가 흘러갈 뿐입니다. 최근 한국 영화들에서 워낙에 많이 다룬 소재이기도 합니다. 자극적인 장면과 소재를 콱콱 던지면, 더 진지하고 무겁게 느껴 질 거라는 식의 수법이 그저 드러나는 점도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여자 주인공의 과거 회상 역시 연인간의 경제적 격차, 임신 등의 소재를 다루는 방법이 관습적인 틀 그대로였던 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따라 나가는 것이 재미의 큰 부분인 영화였지만, 남자 주인공은 순수를 쫓는 청년, 여자 주인공은 속물 위선자라는 식의 구도가 그저 생기 없이 펼쳐질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들은 신기하고 특이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기대를 준 독특한 분위기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느낌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소설 속 장면)

음악은 재미있었습니다. 평범한 한 순간도 그 속에서 깊이를 찾게 해 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듯해서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소설 속 내용이 갈 수록 좀 따분해진다고 말씀 드렸는데,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검은 밤거리에서 무슨 일이 터질 지 모르게 조마조마하게 펼쳐지는 초반은 역시 연출과 편집에 엮여 사람을 빨아들이는 맛이 있었습니다. 검은 공간에서 인물들만 남아 있는 신화적인 느낌, 연극 무대 같은 느낌, 혹은 현실이 아닌 극중 공간이라는 느낌이 멋지게 살아 났습니다.

그러니, 도대체 왜 전남편이 소설을 보내 주었으며 전남편과 주인공은 무슨 관계였고, 소설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며, 지금 주인공은 전남편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소설의 굽이굽이 마다 주인공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나하나가 수수께끼이고 비밀이 되어, 영화 속 내용을 계속 궁금해 하면서 이야기를 따라 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밖에...

톰 포드가 감독을 맡은 영화입니다.

덧글

  • 역사관심 2018/05/28 03:05 # 답글

    뒤늦게 포스팅에 답글을 답니다. 이 영화 첫장면부터 끝까지 매우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마지막 카페장면이 정말 여운이 길더군요...
  • 게렉터 2018/05/30 09:33 #

    몇몇 장면 연출과 편집은 정말 좋았죠. 저는 정작 문제의 소설 내용이 좀 갑갑해서 아쉬웠습니다만, 장점도 꽤 쉽게 눈에 뜨이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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