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동무 (Comrade X, 1940) 영화

1940년 MGM사 제작, 킹 비도어 감독작 "엑스 동무"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 후 자리잡은 지 얼마 안 되었던 당시, 소련이라는 전체주의 통제국가를 풍자하고 놀리고 비웃는 내용이 중심이 되는 모험물입니다. 줄거리는 소련 당국이 "엑스 동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스파이를 색출하려고 난리를 치고 있는 와중에, 일이 꼬인 미국인 특파원이 소련을 탈출하기 위해서 자신이 머무는 호텔의 한 직원과 그 직원의 딸과 함께 모험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포스터)

지금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남의 나라에 대한 조롱이 심한 영화라서 문제가 있다 싶을 정도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아직 냉전이 시작되기 한참 이전 시기에 나온 영화인데 자본주의 입장에서 공산주의 통제국가를 비웃는 내용이라는 면에서 좀 여유롭고 색다른 면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딸은 정말로 순수한 공산주의자인데, 그래서 이 나라에 있으면 위험하오. 그러니 내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도망쳐 주시오. 소련 공산주의 정부는 정말로 순수한 공산주의자를 모든 사상가 중에서 가장 싫어한단 말이오."라고 하는 대사는 이념을 뛰어 넘어 정부와 권력 기관의 위선과 왜곡을 지목하는 보편적인 말로 어디서나 써먹을만 합니다.

그런 식으로 전체주의 체제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잡아내는 대목이 재미난 것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얼간이거나 맹목적인 충성에 빠진 자, 극단주의자 밖에 없는 것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 소련 시민의 면면은 심해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신문기자 클라크 게이블과 전철 기관사 헤디 라마르)

그렇게 보면, 이 영화의 중간 대목에서 갈등의 축이 되고, 영화 개성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인물로 헤디 라마르의 배역은 이 영화에서 가장 건질만한 내용입니다. 헤디 라마르는 열성적이고 극단적이고 순수한 공산주의자로, 주인공을 맡은 클라크 게이블의 배역이 적당히 선동하자 미국을 공산화시키겠다는 일념을 품고 하루 아침에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하는 사람인데, 그처럼 사상과 이념에 너무나 심하게 빠져서 아주 괴상한 삶을 사는 이상한 사람으로 웃기게 그려지는 것이 바탕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헤디 라마르가 연기를 멋지게 하는데다가 뒤흔들리는 온갖 소동 속에서 한 가지 방향을 붙들고 있는 모습 덕택에 살짝 승화되어 단순히 이상하고 웃긴 사람이 아니라 나름의 멋을 갖고 있는 면모도 보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람의 직업은 전철 기관사인데, 여자는 전철 기관사가 될 수 없다는 정부의 서류 처리 방침을 뛰어 넘어 전철 기관사가 되기 위해 남자 이름으로 개명한 뒤에 전철 기관사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결혼에 종교적인 의식이 전혀 없고 그저 서류 절차일 뿐인 공산주의 체재 때문에 하루 아침에 결혼하고 하루 아침에 이혼한 경험이 있으면서 또 하루 아침에 결혼하면서 그것을 조금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은 당시 할리우드 영화의 악역이 아닌 여자 주인공에게서는 보기 힘든 면으로 어떤 힘을 드러내는 점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소련 비밀경찰에 검거된 후 총살을 기다리는 감옥 장면의 처연한 모습에서는 그냥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아니라는 진지함도 충분히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시무시한 전체주의 소련 정부 때문에 일이 자꾸 꼬이는 와중에 하룻밤의 모험은 점점 골치 아파지고, 그 와중에 헤디 라마르를 따라 클라크 게이블이 여기 저기를 다니면서 소련 사회의 이상하고 엉뚱한 모습을 겪는다는 식의 내용으로 영화가 진행되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스파이로서 정체를 감추려고 애를 쓰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도 끼어 드는 형태로 내용이 흘러 갑니다.

엉뚱한 소련 사람들의 모습과 재담이 곳곳에 들어 가 있는 대사 위주의 영화라서 화려한 장면 연출은 스파이물치고 약간 적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전철을 운전하며 모스크바를 달리는 헤디 라마르의 모습 같은 대목은 그저 그 구성만으로도 멋이 있고, 마지막 절정 장면에서 주인공이 탱크를 타고 도주하는 장면만은 여러 대의 탱크가 동시에 떼거리로 등장하면서 물량 공세로 화려함을 충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50년 뒤에 나온 "007 골든아이"에 나오는 탱크가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과 거의 비슷한 아이디어인 셈인데, 약간 늘어지고 음악이 재미가 없는 터라 "007 골든아이"의 장면 보다는 약했지만, 거창한 클라이막스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

우리 나라에서 헤디 라마르 출연작이라면 아마도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 역할이 가장 잘 알려진 축에 속하겠습니다만, 제가 꼽기로 헤디 라마르의 대표작을 골라 보라면 이 영화를 꼽아 보겠습니다. 헤디 라마르의 흔한 "위험한 여자" 배역이기도 하면서 개성은 독특하고 그 개성이 영화 내용의 중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에는 2차대전 초기로 아직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으로 사실상 동맹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영화 내용 중에 클라크 게이블이 사기치기 위해 "독일이 소련을 배반했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된지 1년 후 실제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이 영화에 나온 클라크 게이블의 사기치는 장면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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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더카니지 2018/06/17 18:20 # 답글

    엑스 동무...시대를 앞서나간 엑스세대 예언인가요ㅋㅋ
    설명만 들으면 뭔가 공산주의 유머를 영화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재밌어보이네요! ㅎㅎ
  • 게렉터 2018/08/10 21:18 #

    말씀하신대로의 영화입니다.
  • 무지개빛 미카 2018/06/17 19:31 # 답글

    스탈린을 저런식으로 모욕하다니... 순수한 공산주의자를 소련련방은 가장 싫어한다니!!
  • 게렉터 2018/08/10 21:19 #

    사실 소련 놀리려는 내용의 약간 선전 영화 비슷한 사상성 강한 영화인데, 냉전 시기 이전에 나온 그런 영화라는 면에서 또 좀 가벼운 흥취가 독특한 맛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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