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페이지 (Rampage, 2018) 영화

“램페이지”는 유전자 조작 기술 회사에서 개발한 이상한 약 같은 것이 우연히 잘못 세상에 풀려졌는데, 고릴라, 늑대, 악어가 그것을 먹고 괴물로 변해서 세상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거대한 괴물이 튀어 나와서 도시를 부수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재난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괴물 영화로 볼 수 있고, 그 표본에 어울릴 만한 수준을 갖추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포스터)

얼마나 표본으로 적당하냐 하면,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한참 동안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이 확실히 안 나오고 뜸을 좀 들이는 것까지 이런 영화의 전통 그대로 입니다. 요즘에는 괴물이 본격적으로 난동 부리기 전에, 자꾸 괴물을 안 보여 주고 궁금증만 생기게 하고 조금씩 조금씩 일부분만 모습을 보여 주는 형태는 이제 너무 철지난 옛날 영화에서만 하던 방식 아닌가 싶기도 할 정도인데도 이 영화는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대충 상영 시간의 절반이 지나가야 괴물들이 도시를 부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런 방식에도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점이 있으니 이렇게 괴물 안 보여주고 시작하는 식의 영화가 예로부터 그렇게 많았던 것이겠습니다. 괴물을 안 보여 주는 동안, 조금씩 긴장감을 높이면서 뜸을 들여서 나중에 괴물이 총출동했을 때 흥분을 더 강하게 터뜨려 주는 효과도 있는데다가, 괴물 나오는 장면에 드는 특수 효과 비용을 괴물이 잘 안 나오는 초반에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괴물이 정신이 부수고 난리 치고 하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차분히 다른 배경 이야기나 복선을 깔아 둘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잇다는 장점도 있을 겁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장점 때문에 중반이 되어서야 영화의 진정한 본론인 괴물들의 도시 부수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장점은 그렇다고 해서 중반까지 볼 게 없고 지겨운 편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러는 동안에도 무엇인가 신기하고 재미난 것을 잘 배치해서 충실하게 쌓아 나가도록 재미거리를 쌓아 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다 못해 괴물의 원인이 되는 약을 만드는 실험실도 그냥 아무데나 갖춰진 흔해 빠진 프랑켄슈타인 실험실 같은 모양이 아니라 우주 정거장에 갖춰진 실험실로 배경을 잡았습니다. 괴물로 변한 상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신기한 이야기 거리로 부족함이 없는 커다란 고릴라들의 모습이라든가, 야비한 악당들의 모습도 적당히 웃기게 한 두 번 나와서 지루할 새 없이 시간을 매워 주고 있었습니다.


(고릴라)

게다가 본격적으로 도시 부수기 장면이 시작되기 전이라고 해서 아주 괴물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숲 속에서 등장해서 사냥꾼들과 대결하는 늑대 괴물의 모습은 프랑스의 제보당의 야수 전설이 현대에 되살아난 느낌을 아주 생생하게 줄 수 있도록 나오고 있었고, 괴물과 싸우는 사람쪽 장비인 헬리콥터, 전투기, 총 같은 물건들이 멋지게 잘 찍혀 있었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헬리콥터의 움직임은 만화처럼 상상 속 장난 같으면서도 그럴듯하게 흔들리고 움직이는 실감 나는 동작이 많아서 무척 훌륭했습니다. 그 밖에 드웨인 존슨의 아슬아슬한 공중탈출, 스카이 다이빙 액션처럼 제임스 본드 영화 같은 데서 많이 보던 장면이라도 매끈하고 힘있게 만들어서 보기 좋고 멋진 느낌이 들게 한 것도 잘 갖춰진 편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촬영과 화면 구성은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드웨인 존슨의 스카이 다이빙 장면은 별 홍보가 되고 있지도 않은 장면으로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만, 짧은 순간 속도감과 생생함을 주면서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잘 보이도록 화면에 담아 놓은 연출이 재빠른 모양이라 멋졌습니다. 짧게 살짝 지나간다는 느낌이라서 더 깔끔해서 그렇겠습니다만, 스카이 다이빙 액션을 영화의 중요한 순간으로 크게 홍보하는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낙하 장면과 언뜻 맞먹을 정도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 외에도 처음 고릴라를 마주 하는 순간이라든가, 괴물들이 건물을 부술 때의 그 무게와 힘이 건물이 부서지는 속도와 건물 조각이 무너져 내리고 날아다니는 모양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은 뛰어났습니다.


