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와서 나랑 같이 살아요 (Come Live with Me, 1941) 영화

1941년 MGM사 제작, 클레어런스 브라운 감독작 "이리 와서 나랑 같이 살아요"는 이제는 미국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된 이야기 거리를 활용하는 영화입니다. 그 소재란 불법 이민자가 있는데 미국에 체류하기 위해 미국인과 위장 결혼을 하고,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어쩌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서 불법 이민자이자 오스트리아에서 온 갑부 역은 헤디 라마르가 맡았고, 위장 결혼을 해 주는 가난한 미국 시민은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았습니다.


(포스터)

헤디 라마르가 속해 있는 상류 사회의 특이하고 재미난 모습을 한 가닥 보여 주고, 그 다음 제임스 스튜어트가 속해 있는 빈털터리와 빈자들의 삶의 모습을 한 가닥 보여 주고, 그 둘이 같이 섞여 살아 가는 거대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그 둘을 잇는 것으로 초반 이야기를 버티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헤디 라마르는 어떤 결혼한 갑부의 애인인데 그 갑부란 자는 결혼했으면서도 애인을 두기로 아내와 합의 하에 살고 있는 인물이고, 제임스 스튜어트는 작가 지망생인데 이리저리 일이 다 망해 먹어서 좀 툴툴거리고 있는데, 그러는 와중에서도 비아냥거리는 농담의 솜씨와 명예를 지키는 태도는 갖추고 있는 인물입니다.


(별처럼 높이 있는 부자와 진흙처럼 가라 앉아 있는 빈자가 함께 살고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곳이 도시)

이 영화를 빛내 주는 배우는 제임스 스튜어트입니다. 암담한 빈털터리 신세인 모습도, 그러면서 갑자기 자기와 결혼을 해 달라는 사람을 만나서 황당해 하는 모습도, 그러면서 서서히 생각이 변해가고 감정이 변해가고 새로운 결심을 하는 모습도 다 그럴싸하게 보여 줍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 먹을 수 있게 말투와 얼굴 표정으로 확확 드러내서 연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과장된 느낌 없이 진짜 같고, 분명히 힘늦게 사는 빈자의 모습처럼 연기를 하지만 동시에 멋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가난뱅이이자 소시민인 제임스 스튜어트의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따라 가게 되고, 과연 결말이 어떻게 나게 될 지 지켜 보게 됩니다.

제임스 스튜어트의 대표작으로 흔히 "멋진 인생"이나 "현기증" 같은 걸작들이 언급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화 자체가 워낙 훌륭하고 각본도 좋아서 좋은 걸작 속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것 못지 않게, 비교해 보자면 평범한 편인 이 영화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보여 주는 연기를 보고 있으면, 오히려 배우 개인이 연기를 잘해서 멋지다는 것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 지 더 잘 드러난다는 느낌입니다.

뉴욕 밤거리에 어느 먼나라에서 온 갑부 미녀가 나타나서 한 빈털터리 남자에게 다가 가더니 이것저것 물어 보며 관심을 보입니다. 빈털터리가 왜 관심을 가지는지 묻자, 대뜸 "결혼하려고 그런다"라고 대답하고, "나는 빈털터리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왜 나와 결혼하려는지" 다시 묻자, "빈털터리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려는 거다"고 대답하는 신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중반은 제임스 스튜어트의 이 연기와 거기에 충실히 보조를 맞춰 주는 헤디 라마르의 연기 덕택에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위장 결혼이 진짜 감정으로" 이야기의 표본으로 좋을 만큼 흥겨울 정도였습니다.

대사도 재밌는 것이 많아 즐거운 때가 많습니다. "제 직업은 작가입니다. 증거로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 결과 통지서가 여기 이렇게 많이 쌓여 있지 않습니까?"


(헤디 라마르와 제임스 스튜어트)

다만 결말은 억지일 뿐이고, 그냥 낭만적인 분위기이고 사랑은 소중한 것이고 가난한 제임스 스튜어트가 왠지 더 진실한 사랑 느낌이니까 그냥 이쪽으로 가자고 밀어 붙이는 분위기라서 훨씬 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임스 스튜어트의 소박한 고향집에 갔다가 화려한 상류 사회의 헤디 라마르가 그 소박함 속에서 진실함을 느낀다는 구조는 상투적입니다. 집안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명언"들이 복선이 되는 구성이나, 반딧불의 빛 신호를 복선과 상징으로 이용하는 내용처럼 그 와중에도 재미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애정 관계의 돌변을 이끌고 나가기에는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이 잘 안풀리자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는 것이 솔직한 감정의 표현인 것처럼 연출되는 따위의 옛 시대에나 통할 법한 내용도 좀 많았습니다.

결말은 납득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커다란 눈으로 감동한 감정을 한껏 담아 보내는 헤디 라마르의 연기로 그나마 때우고 있어서 버텨낸 수준입니다. 영화 중반에 작가가 자신이 겪는 실제 사랑 이야기를 글로 써서 성공하기 시작하고, 한편 그 글을 출판하는 출판사의 갑부 사장은 그게 자기도 엮인 사랑 이야기임을 깨닫는다는 재미난 구도가 잠깐 나오기도 하는데, 그저 잠깐 재미거리 하나를 더 하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밖에...

영화 속에서 헤디 라마르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합병되는 바람에 오스트리아에서 탈출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실제 배우 헤디 라마르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고 나치 독일의 득세 이후에는 자기 가족들을 미국으로 데려 오려고 애쓴 적이 있다는 점과 겹칩니다.

제목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시, "The Passionate Shepherd to his Love"의 앞 부분에서 따온 것으로 극중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진심을 고백하며 헤디 라마르에게 읊어 줍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열정적인 목동이 애인에게"라는 번역 제목으로 통합니다. 홍콩 영화 "대취협(방랑의 결투)"의 영어 제목이 "Come Drink with Me"인데 이 영화 제목과 운율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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