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안 풍경 (1962) 영화

1962년작 한국영화 “골목안 풍경”은 서울 성북구 어귀 즈음의 어느 주택가 골목에 살고 있는 김승호가 연기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의 삶 속 소동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인 틀은 “로맨스 빠빠” 이후로 1960년대에 여러 편이 나온 한 가정의 아버지 김승호와 그 가족들을 다룬 영화들의 경향을 비슷하게 따라 가는데, 특징이 있다면 중반 이후로 김승호 이야기와 직접 상관 없는 전형적인 한국 신파극 영화의 이야기를 괜히 한 번 구워 삶는다는 것입니다.


(포스터)

영화 시작만 보면 시트콤 분위기의 코미디와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주인공 김승호의 역할은 구청 공무원인데 집 안에 자식이 아홉이나 되어서 생계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항상 갓난 아기를 돌보고 있는 김승호의 어머니라든가, 작가가 되겠다면서 좀 울적하게 살고 있는 김승호의 동생 최무룡 등등의 인물이 같이 살고 있는 식구로 나옵니다. 여기에다가 이 영화 속에서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 주는 김승호 부인 역의 조미령이 이 사이의 이야기를 잘 붙여 주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선명한 인물 특성이라든가, 맨날 준비물 산다, 군것질 한다면서 돈 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모습 등등은 소위 말하는 가족 시트콤의 배경으로 충실하다고도 볼 수 있을 만 했습니다.

한편 김승호가 술친구 삼아 자주 어울리는 김승호의 처남 김진규의 역할은 도리어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고민인 집안으로 나오고 이 사람은 서점 주인으로 나오는데 그 서점 아르바이트생 직원은 또 매우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변 인물들도 이야기의 재료로 재미 있을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포스터에는 당시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김희갑과 양훈의 모습이 크게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즉, 영화를 보면서 초반에는 코미디 느낌을 제법 느낄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에는 몇 백만에 사람들이 삽니다”라는 나래이션과 함께 도시 군중의 모습을 보여 주다가 주인공이 사는 골목을 보여 주고, 그곳 사람을 소개하는 이야기로 연결되는 도입부는 1960년대 초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에서도 흔히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실제로 코미디 영화 다운 소재를 매끄럽게 풀고 가는 대목도 찾기 어렵지 않은 영화입니다. 자식이 아홉이나 되니 아침 등교 시간, 출근 시간이 대단히 시끄러운데, 이때 아이들이 준비물 사려고 돈을 달라고 합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으니 조미령은 돈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러자 김승호는 중절모자에 숨겨둔 비상금에서 돈을 쪼개 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조미령은 “비상금을 몰래 숨겨 두다니”라고 김승호를 탓하면서 그 돈을 가져 가고, 사실은 원래 갖고 있었던 돈에서 아이들 준비물 값을 쪼개 줍니다.

그러니까, 조미령이 속임수로 김승호의 비상금을 밝혀 내 토해 내게 하는 재치를 부린 셈이 되는데, 짤막하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조미령의 연기가 아주 잘 들어 맞아 있어서 보고 있으면 제대로 흥이 살았습니다. 가볍게 가는 작은 장면이지만 저는 이렇게까지 영화 화면에 자연스럽게 연기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게다가, 이후에 이어지는 김승호가 자식이 너무 많아서 진짜 인생 고달프다며 투덜거리며 집을 나서는 장면이라든가, 저녁에 술이 떡이 되어 와서는 “나는 대문 앞에서 자겠다”면서 헛소리를 하는 대목 등은 대사가 잘 짜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김승호의 주특기를 잘 살리고 있어서, 코미디 영화의 분위기를 잘 타고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중반 이후를 보면 이 영화는 사실 전체가 코미디 영화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영화가 좀 재미 없어집니다.


(1년인가 먼저 나온 영화인 "마부"에서는 김승호, 조미령이 아버지와 딸로 나왔는데 여기서는 남편과 아내로 나옵니다.)

온통 시끄러운 집안에서 어떻게든 때워 나가는 주인공 김승호에 비해, 그 술친구이자 처남인 김진규는 잘생긴 서점 주인이라서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김진규 쪽의 이야기가 너무 과하게 닳고 닳은 신파극입니다.

