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백과 사전 증보편 61~70 기타

이 글은 괴물 백과 사전 시리즈로, 이전에 정리하지 못한 괴물들을 추가로 정리한 증보 61~70편 항목으로 올리는 한국의 괴물 들입니다.

괴물을 정리한 기준은 이전과 같습니다. 즉, 기록과 기록자, 기록시기가 분명한 18세기 이전에 확인된 각종 괴물들만을 정리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괴물 등등은 모두 뺐습니다.

비슷한 괴물들끼리는 기록을 합쳐서 하나의 보다 묘사가 풍부한 괴물로 정리했고, 반대로 이름이 같은 괴물이라도 현격히 모습과 습성이 다른 경우에는 다른 괴물로 분리해서 싣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괴물에 대한 설명은, 책에 언급된 그대로의 설명을 옮기는 것에 더하여, 다른 기록에 나오는 비슷한 괴물의 묘사, 비슷한 전설, 비슷한 괴물의 그림, 공예품의 모양 등등을 참조하여 덧붙인 것들이 있습니다.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설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파악하는 상징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토론하거나 주석, 해설을 달아볼만한 부분도 많을 것입니다. 아쉬운대로, 일단은 일부에만 간단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대신 모든 괴물들의 그 기록 출전을 밝히고, 언제 어디서 목격되었는지를 최대한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제가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원전에서 괴물의 모습을 묘사하는 대목에 나오는 말을 최대한 그대로 발췌해서 옮겨 쓴 것을 항목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가능한 한 한자도 같이 표기했습니다.

이 자료에 괴물들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그림을 곁들였다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일단은 조선시대 이전의 유물들 중에서 분위기가 비슷하게 맞는 부분 일부를 발췌하여 참고해 볼 만한 자료로 같이 실었습니다.


61. 순군부군 (巡軍府君)

(당인리 부군당 무신도 중 발췌)
순군부 즉, 죄인을 붙잡거나 가두어 놓는 관청을 다스리는 신령으로 17세 정도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헝클어진 머리는 풀어 헤쳐져 있어서 비녀도 하지 않고 있고 단장은 하지 않았으며 보통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윗도리는 보라색 실로 된 옷을 입고 있고 아랫도리는 엷은 황색 비단치마를 입고 있다. 순군부군이 있다고 믿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순군부군이 문란한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여 나무로 뭉툭한 몽둥이 모양을 깎아 만들어 제물로 바치면서 자신들이 빨리 감옥에서 나가게 될 것을 빈다.

원한을 갖고 죽었기 때문에 원한을 갚기 위해 대오접(大烏蝶), 즉 크고 검은 나비, 또는 큰 까마귀 나비로 변해서 범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실제 범인을 밝히고자 하는데, 이것이 날아 가는 것을 따라 가다가 어떤 사람 머리 위에 머물면,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순군부군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사람들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얼마만에 나가는지, 어떤 판결을 받는지, 언제 감옥에 또 잡혀 오게 될 지 등등에 대해 미래를 내다 보거나 그런 운수를 바꿀 수 있는 영험이 순군부군에게 있다고 믿었다.

허균이 1610년 감옥에 갇혔을 때, 같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순군부군을 믿고 있어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과 자신이 순군부군에 대한 꿈을 꾼 것을 글로 남겨서, “순군부군청기(巡軍府君廳記)”에 나와 있다.

* “순군부군청기”에는 허균의 꿈에 나타난 순군부군이 죄수들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자꾸 자신에게 이상한 것을 바치는데 자신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싫다고 밝히는 내용으로 나와 있습니다.

“부군”이라는 것은 어떤 관청, 기관 따위에 깃든 신령을 말하는 것으로 부근(付根)이라고 표시한 사례도 나타납니다. “중종실록” 1511년 3월 29일자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초기에도 있었던 풍습으로 관청에서 아예 부군이 머무는 부군당을 만들고 관리하면서 관청에 관한 일을 비는 대상으로 나와 있기도 합니다. 현대에 조사된 무속에서도 신령이 깃든 곳을 “부군당” 내지는 “부근당”이라고 부르는 사례는 자주 발견 되며, 최근 자료를 보면 서울과 한강 근처에서 주로 이런 풍습이 조사 된 편입니다.

