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의 거리 (Boom Town, 1940) 영화

1940년 MGM사 제작, 잭 콘웨이 감독작 "열광의 거리(Boom Town)"는 석유를 파 내는데 성공만 하면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나방처럼 석유 캐기에 사람들이 몰려들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입니다. 기회는 열려 있고, 누구나 갑자기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열병처럼 감돌아서 제2의 서부 개척 시대를 연상케 하는 20세기 초중반. 빈털터리지만 기회를 찾아낸 것 같아 요즘말로 하자면 스타트업을 해보려고 하는 석유판의 일꾼 스펜서 트레이시가 우연히 클라크 게이블과 친구가 되면서 성공, 실패, 좌절, 재기, 배신의 파란만장한 부침을 겪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포스터)

급성장기에 일확천금 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과 부자, 갑자기 부자가된 가난한 사람, 부자가 되었다 망한 사람의 이야기에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를 살짝 곁들이는 것은 하나의 유형이 될 정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한국 연속극 "사랑과 야망"은 한국의 건설 경기를 배경으로 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얹었습니다. 이 영화처럼 석유 파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는 내용도 사례가 없지 않아서, 좀 더 한국에서 잘 알려진 "자이언트"와 이 영화는 닮은 면도 많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의 모범으로 한번 꼽아 볼만하고, 선명한 인물, 적절한 속도로 몰아 닥치는 빠른 이야기,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들이 괜찮게 섞여 있습니다.

다채로운 이야기라고 하면, 정말로 서부 개척 시대 마을을 연상시키는 텍사스 석유 개발 마을의 풍경과, 진흙뻘로 개판이 된 도로를 지나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을 안아 들고 건내어 주는 사람의 모습, 석유 개발로 사기 치는 사람들 이야기, 석유 캐는 시설이 망하는 실망감, 석유가 터지는데 성공한 감격, 석유 캐는 시설에 불이 붙었을 떄의 무서움, 해외 석유 개발, 석유 개발을 따라 떠돌아 다니며 사는 삶, 벼락 부자가된 사람들의 돈 쓰고 다니는 모습, 기업화된 석유 회사가 정유, 석유화학 회사로 거듭나는 모습, 기업들간의 암투 이야기까지 석유에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건드리고 있으며, 대체로 그럴듯한 모습으로 잘 보여 줍니다.

"자이언트"와 비교한다면 이 영화 쪽이 이야기 거리가 더 많고 더 빠르고 더 선명하고 더 알기 쉬운 대신 장면 장면 연출의 화려함과 장중함은 "자이언트" 쪽이 훨씬 앞섭니다. 빈털터리지만 석유가 터질 꿈을 갖고 소박하게 시설을 차린 사람의 심정은 두 영화 모두에서 다루고 있고, 석유가 마침내 터진 감격도 두 영화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이언트"에는 자기 땅이 몇 발자국이나 되는지 제임스 딘이 한 바퀴 빙 돌아 보는 장면이나, 쏟아지는 검은 석유를 가뭄 끝의 단비처럼 온몸으로 맞으며 감격하는 장면 같이 영원한 명장면으로 연출된 대목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면들은 그런 점에서는 좀 빠집니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결코 화려함이나 거창함이 부족한 영화는 아닙니다. 사방에서 불이 펑펑터지는 유전의 화재 장면은 한 세대 후의 전쟁터 장면 연출 못지 않게 박력이 넘쳤습니다.


(석유 스타트업에 모든 것을 건 젊은이들, 중앙 스펜서 트레이스, 오른쪽 클라크 게이블)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멋진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빚어내는 뚜렷한 갈등입니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짝이 되어 마침내 석유를 파내는데 성공한 두 친구는 스펜서 트레이시와 클라크 게이블인데, 트레이시 쪽은 뚝심이 있고 석유에 대한 감각이 좋은 편이고, 그에 비해 게이블은 여유와 사람 다루는 사업 수완이 좋은 쪽입니다. 여기에 트레이시가 한 평생 짝 사랑해 온 사람 역할을 맡은 클로뎃 콜버트가 엮이는데 콜버트는 게이블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트레이시와 게이블은 결국 갈라서게 되는데, 트레이시는 게이블과 원수가 된 후에도 자기가 너무나 사랑한 콜버트가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히려 게이블을 돕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여유만만하고 연애에도 능하며 항상 멋진 명대사를 날리는 인물을 연기하는 클라크 게이블과 그에 비해 조금 무뚝뚝하지만 순정파인 인물을 연기하는 스펜서 트레이시는 각자 자기들의 주특기를 맡아서 화려하게 그 모습을 내뿜고 있고, 여자 주인공인 클로드 콜버트도 제 역할을 잘 해 주고 있습니다. 헤디 라마르는 클라크 게이블이 대성공한 이후에 삐딱해져서 바람 났을 때 바람난 상대 역할인데, 자유 분방하고 사업 공작에 천재적인 지식을 가진 인물로 멋지게 등장해서 우아하고 재치 있는 대사를 던지는 역할을 하는데 역시 좋았습니다. 이야기 속에 엮여 펼쳐지는 갈등 중 하나를 맡고 있는데, 연기도 깨끗하고, 마지막에 "사실은 나도 사랑의 순수함이 있었는데"를 슬쩍 집어 넣는 신파극식 연출은 사실 무리수였는데도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위험한 여인 역할로 나온 헤디 라마르)

결말은 이런 부류의 파란만장한 곡절을 다루는 이야기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 갑니다만 여운도 있고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을 법정극으로 때운 것은 좀 상투적이었지만 그래도 온갖 다툼과 갈등이 있었는데 막판에는 정부 규제와 방침이 개입하는 형사 재판까지 끼어든다는 것도 석유 사업의 한 축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가치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보통 이 영화부터 헤디 라마르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본래 악역에 가까운 배역인데 비중도 너무 작아서 영화사에서는 반대를 했다는데 내용이 좋아서 헤디 라마르가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봤습니다.

클라크 게이블 출연작 중에 가장 크게 흥행한 영화 두 번째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첫번째는 전설적인 흥행 기록을 갖고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스펜서 트레이시와 클라크 게이블은 현실적이고 진지한 연기와 영화 갖고 멋지게 폼잡는 연기라는 두 연기 방식의 극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만한데, 그 때문에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보완해 주는 역할로 같이 출연한 영화가 몇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결과가 무척 좋은 사례였다고 할만한데, 이 영화 이후로는 둘이 같이 나온 영화가 없습니다. 둘은 실제로 사이도 좋았다고 하는데, 인터넷에 도는 이야기를 보면, 스펜서 트레이시와 클라크 게이블 둘 중 누구를 간판 배역으로 올릴 지 영화사에서 난감해져서 이 영화 이후로 같이 나온 영화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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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더카니지 2018/06/17 18:29 # 답글

    헤디 라마르는 정말이지 흑백 사진 속에서도 이국적 아름다움이 환히 빛나네요. 헤디 라마르를 주인공으로 한 밤쉘이 개봉했는데 어떻게 이분을 다뤘을지 궁금
  • 게렉터 2018/08/10 21:19 #

    밤쉘 리뷰도 올라갔습니다. 밤쉘도 보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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