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마마와 벨보이 (Her Highness and the Bellboy, 1945) 영화

1945년 MGM사 제작, 리처드 토어프 감독작 "공주마마와 벨보이"는 뉴욕에 온 유럽 어느 나라의 한 공주와 그 공주가 묵고 있는 호텔의 벨보이가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렇게만 말 하면, 고귀한 여자와 가난하지만 유쾌한 남자가 엮이는 "로마의 휴일" 같은 이야기일 것 같고, 잠깐 그렇게 흘러가기도 합니다만, 그런 구성은 아닙니다.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흥겹게 두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갑니다.


(포스터)

공주와 벨보이가 뉴욕 도시 여러 곳을 돌며 같이 모험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주는 공주대로 이야기가 있고, 벨보이는 벨보이 대로 이야기가 있는데, 호텔에서 같이 만나고 헤어지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영향을 주면서 두 개의 이야기를 굴리는 형태입니다. 그 구조 덕택에 나름대로 참신함을 세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중심 줄기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도시 뉴욕, 별별 재미난 이야기 낭만적인 사연도 많다"는 할리우드 사랑 이야기 속 뉴욕, "메디슨 스퀘어의 아라비안 나이트" 느낌을 충실히 따라 가는 내용입니다. "로마의 휴일" 이야기를 했는데, 절정 장면은 단체 난투극 대소동 장면이라는 점은 두 이야기가 같습니다. 그만큼 놀랍고 화려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기본대로 진행되는 편안한 이야기에 더 가까웠습니다.


(뉴욕에서 만난 공주마마와 벨보이)

웃기는 장면이 좀 값싼 것이 많은 영화이기는 합니다. 코미디로 한 시대를 풍미한 랙스 랙랜드의 코미디 조연 역할은 그야말로 영구 코미디일 뿐이고, 언어유희로 웃기고 넘어 가는 것도 가벼운 말재간이 갑자기 튀어 나오는 정도입니다. 보고 있으면 웃긴 장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아무래도 영화에 잘 결합된 것이 아니라 그냥 웃기기 위해 때려 박은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줄거리의 개성 속에서 군데군데 생동감 있는 면모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보통 이런 영화는 공주가 아무것도 모르고 오해를 하고, 닳고 닳은 벨보이쪽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상황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절정 장면에서 그 반대로 이야기를 꾸며서 오히려 더 감동을 이끌어 내게 만들었다는 구조는 신선했습니다. 좀 뜬금 없이 그냥 볼거리를 위해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화려하고도 환상적으로 치장된 중간의 동화 속 궁전을 상상하는 꿈장면 같은 것들은 당시 기술의 최선을 보여 주는 멋진 연출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공주가 벨보이에게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는 장면처럼 평범한 이야기 속 소재를 다루었지만 연기와 분위기, 연출이 깔끔한 것도 좋은 편입니다.


(공주마마)

한번 보면 누구나 넋을 잃을 만한 유럽에서 온 공주 역할을 한 헤디 라마르는 주특기를 잘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헤디 라마르는 보통 느와르 영화의 "위험한 여자" 역할에 가까운 모습으로 더 많이 출연하지 않았나 싶은데, 이 영화에서 순박한 공주로서 뉴욕의 껄렁한 이치는 잘 모르는 사람 역할을 연기하는데도 조금의 부족함 없이 대단히 설득력 있게 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주와 다른 이야기로 엮이는 컬럼니스트, 작가 배역이 하나 더 나오는데, 이 배역은 옛 시절 영화 속 세상의 한계 때문인지 괜히 "남자의 자존심" 운운하는 재미 없는 모습으로만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상대역 모습을 대충 다듬어 어울리게 해줄 정도로 공주 연기는 재미있었습니다.


(벨보이)

더욱 제몫을 톡톡히 보여주는 배우는 남자 주인공 역할인 로버트 워커입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에서 사악한 악역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아닌가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소박하지만 쾌활하고 넋살 좋은 벨보이 역할을 아주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초반에 동네 사람들이 여럿 나와서 같이 들을 정도로 재미있게 이 사람이 동화를 읽어 주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로버트 워커가 책을 정말 재미있게 잘 읽고, 이야기의 면면에 잘 걸맞게 영상 편집도 잘 되어 있어서 그냥 책 읽어 주는 것에 불과한 장면인데도 힘이 넘쳤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에 맞춰 애니매이션이나 특수효과로 동화 내용을 화면으로 그려 보여 주고 하는 것 없이 그냥 우직하게 책 읽는 사람, 듣는 사람 얼굴만 보여 주는 겁니다. 그런데 동화를 읽는데 동화 속 "가난뱅이"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을 읽을 때에는 잠시 주인공의 얼굴을 화면에 비추고, 동화 속 "공주"를 묘사하는 장면을 읽을 때에는 주인공의 상대역을 화면에 담는 식의 연출이 자연스럽고도 배우의 표정 변화를 의미 심장하게 잘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훌륭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밖에...

벨보이가 공주를 만나기 전에 원래부터 가깝게 지내던 동네 친구인 또 하나의 여자 주인공 역할은 준 앨리슨이 맡았습니다. 이 시절 연기의 유행대로 조금 관습적이고 약간 호들갑스러운 과장은 배어 있습니다만, 그대로 역시 훌륭한 모습이었습니다.

1945년작이기는한데 1944년 무렵에 제작이 시작되어 일본 항복 이전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그러고 보면, 당시 미국의 국력이란 어마어마한 전쟁을 두 대륙, 세 대륙에서 치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태평한 영화를 만들고 즐길 여력까지 충분했던 것인가 싶습니다.

핑백

  • 게렉터블로그 : 헤디 라마르 (Hedy Lamarr) 영화 2018-06-18 00:55:44 #

    ... ld Girl, 1941) 이리 와서 나랑 같이 살아요 (Come Live with Me, 1941) 백물 (White Cargo, 1942) 공주마마와 벨보이 (Her Highness and the Bellboy, 1945) 불명예의 여인 (Dishonored Lady, 1947) 여권 없는 여인 (A Lady Without Passport, 1950)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