허균이 남긴 이 기록에서 감옥과 수사를 다스리는 순군부군에 대한 이야기는 세부가 상당히 잘 남아 있는 편입니다. 또한 허균의 이야기처럼 여성 형태의 신령이 부군당에 깃들었다는 형태는 옛 기록 중에도 다른 사례가 있어서 19세기 기록인 “오주연문장전산고”의 “화동음사변증설”에는 “송씨저(宋氏姐)” 즉 “송 각시”라고 할만한 신령을 숭배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 원한을 갖고 죽은 혼인하지 않은 여자의 귀신 이야기에 대해 20세기 초에 이능화가 조사해서 발표한 자료에서는 이것을 “손각시”라고 하여 원한 맺힌 귀신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으로 언급했고 덕분에 요즘에는 처녀귀신이라는 이름으로 이와 비슷한 것을 귀신의 대표로 보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내용들은 서로 연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요즘 처녀귀신 이야기에서는 흔히 무서운 일을 하는 원한 맺힌 귀신이라는 점이 강조되는데 비해, 거슬러 올라간 조선 초기의 부군 이야기에서 부군은 그 관청의 일에 대한 위엄과 뛰어난 영험이 강조되는 면이 있다는 점은 재미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상상해 보자면, 범인을 잡고 수사를 하는 데에는 귀신 같이 뛰어난 사람 같은 것이 있어서 자기 별명을 순군부군이라고 한다던가, 검은 옷을 입고 다니거나 나비 모양으로 꾸미고 다니는데 그 정체를 숨기고 지내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의 범인을 잘 잡는 자가 있는데 그 별명을 “검은 나비” 내지는 “대오접”이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허균이 순군부군에 대해 남긴 기록에 따라, 조선시대에 검은 나비 형상으로 자기 모습을 숨기고 다니는데 알 수 없는 사건의 범인을 잘 찾아 내는 사람이 있어서 사람들이 별명으로 순군부군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람이 17세 여성이라는 쪽으로 생각해 봐도 재밌을 것입니다.


62. 노채충 (勞瘵蟲)

(국가민속문화재41호 운봉수향낭 중 발췌)
폐병을 생기게 하는 벌레로 모양은 문드러진 국수 가닥, 말꼬리, 두꺼비, 호랑나비 등을 닮은 이상한 모양이다. 세 사람을 전염시키면 점차 귀신 모양으로 변한다고 했으니, 사람의 모양을 닮기도 했을 것이다. 날개짓하며 날아갈 수도 있다. 그 입 모양은 검은색, 흰색, 붉은색인데, 검은 색이면 사람의 신(腎)을 파먹던 것이고, 흰색이면 사람의 기름막을 파먹던 것이고, 붉은 색이면 혈맥을 파먹던 것이다. 사람의 코로 드나드는데, 지독한 것은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을 돌며 폐병을 옮겨서 온 가족을 죽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천형(天刑), 곧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부른다. 죽은 사람 몸에서 버틸 수 있어 무덤 속의 관 안에 여러 마리가 가득차기도 한다. 사람이 지나치게 문란하게 색을 좋아하면 그 자손에게 나중에 이것이 나타난다고 하기도 하고, 풍수지리를 거슬러 묘자리나 집자리를 잘못쓰면 이것이 나타난다고도 한다. "광제비급"에 나와 있다.

* "노채"란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기력이 쇠하여 죽는 병인데 현대에는 결핵의 말기 증상과 무척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옛날 중국의 의학 기록에서는 어떤 벌레가 사람 몸 속에 들어가면 노채가 생긴다고 했고 이것이 일찍부터 전해졌는데, 조선 후기의 의학 서적인 "광제비급"에서는 조선에서 그 모양과 특성에 대해서 보고 들은 것을 독특하게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광제비급”에 실린 전설에는 삼등(三登)에 사는 이씨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는데, 노채에 걸린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이씨가 이장한 한 무덤에 가서 다시 파 봤더니 그 안에 호랑나비 같은 벌레가 가득했고 그 후에 온 집안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합니다.