(제보당의 야수?)

컴퓨터 그래픽 특수 효과를 보는 맛이 잘 살아 있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백주 대낮에 깔끔하게 잘 보이는 화면 속에서 괴물들이 이렇게 설치는 장면이 잘 나오는 영화가 생각만큼 흔한 것이 아닌데, 이 영화는 과감하게 도전해서 잘 해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괴물이 한 마리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 마리나 나오게 한 만큼, 세 마리 각각의 특징을 이용해서 다채로운 장면들을 많이 넣고 있다는 것도 좋았고, 한 괴물이 한참 난동을 부리게 해서 어마어마하다는 느낌을 준 후에, 그 괴물 보다 더 한 괴물을 나오게 해서 관객을 더 긴장하게 하는 수법으로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시카고 시내의 온갖 기물들을 다채롭게 부수고 마침내 부수다 부수다 못해 시카고의 상징이자 인간 기술의 상징이기도 한 시어즈 타워의 그 거대한 덩치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똑똑히 보여 주고, 그 순간을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탈출과 연결해서 줄거리 속 사연에서도 중요하게 엮어 감흥을 더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괴물의 모양도 좋고, 그 모양을 화면에 드러내는 방법도 훌륭했습니다. “퍼시픽 림”의 괴물 같은 사례로 보면 괴물이 너무 괴물 같고 친숙한 느낌이 없으면 모습이 금방 눈에 안 들어오는 문제가 있기도 한 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괴물은 기본적으로 고릴라, 늑대, 악어라는 뚜렷하게 개성이 다른 실제 동물을 토대로 한 것이라 어떤 모습, 어떤 습성인지 쉽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괴물 같아 보이게 조금씩 모양을 바꿔 꾸민 것이 멋진 솜씨였습니다. 화면 연출, 헬기의 움직임 표현, 괴물 모양이 삼박자를 이뤄 펼쳐지는 늑대 괴물의 첫번째 헬기 공격 장면은 대단히 멋져서,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로 모든 것을 다 그려낸다는 시대에도, 영화 속 장면에서 상상 속의 일이 진짜처럼 표현되는 것을 보고 그 기술에 놀랄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늑대 괴물의 비중이 셋 중에 제일 적은 편이라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괴물이 여러 마리 나오는 영화에서는 우리 편 괴물과 악당 괴물이 싸우는 장면이 재미인 법인데, 이 영화는 복선을 잘 이용해서 정말 한 괴물은 우리 편이라고 느끼고 한 괴물은 적이라고 여기면서 싸우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왜 이 괴물은 우리편 괴물인가?”라고 관객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데, 비슷한 많은 다른 영화에 비해서 이 영화는 이 문제에서는 제법 해답이 좋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모든 것이 한 점으로 모여 있는, 악당 두목의 최후 장면은 오페라 같은 장렬함 까지 곁들여져서 현란한 화면 구도로 인상에 깊게 남도록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괴물 잔치)

