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홈커밍 (Spider-Man: Homecoming, 2017) 영화

굳이 특이하게 생긴 자기 맞춤 옷으로 갈아 입고 변신해서 지구를 지키는 초능력 영웅 이야기의 동화 같은 면모를 진지한 고민과 잘 연결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크 나이트”처럼 덮어 놓고 무겁고 컴컴하게 밀고 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초능력, 변신할 때 입어야 하는 옷, 지구를 지킨다 같은 소재를 그냥 똑바로 마주 하면서 우스꽝스러우면 우스꽝스러운대로 코미디로 살려서 솔직하게 풀어 놓는 것입니다.


(포스터)

10대 청소년을 소재로 한 시트콤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웃기고 싱거운 상황을 다루면서도 따라 가다 보면 관객이 깊게 공감하게 하면서 사람의 성장을 소재로 제법 감동도 이끌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거침 없이 하이킥” 시리즈의 10대 청소년 인물들 이야기라든가, 1990년대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사춘기” 같은 TV극 시리즈를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영화가 정말로 10대 청소년 시트콤의 틀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향은 비슷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심하지만 좀 웃긴 삶을 사는 주인공이 있는데 이 주인공이 우연히 스파이더맨이 되면서 일을 겪으며 느끼는 바람 든 느낌, 번민, 후회를 펼쳐 놓고 코미디와 엮어 다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 옷으로 갈아 입기 위해 뒷골목에서 허둥거리는 모습이라든가, 상쾌한 모습으로 변신해서 멋지게 날아 다니며 싸울 때는 변신하기 전에 들고 있던 책가방 같은 소지품은 다 어디에 두고 다녀야 하는가 하는 고민, 등등 현실과 겹쳐지는 소재에서 코미디 분위기를 이야기와 엮습니다.

이렇게 영웅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충돌에서 코미디를 잡아 내는 수법은 웃기기도 웃기지만, “정말로 어떤 고등학생이 초능력 영웅이 되었다고 해보자, 어떨까?”하는 상상에서 생기 있는 공감을 끌어 오기도 좋았습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다 보면 순간적으로 무서워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성장과 관련된 이야기도 같이 펼치고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10대 청소년일 뿐인 스파이더맨이 무슨 군부대 특수요원처럼 악당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 게 옳은가, 스파이더맨이 되어 우주의 운명을 걸고 날아 다니는 꿈도 좋지만 고등학생으로서 학교 다니고 친구들과 놀고 공부하고 이런 것도 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닌가,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다룹니다. 그런 가운데, 코미디가 진지한 느낌으로 연결되는 순간에서는, 그러니까 피터 파커가 안타까워 하며 “스타크 인턴쉽을 이제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라든가, 또는 볼품 없는 옛날 스파이더맨 유니폼을 다시 꺼내 입는 장면 등등에서는 감동도 선명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동경하는 초갑부집 자식 재벌 총수 아이어맨을 언급하면서 빈부와 계층의 차이에 대한 소재를 슬쩍 깔아 주는 느낌도 괜찮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악당역이 갖추어진 편인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갑자기 나온 새로운 정부 정책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의 고민과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를 다루고 있는 동기가 분명한 악당이면서 지나치게 악당 변명하는 신파극에 빠져 있지도 않습니다. 비중이 쓸데 없이 크지 않도록 조절도 잘 된 편이어서, 영화의 밝은 분위기를 해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상은 분명합니다.

게다가 악당이 쓸데 없이 잔인한 짓이나 비열한 짓을 하는 장면을 길게 보여 주지도 않는데, 그런데도 동시에 악당의 무서운 느낌, 악당 다운 느낌을 잘 보여준다는 것도 대단한 장점이었습니다. 마이클 키튼의 기막힌 연기로 그냥 밀어 붙여서 때운 점도 있었을 겁니다.

초능력 영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만의 재미를 정통으로 되살려 주는 맛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요즘은 조금 드물어졌지 않은가 싶은, 주인공이 정체를 숨기고 있어서 그것이 비밀이 되어 고민도 하고 둘러대며 소동도 빚는 이야기의 소재가 잘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반가웠고, 10대 청소년 성장 이야기에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지하철 지붕 위에 걸터 앉아 해질녘의 뉴욕을 지나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라든가, 워싱턴 DC의 오벨리스크 모양 위를 기어 오르는 스파이더맨처럼, 시적인 장면 구성이 살아 나는 몇 군데도 보기 즐거웠습니다.


그 밖에...

스파이더맨 영화면서 아이언맨이 너무 중요하게, 자주 나오는 것 아닌가 싶어 좀 심하다 싶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2010년대에 쏟아져 나온 모든 마블 만화 원작 영화들 중에서 저는 이 영화를 제일 재밌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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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지나가는 2019/05/13 21:14 # 삭제 답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 화려한 활공씬, 액션씬의 비중이 너무 낮고 스파이더맨 개인의 미숙함을 너무 강조하고 독립성, 개성을 너무 떨어뜨렸다는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파프롬홈 예고편 공개 후 MCU 스파이더맨은 너무 아이언맨에 종속시킨다는 비판이 거센듯 해요
  • 게렉터 2019/05/14 11:48 #

    액션은 조금 약한 느낌이 날 수도 있겠지요. 아이언맨 비중이 좀 지나쳐 보이긴하는데 본론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통적으로 최고급 지명도의 만화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에 눌리는듯한 취급은 팬이라면 싫을 수 있겠지요.
  • 세뇰 2019/05/13 22:40 # 삭제 답글

    어벤저스에게 들킬까봐 심각한 악행은 안 저지른다거나, 자기 가족과 부하직원들 챙길 돈만 모으고 나면 손 털 생각이었다거나 하는 게 기술력 외엔 굉장히 현실적인 범죄자 느낌이 드는 악당이 나와 신선했어요.
  • 게렉터 2019/05/14 11:49 #

    그러면서도 키튼의 연기덕에 여전히 무시무시해 보이는것도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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