한편 "광제비급"에는 흰 개를 기이한 것으로 여겨, 흰 개를 이용하면 전염병을 옮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전염병에 걸려 거의 죽어가려는 사람을 병풍을 친 방에 옮기고 흰 개와 같이 둔 후에 문을 닫고 창문을 잘 봉해 둔 뒤에 며칠 후에 보면, 사람은 죽어 있고 흰 개는 살아 있다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병이 개들 사이에 돌고 사람 사이에는 돌지 않아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63. 백운거사 (白雲居士 , 녹정 鹿精)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중 발췌)
깨달음을 얻은 사슴이 지혜와 장수하는 법을 얻은 뒤에 사람과 비슷한 형체로 변한 것이다. 얼굴이 길고 머리털이 희다. 수 백년, 수 천년 동안 살아 갈 수 있다.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청경노수(淸鏡老壽)"라고도 부른다. 신라 말 최치원이 가야산에 들어 가서 공부할 떄 한 사슴 한 마리가 항상 책상 밑에 엎드려 있기를 자주하여, 최치원이 말하기를 "능히 도를 흠모할 줄을 아니, 나이를 연장하는 방법을 얻도록 해야 겠다"고 한 뒤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세상의 여러 일과 나라의 형세, 미래에 벌어질 일과, 정치, 싸움, 전쟁의 이기고 짐에 대해서 내다 보며 그에 대한 생각을 말하곤 한다. "정조 실록" 1785년 3월 12일자에 실려 있다.

* "정조 실록"의 1785년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면, 문양해라는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예언과 기이한 술법을 내세우면서 반란을 일으킬 모의를 했다는 죄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조사 내용 중에 어떤 사람이 곰이 사람 모양으로 변한 것과 함께 사슴이 사람 모양으로 변한 것, 녹정, 곧 백운거사를 만나 보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용 자체는 허황된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반란을 일으킬 궁리를 했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렵 사람들이 신선이나 짐승이 변한 신령스러운 것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소문으로 퍼뜨렸는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라면 그럴 듯하다고 여길 만 했는지 짐작해 볼만한 단서가 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신라 최치원을 자주 따르던 사슴이 신선으로 변한 뒤에 이후 세상 일에 계속 관심을 갖고 미래를 예언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제법 흥미진진합니다.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면, 최치원은 이미 속세에 미련을 버리고 더 이상 세상에 나타나지도 않는데, 그 제자 뻘에 해당하는 사슴이 변해서 생긴 신선은 여전히 세상 생각을 해서 계속해서 나라를 엎으려고 한다거나 세상 돌아 가는 일에 대한 예언을 하고 다닌다는 것도 대비를 이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전에서 백운거사는 스스로 5백살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깨달음을 얻어 모습이 바뀐 뒤에 5백년이 지난 것일 수도 있고, 사슴의 상태로 5백년을 살다가 그 후에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로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17세기말의 사전인 “역어유해”를 보면, 버드나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柳樹精), 불교의 괴물인 "야차(夜叉)"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夜叉精), 여우나 살쾡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狐狸精)을 모두 "독갑이", 즉 도깨비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관습을 따른다면 이름인 “녹정”이라는 말은 “사슴도깨비”라는 식으로 번역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64. 청오거사 (靑烏居士, 웅정 熊精)

(김홍도필 군선도 중 발췌)
깨달음을 얻은 곰이 지혜와 장수하는 법을 얻은 뒤에 사람과 비슷한 형체로 변한 것이다. 얼굴이 흐리고 머리털이 까맣다. 수 백년, 수 천년 동안 살아 갈 수 있다. 나타난 것은 스스로 나이를 4백살이라고 밝혔다.