괴물들이 싸우는 장면을 배치해 놓기 위한 각본 구성은 뛰어 나다는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그에 비하면 인물들의 대사에 관한 각본은 훨씬 나쁜 편입니다. 괴물들에 대한 배경 사연을 관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괴물들과 이렇게도 싸우고 저렇게도 싸울 핑계를 여러 가지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좀 억지를 써야 하기는 할 것입니다. 이 영화도 어쩔 수 없이, 왜 하필 괴물들을 재빨리 제압하지 못하고 괴물들이 도시로 가게 내 버려 두는가, 왜 괴물들이 도시로 가서 난동을 부리는데 하고 많은 경찰, 군사 기관들을 놔두고 드웨인 존스가 나가야 하는가, 등등과 같은 영화 속 세계에서만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억지를 좀 쓰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자체는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슷한 다른 영화에 비하면, 오히려 이 영화의 “영화 속 세상이니까 대충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 달라” 싶은 내용들은 그나마 잘 때워 막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의 감정이나 잔재미를 주는 농담 같은 것들은 안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대사가 상투적이라서 배우들이 애를 써도 가짜 같고 그야말로 영화 속 억지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나오미 해리스는 아무래도 자꾸 묻히는 느낌이었고, 악당들은 그야말로 쓸데 없는 악당 짓만 하는 인간들이라는 느낌만 들 뿐 별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얼간이 짓 하는 장면으로 웃기려고 할 때가 먹히는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의 반대편이지만 성실하게 자기 일을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같은 목표를 갖게 된다”는 이런 영웅담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조역이 이 영화에도 또 나오는데, 특이한 유머 감각을 가진 냉소적인 인물로 배우가 온힘을 다해 연기를 하지만 잘 안 살아날 정도였습니다. 웃긴 장면 중에는 욕설 등을 이용한 껄렁하고 값싼 것들이 있었는데, 역시 썩 잘 어울린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제법 감상적으로 잘 몰아간 결말 뒤에 행복한 결말 느낌을 준다고 이런 농담을 막판에 달아 놓은 것은 괴상할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정작 중간에 대놓고 감상적인 뒷 배경 이야기를 하라고 넣은 장면은 두 주인공이 멀리 지평선을 응시하며 혼잣말로 각자 자기의 슬픈 사연을 돌아 가며 줄줄줄 읊조리는 굉장히 고루한 연출이었습니다.

그나마 이런 영화의 주인공 다운 주인공을 연기한 드웨인 존슨은 손해 보는 것이 별로 없던 느낌이었습니다. 덩치 좋고 어마어마하게 완력도 좋아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 순박하고 선한 모습으로 나오면 그 역시 잘 어울리는 드웨인 존슨의 모습을 잘 살려 주고 있었습니다. 악당들에게 주어진 각본이 너무 약하다고는 했지만 악당 역 배우들은 그래도 굉장히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본론인 괴물들이 도시를 부수는 장면과 그 전까지 다른 재미거리들이 쌓이는 동안 이야기를 버텨내는 정도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연기 중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 넣은 괴물들의 표정 연기가 더 인상적인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사는 좀 빠져도 이야기 구성은 잘 짜서, 괴물의 관점에 관객들이 이입해 볼 수 있는 순간도 어느 정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

80년대 비디오 게임이 원작인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도 IBM PC 호환기종 컴퓨터용 MS-DOS판이 상당히 널리 퍼져서 제법 알려진 게임입니다. 특히 컴퓨터에서는 드문 세 명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게임이어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게임 소재를 잘 살린다면, 건물을 한 채만 부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채를 차례로 부수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상영시간이나 절정 장면의 힘에 집중되는 느낌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 정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원작 게임의 재미는 “내가 바로 거대한 괴물의 시점을 겪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는 이야기 구성이 괜찮아서 관객이 괴물 하나 편에 서서 괴물의 시점에 충분히 빠지게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원작의 의의도 사는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등장인물로 나오는 배우들의 성별, 인종이 상당히 다양한 편인데, 의외로 이게 현실감을 살짝 넣어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옛날 영화, 만화만 보면서 생각한 군대, FBI 모습과 현재 실제 군대, FBI 모습은 이렇게 다르다는 느낌이 있어 실감을 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덧글

  • ㅁㅁㅁㅁ 2018/10/16 10:46 # 삭제 답글

    대사들 보면 블러드 다이아몬드 해리포터 저스티스 리그 등등... 원너브라더스 판권작들을 네타로 써먹고 있죠. 유니버스 놀이를 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 걸 이걸로 푸는 중인듯.
  • 게렉터 2018/10/22 19:54 #

    아, 그런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다시 보면 또 재밌겠네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