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등과장 (1961) 영화

1961년작 한국영화 “삼등과장”은 “로맨스 빠빠” 계열로 한 데 묶을 만한 김승호가 가족을 부양하는 도시 회사원으로 나오는 1960년대 초 한국 영화 중 하나로 볼 만합니다. 내용은 직장 생활을 하며 이상한 상사와 당돌한 후배 직원 사이에 치이는 직장인이 약간의 소동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어른이 된 두 자식, 노인이 된 부모와 김승호는 함께 살고 있고, 직업은 운수회사의 과장인데 한편으로 딸이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다는 것이 영화의 출발이고, 김승호의 악덕 상사 역할은 김희갑이 맡고 있습니다.


(포스터)

대체로 안정감 있는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대단히 박력이 있거나 화려한 뭔가를 보여 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어지간한 시트콤의 30분짜리 에피소드 중에 그럭저럭 펼쳐지는 수준으로 크게 대단한 사건이라고는 하기 어려웠습니다. 내용 자체도 크게 참신한 것은 아니어서, 상사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직장 생활에서 버티기 위해서 주인공이 거기에 협조해 주다가 오해를 산다는 등등 이곳저곳에서 보던 이야기를 끌어다 붙이는 수준입니다. 회사 건물에 문득 댄스 교습소가 생긴다거나, 생선을 들고 집에 가다가 불량배와 싸움 난 것에 휘말려 생선을 불량배 머리에 뒤집어 씌우며 싸운다거나 등등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은 시트콤에서 과연 한 두번 쯤 볼법한 내용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영화라면 장면장면 재치 있는 대사로 웃고 넘어 가는 것이 묘미이겠습니다만, 이런 점에서도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습니다. 길가에서 시비 붙은 불량배가 “이 자식이 자꾸 약을 올리네.”라고 하자, “그러면 약을 내려드릴까?”라고 응수하는 대목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밖에는 영화 자체의 재미와는 관계 없이 의외로 한국어의 속어 중 몇몇이 이 1961년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굉장히 오래 되었구나 싶은 것이 생각나는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망신을 당했을 때 “스타일 구긴다”라고 말한다거나, 이미 결혼한 사람의 바람 상대를 두고 “세컨드”라고 말하는 것 등등이 생각납니다. 저 시대에서는 3 3 7 박수로 응원을 할 때, 응원단장 하는 사람이 구호로 “차 차 차! 차 차 차! 차 차 차 차 차 차 차!”라고 소리를 치는 구나 하는 것도 비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무리수가 없고 그런저런 이야기들이 무리 없게 잘 얽혀 있습니다. 제 몫을 톡톡히 하는 배우들의 연기 속에서 이야기는 잘 자리 잡혀 있고 느긋하고 밝은 분위기로 영화를 기분 좋게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악역 조연인 김희갑의 연기도 좋거니와, 이미 비슷한 역할로 몇 차례 성공을 거둔 김승호는 듬직해 보이는 겉모습이지만 한편으로 직장에서는 비굴하게 버티기만 하는 회사원의 모습을 대조로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발랄하고 장난스러운 어린 직원을 연기한 도금봉의 연기도 너무나 깨끗합니다. 도금봉은 1960년대 후반 이후로 탐욕스럽거나 요사스러운 역할 내지는 그러다가 인생에 고생한 사람 역할 등등 비슷한 몇 가지 모습으로 워낙 강하게 굳어진 배우라는 느낌이 있는데, 지금 이 영화에서 밝은 신입사원 코미디 연기를 잘 해낸 모습을 보면 그런저런 모습을 떠나서 그냥 배우로서 종합적인 연기 실력이 워낙에 뛰어난 배우 아니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코미디에서 김희갑의 인기 때문이었는지, 이 신문광고를 보면 악당 조연일 뿐인 김희갑이 가장 크게 나오고 있습니다.)

옛날 영화다 보니 군데군데 요즘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 속 세상은 무슨 마약밀매범 소굴도 아닌데 사람들이 “주먹이 근질거린다” “패버리고 싶다” 같은 말을 무슨 애정어린 농담처럼 늘어 놓는 것은 가끔씩 분위기를 싸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1960년대 초, 4.19 혁명 전후의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있는 서울에서 도시 회사원 생활이 어떤 느낌인지 보여주는 표본이 되기에는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안정감이 있는 영화 속에서 세월이 흘러도 회사원 생활은 비슷하구나 싶은 공감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일이 꼬여서 과장 김승호가 신입사원에게 찾아 가 “내가 노인 둘을 모시고 살고 있고 자식도 둘인데 그동안 버티고버틴 이 회사에서 나가게 되면 어디에 가겠는가”하며 통사정을 하는 장면이라거나, 동료 회사원을 해고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나눌 때 “남의 밥통을 그렇게 함부로 빼앗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장면은 가볍게 지나가는 장면인데도 마음에 어쩐지 무게 있게 와닿았습니다.


그 밖에..

김승호의 아들에게 괜히 시비 거는 불량배 역할로 무명시절의 독고성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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