* "정조 실록"의 1785년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면, 문양해라는 사람과 그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예언과 기이한 술법을 내세우면서 반란을 일으킬 모의를 했다는 죄로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조사 내용 중에 어떤 사람이 사슴이 사람 모양으로 변한 것과 함께 곰이 사람 모양으로 변한 것, 웅정, 곧 청오거사를 만나 보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용 자체는 허황된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반란을 일으킬 궁리를 했다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렵 사람들이 신선이나 짐승이 변한 신령스러운 것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소문으로 퍼뜨렸는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라면 그럴 듯하다고 여길 만 했는지 짐작해 볼만한 단서가 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녹정에 관한 이야기는 비교적 상세하고 녹정이 세상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도 실려 있는데 비해, 웅정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러고 보면, 웅정은 녹정에 비해 과묵하고 말이 없는 편이며, 한편으로 세상 일에 관심 없이 깊은 산 속에서 조용히 사는 것만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녹정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면 좀 더 말이 많고 꾀가 많은 성격의 녹정과 친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녹정이 최치원에게 우연히 신선술을 배우게 된 사슴이라는 사연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웅정은 신선술을 배운 사슴에게 다시 신선술을 배운 곰이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름을 청오거사라고 칭한 것을 보면,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거나 검은 털이 몸에 많은 편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곰이 사람 모양으로 변한 것이라는 점을 특징으로 상상해 보자면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물고기를 잘 잡고 꿀을 좋아한다는 등의 특징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17세기말의 사전인 “역어유해”를 보면, 버드나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柳樹精), 불교의 괴물인 "야차(夜叉)"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夜叉精), 여우나 살쾡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狐狸精)을 모두 "독갑이", 즉 도깨비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관습을 따른다면 이름인 “웅정”이라는 말은 “곰도깨비”라는 식으로 번역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65. 적색충 (赤色蟲)

(김세종 민화컬렉션 전시회 19세기 화조인물도 중 발췌)
시체에서 나타나는 벌레로 시충(尸蟲)의 종류이며 붉은 색이며 크기가 크다. 귀신을 쫓아 내는 기운이 몸 속에 있는 듯 하여, 이것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귀신 붙어서 병이 생긴 사람이 먹으면 귀신을 쫓을 수 있다. 이것을 먹기 전에 귀신이 붙은 사람은 이상한 꿈을 꾸고, 추웠다 더웠다 하기를 오래 반복하면서 사람이 점점 살이 말라 죽게 되는데, 이것의 말린 가루를 술에 타서 먹으면 특효라고 하며, 비슷한 명을 가진 사람 여럿이 나누어 먹으면 모두 다 낫게 된다. "광제비급"에 나와 있다.

* 보통 "시충"이라고 하면, 흔히 "삼시충(三尸蟲)"을 줄여서 말하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삼시충은 사람 몸 속에 산다고 주로 중국 도교에서 믿었던 이상한 벌레로 사람 몸의 위쪽, 가운데, 아랫쪽에 각각 한 마리 씩 세 마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이 자고 있을 때 하늘 바깥의 세계에 가서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알리기 때문에, 삼시충이 하늘 바깥의 세계에 가는 날에는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국의 생각이 전해진 후, 고려시대 이후로 고려, 조선에서도 제법 많이 믿어서, 주로 "수세(守歲)"라고 하여 연말의 경신(庚申)일에 잠을 자지 않는 풍습이 특히 성행했습니다.
위 이야기에서 말하는 시충은 정확하게 이러한 삼시충을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람의 몸 속에서 살다가 사람이 죽으면 발견되는 벌레, 혹은 사람의 시체에 깃드는 벌레의 통칭으로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귀신이 붙어서 생긴 병을 쫓는 것을 보면 역시 신령스러운 힘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시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벌레는 파리의 애벌레와 송장벌레와 같은 딱정벌레 종류입니다. 원전의 이야기에서 병에 걸린 사람의 시아버지가 이웃 사람 묘를 옮기다가 이 벌레를 발견했다고 되어 있으니, 이 벌레도 아마도 파리의 애벌레 또는 딱정벌레를 닮은 것 중에 색이 붉고 크기가 커서 특별히 확 눈에 뜨이는 것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원전에는 이 벌레로 사람을 치료하는 수법이 "죽은 사람의 목침(배게)을 달여 먹이면 귀신 붙어서 생긴 병이 낫는다"라는 것과 같은 계통이라고 했는데, 그런 것을 보면 이 벌레에 사람을 병들어 죽게 하는 귀신의 기운이 서려 있거나, 그런 귀신과 다투다가 죽은 사람의 기운이 서려 있는데, 그것을 먹어서 환자에게 머물고 있는 다른 귀신을 쫓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벌레는 귀신의 기운이나 사람이 죽는 기색, 혹은 귀신과 사람이 싸우는 힘을 빨아 먹고 사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66. 물귀신 (수매 水魅)

