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의 뿔과 영험약초언해 기타

또다른 당사주(唐四柱) 양각도깨비 (추가발견) 에서 트랙백

저는 이미 괴물 백과사전에서 도깨비에 대해서 다룬 후에, 한번 정리글을 썼을 때," 한국 도깨비에 뿔이 있느냐 없느냐, 쇠방망이를 들면 일본 오니이고 나무 방망이를 들면 한국 도깨비다", 라는 식으로 일본 오니에 오염되지 않은 도깨비의 외형을 찾는 몇 가지 규칙들이 다소간은 부질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제 의견을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역사관심님께서 도깨비를 연상케 하는 삽화로 비슷한 말씀을 언급해 주신 만큼, 저도 자료 한 가지를 꺼내서 말씀 몇 자 덧붙여 볼까 합니다.



위 그림은 조선시대 서적인 "영험약초언해"에 실려 있는 삽화인데, 그 중에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여러 잡귀(鬼)들의 모습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영험약초"는 병을 쫓는 불교계열의 술수에 관한 책인데 그것을 한글로 번역해 놓은 책에 이런 그림이 실려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위 그림 속 잡귀의 모습은, 조선 시대 그림인데도 90년대 이후 "일본의 오니 모습이며, 한국의 도깨비 모습은 아니다"라고 혐오 받기도 했던 뿔 둘 달리고 털가죽으로된 원시인 옷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영험약초"라는 책이 불교계 문헌이니 만큼, 저는 이 삽화도 애초에 옛날 중국에서 나온 "영험약초" 한문판에 나온 어떤 그림을 참고해서 따라 그린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옛 중국 사람들이 생각했던 잡귀들의 한 모습이 책이 전해지고 번역되면서 조선에도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그림 자료가 조선으로 건너 와서 유통되고 있었던 만큼, "잡귀"의 모습을 이런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생각하고 상상했던 조선 사람들도 있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기왕 불교 이야기를 해 본 김에, 조금 더 나아가 보자면, 조선 초기의 "월인천강지곡"에서는 불교의 야차(夜叉)를 "돗가비"로 번역해서 싣고 있고, 17세기 말의 사전인 "역어유해"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야차(夜叉)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夜叉精)을 "독갑이"로 번역해 싣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불교에서 말하는 야차의 형상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성격의 괴물, 귀신의 모습에 대한 그림을 "도깨비"의 일종으로 조선 사람들이 인식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어차피,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에서 "이것이 국가 공인 도깨비의 모습이다"라고 정해 주었다거나, 그런 것을 두고 사람들이 깊이 논쟁했을 가능성도 적으니, 한번 비슷하게 인식되던 인상은 계속 번져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보면, 일본 "오니"를 닮으면 무조건 "왜색에 왜곡된 잘못된 것"으로 보고, 그와는 대조되는 어떤 다른 "정통 한국 도깨비"상을 강조하는 것은 역시 조금은 잘못된 방향이지 않나, 저는 다시 언급해 보고 싶습니다. 애초에 그 성격이나 특징이 불분명한 점이 많은 "도깨비"라는 것을 두고, "일본 오니와 닮으면 안돼, 정통 한국 도깨비는 이거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보다는, 도리어 일본 오니와 닮은 모습 또는 어떤 정해진 한 가지 모습 이외에도 다양한 면모의 도깨비들을 조선 사람들이 상상해 왔다는 식으로 폭을 넓혀 가는 방향이 더 맞다고 생각해 봅니다.

굳이 어떤 시각적인 자료나 그림으로 도깨비의 대표적인 모습을 표현해야 한다면, 문헌에 "야차"와 견주고 있는 기록이 몇 가지 위와 같이 나타난 만큼, 한국 불교 계통의 그림 중에 야차를 그려 놓은 것을 중심으로 변형하는 것이 오히려 더 옳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 번 해 봅니다. 인도, 네팔,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의 불교 문화에서 나온 야차 그림과 조선의 야차 그림이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 있다면, 그것이 조선의 도깨비스러운 느낌이 가미된 야차의 모습이다라고 보고, 그 모습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 보자는 것입니다.

"석보상절"에는 "망량(魍魎)"을 "돗가비"로 번역했던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조선에서 망량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자료는 찾기도 어렵거니와 있다고는 해도, 불교를 통해 퍼진 야차 그림만큼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을테니 저는 야차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도깨비 그림에도 상당히 끌리는 편입니다.

덧글

  • 이선생 2018/10/07 22:00 # 답글

    저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미리 답을 정해두고, 오니의 모습을 배척하면서 끼워맞추기식으로 나가는 현 학계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 게렉터 2018/10/10 20:35 #

    어떻게 보면, 연구 논문 같은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폭넓은 방향에서는 과하지 않게 흘러가는 느낌인데, 신문 기사라든가 신문 칼럼 같은데 나오는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한 동안 좀 극단적인 것들이 많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 남중생 2018/10/07 22:47 # 답글

    동감입니다!
  • 게렉터 2018/10/10 20:37 #

    저는 남중생님 블로그글을 너무나 재밌게 보고 있는 독자입니다. 혹시 남중생님 연구논문이나 책 같은 것 정식으로 내신 것 있으시면 꼭 찾아 보고 싶네요!
  • 2018/10/11 20: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역사관심 2018/10/08 23:14 # 답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런 녀석도 또 있었군요. 돗가비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야차의 영향을 무시못하게 만드는 문헌기록같습니다. 또한 불교의 야차에서 민간신앙인 도깨비가 연결되는 지점은 강진사문안석조상에서도 엿볼수 있는데 이런 사료들을 좀 더 깊이 연구하지 않는 현재 민속학계가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습니다. http://luckcrow.egloos.com/2630267

    기본적으로 문화라는 것이 고립된 지역에서 발달하는 개체도 있지만 그보다는 교류를 통해 활발하게 서로 왔다갔다하면서 비슷한 부분을 차용하는 것이며 그게 당연하다라는 프레임이 한국 문화담론에서 좀 강해지면 합니다. 이건 민족자주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분야인데 자꾸 프레임을 씌우는 20세기초식 경향이 강해서... 이젠 좀 바뀌면 합니다. 그래야 훨씬 풍부한 우리문화가 될테니까요.
  • 게렉터 2018/10/10 20:39 #

    어찌보면 민속이나 문화사, 종교사 쪽에서 먼저 접근한 것이 아니라 문학계에서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연구를 하면서 자료에 대한 감상문 성격의 글과 연구논문의 경계가 약간 어그러진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는 좀 앞서서 연구하신 분들께 함부로 넘겨 짚는 말이 될 수 있을 듯 하여, 일단은 많이 언급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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