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벌신사 (1968) 영화

1968년작 한국영화 “단벌신사”는 도시에서 가난하게 사는 젊은이가 겪는 소동을 다룬 구봉서 주연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가 1960년대에는 제법 여러 편이 나왔으니,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진 구봉서 코미디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내용은 양복이라고는 아버지가 물려진 옷 단 한 벌 밖에 없는 구봉서가 우연히 그 옷에 얽힌 소동을 겪으면서 옷을 잃어 버리고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좇아 다닌다는 내용입니다.


(포스터)

코미디 영화는 가벼우니까 만들기도 쉽다고 누군가가 착각한 덕분에, 적당히 개인기로 때우는 장면에, 엉뚱한 속어, 유행어만 억지로 우겨 넣어서 엉망으로 망가지는 일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며, 동서고급에 걸쳐 허다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1960년대 구봉서 영화 중에도 그런 영화들이 많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 “단벌신사”는 그런 구봉서 영화들 중에서는 준수하고 깔끔한 축에 속합니다. 물론 대신에 “돈에 눌려 죽은 사나이” 같은 화끈하게 황당무계한 충격이 없다는 것은 아쉽다면 아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싱겁기만 한 것은 아니고 짤막한 시간 동안 영화가 잘 굴러 가는 모양을 제법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영화 내용은 구봉서가 양복 속에 당첨된 복권을 넣어 두었는데 그 양복이 복권을 둔 채로 잃어 버리게 되는데, 그 양복이 자꾸 여기저기 다른 사람 손,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게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영춘이 연기한 친구가 그 양복을 잠깐 빌려 입고 나간다든가, 그래서 서영춘을 찾아 가 봤더니 또 양복은 다른 곳에 있다든가, 그걸 누가 또 돈을 주고 사갔다든가, 그런 내용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처지의 구봉서에게 복권은 너무나도 애절한 인생의 유일한 구원 같은 맥거핀입니다. 그렇기에 구봉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해서 양복을 찾고 이곳저곳을 추적해 갑니다. 그러는 와중에, 전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낡은 양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느긋하게 구는 사이에 이곳저곳으로 양복이 흘러 가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 재미인 영화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 가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기에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비밀을 모르고 있지만 그것을 한 발 떨어져서 다 지켜보고 있는 영화 밖의 관객들은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웃을 수 있는 극이라는 것의 묘미도 살아 있었습니다. 단벌신사의 양복이란, 원래 좋은 옷이라고는 그것 한 벌 밖에 없는 가난한 처지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옷 속에 복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또 그것이 마지막 희망과 자부심을 상징한다는 단벌신사 다운 인상으로 동시에 또 이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재가 이 영화의 줄거리와 맞아 떨어지며 재미를 더하기도 합니다.


(당시 신문광고: 영화제목에 걸맞게 추첨을 통해 관객에게 양복을 선물하는 판촉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런 소재가 정말 강렬하고 멋지게 시종일관 펼쳐지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서영춘과 허장강 같은 인물들은 재밌는 상황과 인물을 맡아 장기를 살려서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재밌기는 했지만, 대사 구석구석은 엉성한데가 역시 있기는 있었습니다.

웃길 장면이 부족해지면 고질적인 병폐 그대로 엉뚱한 길에 괜히 매달리며 시간을 때우기도 합니다. 1960년대 영화 답게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주기 위해 중간에 장황하게 노래와 쇼 무대 장면을 길게 보여 주는 대목이 있는데, 이 대목에 이어 붙여서 웃긴 장면이랍시고 그냥 구봉서와 서영춘이 이런저런 추태 보여주는 장면을 대강 때워 넣은 장면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발상이 애초부터 괜찮았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 발상을 그런대로 펼쳐 놓은 영화였기 때문에 저는 1960년대 구봉서 코미디의 대표작으로 어울릴 만한 영화라고 해 보고 싶습니다.

소재의 재미가 치솟는 결말 근처에서는 연출도 갑자기 썩 좋아지고, 코미디 다운 비현실적인 과장이 흥을 돋우는 맛도 좋았습니다. 찢어져 버린 양복을 찾아 쓰레기장을 뒤지는데,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더러운 쓰레기장을 서로 경쟁하며 뒤지고 있는 모습은 화면에 담긴 모습만으로도 훌륭한 자본주의 도시의 풍자극이 되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복권 소문을 듣고 신혼여행길을 가던 부부 중 남편까지 갑자기 차에서 내리는 장면과 그 장면에 뒤이어 차의 기사까지 복권을 찾으러 뛰어 가는 장면 같은 것은 코미디의 흥이 잘 사는 대목이었습니다. 구봉서의 연인 역할로 나오는 최지희 역시 비중은 작았지만 충실한 모습이었다는 것도 써두고 싶습니다.


그 밖에...

중간에 구봉서와 서영춘이 갑자기 뛰어 들어 추태를 부리며 소동을 벌이는 쇼에서 원래 가수들이 부르던 노래는 “단벌신사”로 다름 아닌 이 영화의 주제곡입니다. 영화 주제곡과 영화를 같이 내어 놓으며 노래와 영화를 같이 흥행시키려고하던 1960년대 후반의 유행을 이 영화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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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차차 2019/07/09 16:27 # 삭제 답글

    이 영화 비됴테입이 있어서 잼나게 몇 번을 봤었어요 중간에 살짝 야한 장면도 잠깐 나오고 마지막에 복권 찾아 은행 셔터 내릴때 슬라이딩하듯 들어가는 장면서 가슴 졸였었는데 ㅎㅎ
  • 게렉터 2019/07/09 21:59 #

    어처구니 없는 영화도 워낙 많은 것이 이시절 코미디 영화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영화는 중심 줄기가 단단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혹시 원작이나 표본이 될만한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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