(영험약초언해 삽화 중 발췌)
사람을 현혹시켜 자기도 모르게 물에 들어 가 빠져 죽게 만드는 것, 또는 물에 들어간 사람의 몸을 붙잡아 끌어 들이는 느낌을 들게 만들어 물에 빠져 죽게 만드는 것이다. 물 가에서 목욕하던 사람을 끌어 들여 죽이기도 한다. 형체는 분명치 않으나 물 속에서 문득 붉은 손이 튀어 나와 사람을 후려 잡는 것으로 사람의 머리카락, 머리, 상투 부분을 잘 나꾸어 챈다. 이것이 나타난 주변의 물결도 불그스름한 색이 된다. 이것은 은으로된 물건을 꺼려해서, 은으로된 비녀를 머리에 꽂고 있으면 이것이 머리카락을 잡아 채지 못해 당하지 않는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 평양의 대동강 물을 건너는데 이것이 튀어나와서 사람을 잡으려고 했는데 이 사람의 머리에 은으로된 비녀가 있어서 몇 차례 시도하다가 실패했고, 이후 이 사람이 은으로된 비녀를 빼놓고 강물을 건너려고 하자 금방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광제비급"에 나와 있다.

* 원전의 이야기를 보면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많이 불었을 때, 헤엄 잘 치는 사람이 재주를 자랑하려고 하다가 이것을 만났다는 이야기로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를 기다려 나타난다든가, 홍수가 나서 물이 많아졌을 때 나타난다든가, 물을 업신 여기는 사람을 벌주려고 나타난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귀신 이야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만, 조선시대 기록으로 그 형체가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는 드문 편인데, "광제비급"이라는 조선시대 의학 서적에서 은으로된 물건의 효험을 설명하면서 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물귀신이 되어서 물에 있다는 식의 믿음 자체는 흔히 퍼져 있어서, 조선 시대 기록의 예로는 "숙종 실록" 1684년 7월 10일자에서 호남 지역 바닷가에서 날씨가 흐려 어두운 날이 되면 파도 속에서 물귀신 울음 소리가 나서 세상을 뒤흔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형체는 잘 드러내지 않더라도 흐린 날이 되면 우는 소리를 내는 습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67. 비모척 (臂毛尺: 팔에 난 털이 한 자라는 말)

(김세종 민화컬렉션 전시회 도석화 중 발췌)
신선의 술법을 깨달은 사람으로 그 모습은 30세가 좀 넘는 모습인데 깃털로 만든 듯한 신비로운 옷을입고 있고 두 팔에는 긴 털이 나 있어서 두 뼘 정도가 되는 모습이다. 이상한 술법을 쓸 수 있어서, 공중에 떠 있는 듯이 나타날 수 있고, 그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한 사람에게만 보일 수도 있으며, 한 팔을 쳐들면 갑자기 번개처럼 잠깐 사이에 사라져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연기이신(鍊氣頤神)” 즉, 기를 가다듬고 정신을 기르는 방법으로 기이한 술법의 경지를 쌓을 수 있는데, 첫째 가장 높은 경지는, "백일충천(白日沖天)"으로 대낮에 하늘 높이 떠올라 하늘 바깥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이고, 둘째 중간 경지는, "휘척팔극(揮斥八極)"으로 온 세상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고, 셋째 낮은 경지는, "정좌천춘(靜坐千春)"으로 천년 이상 무병 장수하며 죽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지리산 꼭대기에서 나타난 기이한 사람으로, 서경덕이 이 사람을 만났고 이 사람이 서경덕에게 술법을 알려 줄 테니 같이 놀자고 했으나, 자신은 유학자로서 세상사의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오산설림초고”에 실려 있다.

