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Iron Man, 2008)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은 무기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굉장한 실력의 공학자이자 재벌2세로 폼을 줄창 잡으며 사는 토니 스타크입니다. 그런 스타크는 영화 초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단체에 억류 되는데 이후 마음이 동요하여 온갖 자동 장비가 달린 강철 갑옷을 입고 “아이언맨”이라는 만화 속 영웅이 되려고 한다는 것으로 이 영화 내용은 흘러 갑니다.


(포스터)

영화 줄거리의 면면을 뜯어내서 따져 보면 좀 답답한 구석이 있습니다.

시작 부분을 보면 주인공은 거의 제임스 본드 흉내를 낸다고 할 정도로 옛날 영화 속 노는 인생의 티를 내는 인물인데, 이런 인물을 와닿게 보여 주는 이야기를 꾸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게 사는 인물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이 구경거리가 된다는 밑천은 있습니다만, 그런 껍데기 같은 인물이 뭔가 계기를 겪어 영화 후반에 새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도 발상은 좀 지겨운 구석이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부자에게 “도둑 맞은 가난” 이야기는 인생 쉽게 살던 사람이 이제 인생 고생한 이야기까지 하려고 든다는 얇은 느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주인공은 여흥이랍시고 자기 전용 비행기에 승무원 옷차림을 한 댄서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자기 앞에서 춤추라고 하는 사람인데 이걸 웃고 넘어가며 보여 주는 영화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 속에서 주인공과 엮이는 아름다운 외모의 기자 같은 인물은 정말 옛날 제임스 본드 영화의 조연 정도로 밖에 안 꾸며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옛날 제임스 본드 영화처럼 대충 그냥 설렁설렁 폼만 잡고 여유롭게 재미난 장면 보다가 넘어가고 마는 영화는 또 아닙니다. 세계의 분쟁 지역이나 무기 산업에 대한 소재를 중심에 놓고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진지하게 꾸몄지만 좀 겉멋 같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싶은 대목들이 없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때 말 그대로 하늘에서 선진국 출신 백만장자가 나타나 이들에게 구원을 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게다가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지긋지긋하게 보던대로, “갑부 아들이 갑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를 차지하려는 악당 중역이 있고, 또 충직한 직원이 있고” 어쩌고 하는 소재도 어김없이 또 나옵니다. 회사란 것이 고귀한 재벌 총수 일가들 안에서만 물려주고 말고 하는 집안의 소유물이 아닐텐데, 현대 자본주의 경영을 다루는 이야기 대신 그냥 이야기 짜기 편하고 전달하기 편하니까 전설이나 동화 속 왕자와 충신, 간신 이야기처럼 꾸며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결코 재미 없지 않습니다.

일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주인공이 탈출하려는 부분의 장면이 아주 좋습니다. 주인공이 맥가이버처럼 활약 한다는 이야기도 재밌고, 이때 주인공이 만드는 기계의 모습, 실감 나는 재질, 그럴듯한 움직이는 느낌도 대단히 좋습니다. 투박한 모습이어서 오히려 진짜 뚝딱뚝딱 갑자기 만든 실감나는 느낌이 더 살아 있고, 주인공이 탈출을 위해 급히 만든 기계라서 성능이 무한정 좋지 않고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과연 악당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아슬아슬한 느낌도 있습니다. 이 영화 후에 나온 마블 영화 시리즈에 나오는 모든 영화 속 소재인 기계 모습들 중에 저에게는 아직까지도 그 모습만으로 재미를 준 정도를 따지자면 가장 재밌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자연스럽고 쉽게 공감을 하게 해 줍니다.

주인공은 영화에서 보여줄 거리로 다룰 만한 억만장자였습니다. 이런 예외 같은 인물에게 보통 관객 대부분이 공감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무장단체에 억류된 인질이 되면, 그 신세는 관객들이 훨씬 공감하기 쉬운 것이 됩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구석에 처박혀 목숨을 위험 당하는 힘 없는 신세가 되면, 그 신세가 된 사람이 억만장자라고 해서 딱히 무술과 체력이 뛰어 나거나 죽음의 공포가 덜한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낯선 나라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그 마음은 영화 속 억만장자나 보통 관객이나 비슷합니다. 나중에 초능력 영웅처럼 될 수 있는 이상한 장비에 매달린다는 것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 단체에 억류된 절체절명 상황의 충격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말이 되게 보입니다.