내용은 김진규가 자식이 없는데 괜히 부인 탓을 하면서 겉돌게 되고 그러다 바람이 나서 카페 주인인 김지미와 살림을 차리려고 하고 어쩌고 하는데, 김지미는 다른 사람의 아기를 임신하니 뭐니 하고 있고 그러는데, 내용도 지겹거니와 강렬한 감정을 보여준답시고 쓸데 없이 사람 뺨 치는 장면이나 나오는 등등 보기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김승호 쪽의 이야기는 골치 아픈 인생이지면 그래도 웃으며 그럭저럭 버텨 간다는 느낌의 내용인데, 그런 흐름과 동떨어져서 따로 굴러 가고 있다는 점도 좀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이 부분 역시도 좋은 배우들이 신경 쓴 연출 속에서 열심히 연기한 덕택인지 그냥 떼어 놓고 보면 그런 비슷한 영화들의 평균 이상은 되어 주었습니다. 김지미의 연기는 이런 흔하디 흔한 과장된 신파극 연기를 아주 깨끗하게 잘 보여주는 멋진 것으로, 그런 연기의 정통을 과시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김진규 역시 보고 있으면 좀 짜증스러운 인물인 극중 역할을 참 보던대로 잘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뒤틀린 권선징악인지 이 영화 속 김지미는 결말까지 가면 좀 과하게 망하면서 파멸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 등장인물의 파멸을 전시하듯이 보여 주는 것은 영화 속 세상의 묵은 수법이겠습니다만, 그런 것 치고 이 영화는 비슷한 다른 영화에 비해 연출이 나은 편이기는 했습니다. 우아한 양장을 차려 입고 있던 김지미가 막판에 몰리자 머리채를 붙잡고 바닥에 나뒹굴며 처절하게 싸우는 장면의 박력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엉망이 된 양장을 그대로 걸치고 시내 군중 속을 달려 뛰어 가는 장면, 그러다가 비겁한 김진규와 마주치는 장면에서 무슨 말을 할까 어떨까 관객이 긴장하게 만드는 연출은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그래도 중반 신파극이 좋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분위기를 망쳤으면서도 막판에 어정쩡하게 행복한 결말로 갖다 꽂는 것도 영 이상했습니다. 썩은 짓은 골라서 다한 화의 근원인 김진규가 막판에 무슨 착한 주인공인척 연기하는 장면은 정말 못봐줄 지경입니다.

이보다야 김승호쪽 이야기가 훨씬 더 낫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에 한 두 번 겪을 만한 걱정거리를 다루면서 거기에 살짝 희극 분위기를 섞어 두었습니다. 이런 코미디는 관객이 공감을 하게 하면서도 “그래 저런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힘 내야지”하는 마음을 먹게 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내용이 이 영화에는 괜찮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쪽 내용을 위해서 영화 속 사건이 치밀하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앞의 복선과 인물 분위기가 대강 분위기는 맞아 떨어지게 연결 됩니다. 현금이 없어 만날 외상을 지는 형편을 앞에 보여 주고 나면, 갑자기 어머니가 맹장염으로 드러 누워 병원비를 구할 위기가 생겨서 더 돈걱정이 뼈저리게 느껴지게 된다든가, 김승호가 어쩐지 허술한 구석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가 되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공금을 들고 버스 타고 가다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또 돈 문제가 생긴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돈 문제만 좀 해결되면 화목하고 행복한 삶 아닌가 싶은 김승호와 그 가족들의 삶에 이런 식으로 고민거리가 하나 둘 계속 얹히면서 어느 순간 도무지 갈 길이 없는 망한 신세의 갈등으로 치닫는 위기감이 제법 극을 절정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막판은 닥치는 행운의 연속으로 적당히 행복한 결말로 맺어지게 됩니다. 그런 내용은 너무나 영화 같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가 애초에 노리고 있었던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의 운치는 마지막까지 유지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아홉 자식을 다 기르지 못할 형편이 되어, 주인공은 자식 둘을 입양 보내는 것 비슷하게 하려고 하는데, 마침 자식들을 보내는 날 아침에 괜히 자식들에게 노래 하나 불러 보라고 하니 멋모르는 자식들은 눈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부모님 은혜”를 같이 합창으로 부른다는 등의 장면은 그런 흐름의 예라고 할만 하겠습니다.


그 밖에...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김희갑과 양훈이 나오지만 실제로 비중은 아주 작습니다. 그나마 양훈은 영화 줄거리에 약간 엮이기는 하는 작은 역할이지만, 김희갑은 잠깐 산부인과 의사로 카메오나 다름 없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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