* 조선 초기 신선술에 관한 여러가지 전설을 남긴 인물인 화담 서경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화담 서경덕은 전우치 전설에서 온갖 기이한 술법에 능한 전우치를 제압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학문이 깊은 유학자라는 점에서 신비하고 기이한 술법과 그것을 물리치는 현실적이고 학구적인 인물이라는 재미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오산설림초고”에는 서경덕이 갖고 있는 신기한 술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외에도 몇 더 나와 있는데, 점술에 해박했다든가, 아주 높은 높이를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있었다든가, 종이에 주문을 써서 물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저절로 물 밖으로 튀어 올랐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소한 것으로는 항상 등이 시린 증세가 있어서 여름에도 솜옷을 입고 다니다가 지리산에서 땀을 많이 흘린 후에 체질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위 이야기는 중국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던 깃털이 있는 사람 또는 털이 나 있는 사람이 신선술과 관련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약간 다른 형태로 나타난 사례인데, 좀 더 잘 알려져 있는 “순오지”나 “증보 해동이적”에 나와 있는 조선의 비슷한 이야기들이 보통 사람의 모습과 말을 잃어 버린 채로 완전히 이상한 모습으로 바뀐 후에 영원히 살게 된 형태에 비해 위 이야기에서는 묘한 모습이지만 말이 잘 통하고 사람다운 모습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전에는 팔에 난 털의 길이가 한 척이 넘는 다고 되어 있습니다.


68. 대두온 (大頭瘟)

(김세종 민화컬렉션 전시회 무신도 중 발췌)
붉은 실 모양의 기운이 마치 무지개와 같이 사람의 이마 위에 떠올라 가로로 걸려 있는 것인데, 이것이 생긴 사람은 얼굴이 점점 부어 올라 머리가 커지는 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귀, 눈, 입, 코가 전부 퉁퉁 부어 올라 크게 되니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이 하나의 살 덩어리처럼 보이게 되고, 소리 내어 말하거나 숨도 쉬게 어렵게 되어 6, 7일 정도 사람이 버티기가 쉽지 않다. 전쟁이나 사람을 많이 죽인 곳에서 그 사람을 죽인 사나운 기운이 서려 있다가 이것이 되어 나중에 그곳에 온 사람을 병 걸려 죽게 한다. "침구경험방"에 나와 있다.

* 얼굴이 부어 오르는 증세를 갖고 있는 전염병을 옛날 중국 의학 서적에서는 사람이 두꺼비 모양이 되는 전염병이라고 하여, 흔히 "하마온(蝦蟆瘟)"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머리가 커지는 특별한 형태를 "대두온"이라고 해서 비슷한 부류의 병 중에서 무척 위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대두온"에 대해서 연구한 조선의 허임(許任)이 상세한 묘사와 함께 이상한 것이 이마 위에 생긴다는 묘사를 덧붙여 놓았는데, 아마도 병으로 인해 얼굴에 반점이 생기는 모양이 기이하게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69. 태고송 (太古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패주 조세걸 필 신선도 중 발췌)
그 누구도 생각해 볼 수 없는 아주 머나먼 옛날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자라났다는 소나무로 네 그루가 가까이에 모여 있으며 돌틈 사이에 자라나 있다. 높이는 사람 키의 두 배 정도인데, 어지럽게 구불구불 굽어져 있는 모양이라서, 몇 뼘도 안 되는 길이에도 아홉 번 굽어지고 아홉 번 펴진 곳이 있을 정도의 모양이다. 신비로운 산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움푹 들어가 생긴 연못 같은 곳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연못 한 가운데에는 동그란 작은 섬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에 갈대가 자라 나고 있다.
그 연못에는 옛날 황금 색 게가 살았다고 하며, 바위 절벽 아래에는 땅이 꼭 사람 모양으로 손 발 모양까지 분명하게 꺼진 곳이 있는데, 이곳을 “선인와처(仙人臥處)” 곧 신선이 누웠던 자리라고 해서, 옛날 신선이 그 자리에 머물고 갔다고 한다.
태고송은 아주 긴긴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만 사람이 괴롭혀서 일부러 없애려고 들면 버틸 수가 없는데, 신기한 것을 구경하러 놀러온 사람들이 껍질을 벗겨 가고 이름을 새겨 놓는 것 때문에 약해 지더니 영조 38년 큰 가뭄이 들었을 때 그만 죽어 버렸다고 한다. 전남 장흥 천관산 포봉에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위백규의 “포봉기(蒲峯記)”에 나와 있다.

