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물 (White Cargo, 1942) 영화

1942년 MGM사 제작, 리처드 토어프 감독작 "백물"은 아프리카의 어느 고무 농장에서 일하러 온 백인 남자들이 겪는 일을 다룬 내용입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 너무나 덥고 괴로운 곳에 주인공들이 와 있는데, 그 중에 닳고 닳은 냉소적이고 노련한 사람, 만사 포기하고 술에 쩌들어 있는 의사, 오직 집에 돌아 갈 날만 꿈꾸고 있는 나약한 사람, 멋 모르고 새로 들어온 사람 등등의 인물이 있어서 서로 빚는 갈등을 다룹니다. 그 와중에 원주민 여자인 톤델라요가 등장하고, 멋 모르는 새로 들어온 사람은 빠져 듭니다.


(포스터)

인종 문제에 대한 반성이 휩쓸고 지나간 요즘에는 이 모양대로는 나올 수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남자들은 사실 남의 나라 정글에 쳐들어 가서 털어 먹는 장사를 하고 있는 백인들인데, 그저 대단히 고생을 하고 있는 것으로만 나오면서 좀 불쌍한 듯이 그려지고, 반면에 원주민들은 대부분 멍청하면서도 결코 믿을 수 없는 야비하고 무서운 사람들로 나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인물인 톤델라요는 타락과 사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소롭게 멍청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노련한 백인에게 제압 당해 버립니다.

괴이한 것은 그런 덕분에 톤델라요를 맡은 헤디 라마르의 연기력이 폭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헤디 라마르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배우로 사실 백인 남자를 유혹하는 아프리카 원주민 여자 역할로 금새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아닌데, 이 영화에서 아프리카식 영어를 구사하면서 원초적으로 접근하는 불길한 모습을 깨끗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주로 유럽에서 온 신비롭고 고고하지만 뭔가 위험한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역할을 연기하던 헤디 라마르가 어떻게 이렇게 확 연기 변신을 했는지 화제거리가 될 만한 정도입니다.


(헤디 라마르)

내용은 "마카오", "카사블랑카" 처럼 이국적인 배경에 느와르 영화 분위기를 엮어 나가는 이 시절 느와르 영화의 흔한 방식 그대로 진행 되고, 아프리카의 덥디 더운 농장 사무실이 배경이라는 것 말고 딱히 특이할 것도 없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가 가득한 이상한 이국적인 동네, 그곳에 모인 주인공과 인종이 같은 일행 몇몇, 그 사이의 갈등, 위험한 여자, 배신과 내부 다툼,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딱히 더 복잡할 것도 없고, 특별히 묘한 이야기 거리도 없습니다. 아프리카 정글 지역이 배경인 영화입니다만, 딱히 화려한 장면이나 자연 광경을 이용하는 장면도 없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심심하게 그냥 사무실 방 안에서 펼쳐 집니다. 원작이 연극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바로 이 정글 속 농장 사무실 세트 안에서 벌어집니다.)

개성은 대사 속에 숨어 있는 당시 아프리카 사정과 관련된 몇몇 지역적 특색이 담겨 있는 말들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역시, 다시 한번, 주인공을 유혹하는 헤디 라마르의 불길한 연기가 재미인 영화입니다.


그 밖에...

아니나 다를까 이 시절 느와르 영화의 관습대로 과거 회상 장면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끝까지 보면 어두워 빠진 이야기에서 별 상관 없이 그냥 결말을 약간은 상쾌한 느낌으로 가다듬어 주는 효과가 있는 것 이외에 과거 회상 장면으로 꾸릴 이유가 전혀 없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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