이러니 이야기가 잘 풀립니다. 무장 단체에 붙잡혔다가 나와서 “치즈 버거 먹고 싶다”고 하고는 만사 젖혀 놓고 정말 맛있게 먹는 장면도 같은 방식으로 관객의 공감을 뽑아 내는 느낌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인공과 같이 붙잡힌 조역으로 활약하는 잉센 역할의 숀 타웁도 연기가 기가 막힙니다. 따지고 보면 역시 주인공을 위해 이야기 만들어 주다가 중반 이후에 안 나오는 소수인종 조연 역할이라는 작은 역할일 뿐입니다. 그런 별로 큰 역할이 아니라서 지나칠 만 한 역할인데, 보면 볼 수록, 그 작은 역할 속에서도 상황을 진지하고 빠져 들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사람의 감정을 깊게 붙잡는 연기를 제대로 해 내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억만장자가 하는 일이지만, 공감갈만한 이야기로 뽑아 내는 느낌은 아이언맨 갑옷을 개발하는 장면에도 잘 잡혀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스타크는 직접 장비를 만듭니다. 많은 정성을 기울여 개발은 하지만, 잘 되기도 하고 잘 안 되기도 하고, 시험하다 잘 되면 좋아하기도 하고, 실패해서 놀라기도 하고, 처음에는 고생도 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개발해 나가는 느낌은 뭔가를 만들어 보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그 감정을 전해 받을 수 있을 만큼 잔재미가 있었습니다.


(손 부분 잘 되나 시험해 보기)

또 한가지 장점은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꼬인 농담 습관과 그걸 잘 보여 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제임스 본드 비슷하기도 하고, 영화 후반에는 초능력 영웅 행세를 하는 갑부니까 배트맨 비슷하기도 한 역할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제임스 본드나 배트맨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깐죽거리는 농담을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입니다. 자기가 재치 있고 똑똑한 줄 알고 비꼬는 소리 자주 하는 인간은 현실에서 만나면 두 세 배로 한심해 보이기 마련입니다만, 이 영화 속 세상은 할리우드의 최고급 작가들이 대사를 다 써 주는 영화 속 세상인 까닭에 다행히 그런 말들이 정말로 재미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장점을 잘 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조연을 맡은 기네스 펠트로는 옛날 만화나 TV연속극 속에서 너무 많이 나와서 이제는 정말 그만 보고 싶을 정도인 “상사가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비서”라는 역할을 또 하고 있는데, 그걸 굉장한 경지로 실제 영화에서 보여 줍니다. 기네스 펠트로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심장 치료하는 장면에서 둘이 코미디 장단이 들어 맞으며 감정과 성격도 보여 주는 대목은 간단하게 넘어 가는 장면이지만, 이런 영화 방향과 배우들의 역할이 꼭 잘 들어 맞았다는 증거라고도 할 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괜히 너무 심각하고 무거운 척하느라 얼토당토 않아 보이는 길로 빠지지도 않았고, 반대로 그냥 장난처럼 모든 게 만화 같은 이야기라는 길로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제 미군 최고 수준의 전투기들과 아이언맨이 대결을 벌이는 장면 같은 것은 싸움 장면도 보기 즐거운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런 초능력 같은 것이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상상의 재미를 살리기 좋았습니다. 오히려 악당 두목급과 결투를 벌이는 마지막 결전이 어두 침침한 데서 몇 안되는 사람들이 벌이는 지라 약간 맥빠졌습니다.


그 밖에…

아이언맨 시리즈 중에서는 월등히 제일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

옛날 1990년대초 쯤 오락실에 네 명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어벤져스 게임이 나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게임을 통해서 아이언맨을 처음 접한 분들이 제법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Captain America and the Avengers 게임 화면)

벌써 11년 전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억만장자 공학자 재벌2세 토니 스타크가 쓰는 전화기는 접었던 것을 열면 화면이 가로로 돌아 가는 한국 회사 제품입니다. 그런 시절에 나온 영화인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장면이 워낙 재밌어서, 저는 아이언맨 시리즈가 계속 이렇게 좀 현실적인 내용을 많이 걸고 넘어갈 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억만장자 만능 갑옷 영웅이 있는데, 이번 편에서는 이 사람이 과연 테러리스트와 어떻게 대결할까를 다루었으니, 다음 편에서는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 그 다음 편에서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뭘 할까, 그 다음 편에서는 마약 밀매범을 소탕하기 위해서는 뭘 할까, 뭐 그런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을 소재로 잡아 와서, 그런 사회 문제에 영화에서만 가능한 환상적인 기술, 환상적인 영웅이 어떻게 도전해 나가는가 하는 경계를 다루면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뒤이어진 속편들은 사악한 비밀 조직, 라이벌 악당, 외계인 같은 환상 중심으로 확 기울어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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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궁굼이 2019/05/16 14:08 # 답글

    전 아직도 이거보다 재미있는 마블 영화를 못본거 같습니다.

    어설픈 메시지도, 교훈도 없이
    순수하게 재미에 모든걸 쏟아부었고 그렇기에 성공할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도저히 이길수 없을거 같았던 아이언몽거에 대한 승리도 영리했고요.
  • 게렉터 2019/05/17 12:52 #

    저는 주인공의 화려한 삶을 보여 주는 대목이 너무 판에 박힌 느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막판 싸움도 밝은 데서 싸워서 더 잘보였으면 더 재밌었을텐데 싶기도 했고. 이때만 해도 제작비 한계도 있고 그렇긴 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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