* 대단히 긴 시간 동안 살아 남은 나무가 이상한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평범한 사람의 장난으로어처구니 없게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극적인 데가 있습니다. 산 속 높은 곳의 연못 모양에서 살고 있는 황금색 게도 진귀한 느낌이 있습니다. 한편 신선이 누운 자리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은, 바닥에 누울 때 정확하게 자기 몸에 꼭 들어 맞는 자리를 만들고 거기에 딱 맞게 들어 가서 누워야만 쉴 수 있다거나 힘을 얻게 된다거나 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상상해 볼만 합니다.


70. 농원 (弄猿)

(김세종 민화컬렉션 전시회 판타지아조선의 구운몽도에서 발췌)
원숭이 모양의 짐승으로 사람처럼 말 위에 올라타고 쳐들어 갈 수 있다. "난중잡록" 8월 27일 기록에는 몸뚱이가 큰 고양이를 닮았다고도 한다. 활과 화살로 주로 무장하고 있다. 보통 두 마리, 또는 네 마리 정도가 한 무리가 되어 움직이는데, 수백 마리가 한 데 어울려 전쟁을 할 수도 있다. 적들에게 뛰어들면 날렵하게 공격을 피하며 적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적들의 무기와 장비를 풀어 놓는 등으로 적을 혼란스럽게 하며 방해하기도 한다. "난중잡록", "택리지", "성호사설", "연려실기술"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 "난중잡록"에는 초나라 원숭이라고 하여 초원(楚猿)이라는 말을 쓰고 있고, "연려실기술"이나 "성호사설"에는 그냥 원숭이라는 뜻으로 미후(獼猴)라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중에 이것도 전쟁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알려져 있습니다. "난중잡록"에는 네 마리가 활약했다고 되어 있고, "성호사설"이나 "연려실기술"에는 두 마리가 활약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연려실기술"에는 "일월록"을 인용하여 네 마리가 활약했다는 기록도 같이 나와 있습니다. 한편 "택리지"에는 수백 마리가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풍산김씨 세전서화첩의 "천조장사전별도"에는 "원병삼백"이라고 하여, 삼백 명의 원숭이 병사라는 뜻의 깃발 그림이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신기한 이야기가 점차 과장된 것 아닌가 싶은데, "성호사설"에서는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도 황당한 헛소문일 뿐인 것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초기의 기록인 "난중잡록"을 보면, 수영을 잘하는 흑인 병사에 대해 언급하는 해귀(海鬼) 항목과 덩치가 큰 이민족 병사인 우지개(牛之介) 항목과 같이 이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도 모습이 특이하고 이상한 복장을 한 어떤 이민족 병사를 과장한 기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민족은 원숭이와 같다는 식으로 생각한 옛 사람들이 아주 날렵하게 싸우는 특이한 복장의 사람을 보고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움직인다는 표현과 견주어 이야기하다가 말이 고정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나오고 있는 연구를 보면 이민족이라기 보다는 정말로 원숭이 비슷한 짐승 군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믿었다는 식으로 풀이하고 있는 내용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별도의 항목으로 편성하여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덧글

  • 존다리안 2018/10/01 20:58 # 답글

    헤퍼 보이지만 실은 쑥맥인 17세 소녀탐정이라....
    그럴듯 하군요.
  • 게렉터 2018/10/07 20:51 #

    그런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좀 과도하게 비슷한 일본 만화 배경처럼 보이는 느낌마저도 있을 지경입니다.
  • 나인테일 2018/10/02 00:14 # 답글

    아니 왜 여고생 공무원에게 딜도 조공 같은걸 해서 (....)
  • 게렉터 2018/10/07 20:52 #

    어찌 보면 소설 잘 짓는 허균 특성상, 그런 장면을 본 것까지만 사실이고 꿈 속에서 구체적인 형체와 사연을 봤다는 것은 그냥 허균이 소설로서 지어낸 이야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역사관심 2018/10/03 04:00 # 답글

    항상 감탄하며 시리즈 글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18/10/07 20:52 #

    감사합니다. 최근 올려주신 글과 관련한 도깨비 모습에 대한 글을 하나 올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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