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여 - 누추한 말을 써야만 심오한 이치를 보일 수 있다 - 고려시대 명언 고려시대의 명언과 유행어

968년경의 일입니다.

광종의 자식 다섯이 있었는데 대목왕후가 그 다섯을 모두 낳았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한 때는 광종과 대목왕후가 친밀했을 것입니다. 아마 광종이 무시무시한 임금의 모습을 드러내는 960년대가 되기 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종이 막 임금이 되었을 무렵에, 대목왕후가 병으로 고생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피부병에 걸린 것인데 당시 풍습에 따르면 대목왕후가 의사에게 드러내어 보여 주기가 난처한 부위에 병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좋을 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아프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지라 왕후는 유명한 승려였던 순공을 부릅니다. 그래서 병이 낫는 것을 빌면서 불경을 읽거나 기도라도 해달라고 합니다.

"균여전"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순공이 기도를 하자 대목왕후의 병이 순공에게 옮겨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목왕후는 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공이 문제였습니다. 순공이 병을 앓는 것이 7일 동안이나 계속 되어 역시 매우 괴로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 사람들은 가끔 병을 무슨 귀신이나 괴물이 붙어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대목왕후의 피부병이 옮아 온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순공을 얼마 후 그 제자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제자가 다시 기도를 합니다. 향로에 향을 피워 놓고 기도를 하자, 무엇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는지 병은 이제 제자의 방 옆 쪽에 있는 느티나무 서쪽 가지에 옮아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순공은 나았고, 느티나무는 달라 붙은 병 때문에 말라 죽었다고 합니다. 말라 죽은 그 느티나무가 한참 남아 있어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승을 구해 준 이 제자가 바로 균여라는 승려입니다.

균여는 어머니가 60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 낳았다는 사람입니다. 아무래도 집안이 상당히 가난했던 것 같습니다. 균여는 일곱 달 만에 태어났는데 너무 빨리 태어났기 때문인지 겉보기에 모습이 몹시 못생겨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너무 못생겼다는 이유로 균여의 부모는 아기 균여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새 두 마리가 날개로 아기 균여를 감싸 주는 것이 지나가는 다른 사람 눈에 뜨여서 그 사람이 아기를 되찾아 주어 어쩔 수 없이 다시 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후에도 부모는 아기 균여가 너무 못 생겼다고 생각해서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젖을 먹여 기르다가 몇 개월 후에나 마을 사람에게 균여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 균여가 있던 그 상자가 일종의 인큐베이터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균여는 자라서는 불교를 익히기로 합니다. 한참 불교 공부를 할 때에는 자신의 누나인 수명과 누가 더 불경을 잘 외우는 지 서로 대결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수명 또한 대단한 경지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옵니다.

이후 균여는 불교 중에서도 화엄종 계통의 이론을 통합하려는 데 점차 관심을 갖습니다. 후삼국시대의 혼란기에는 당시 불교도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는데, 균여전에서는 관혜라는 승려의 파와 희랑이라는 승려의 파로 대략 나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관혜파는 남쪽 지역에서 세력이 강한 편이라 보통 남악이라고 불렀고, 희랑파는 북쪽 지역에서 세력이 강해 북악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연히 고려가 북쪽에 있으니 고려에서는 북악이 주류가 되고, 후백제에서는 남악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후 왕건과 그 부하들의 활약으로 후삼국은 통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화엄종은 여전히 북악과 남악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균여는 이런 상황에서 북악과 남악의 화엄종 이론을 통일하는 이론을 개발해서 퍼뜨리는 방법으로 파벌로 나뉘어 있는 화엄종을 하나로 묶으려고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전국을 하나로 틀어 쥐려는 임금인 광종에게도 균여의 사상은 신선한 시도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광종은 균여를 상당히 믿게 됩니다. 대목왕후가 병 들었다가 나을 때 돌았던 소문을 통해서 균여를 처음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몇 년 후에 정식으로 균여를 알게 되기도 합니다. 중국 송나라 사신을 만나는 행사를 할 때 비가 와서 걱정이었는데, 겸신이라는 높은 승려가 균여를 추천해 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균여가 사자좌 자리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내며 말했더니 비가 멈추었다고 합니다.

이때가 953년인데 그 무렵 광종은 균여의 학식과 사상의 깊이에 큰 감동을 받았던 듯 합니다. 균여는 승려였고 광종은 임금이었는데도 광종이 균여에게 아홉 번 절하는 예의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사상의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다짐한 것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광종은 전국 각지에 자기 세력을 갖고 있는 후삼국시대의 성주, 장군 출신 신하들을 제압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별별 짓을 다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런 광종이 생각하기에 불교가 지역마다 나뉘어 있어서 각 지역의 종교가 각 지역의 세력 편을 드는 상황은 골치거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균여는 그것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활동 하고 있다고 하니, 광종은 솔깃하여 빠져 들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균여가 어떤 이론으로 화엄종을 통합하려고 했는지는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균여의 화엄종 이론 해설 중 일부를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적당히 옮겨 보면 이렇습니다.

"유통은 일정하지 않으니, 믿음을 권고[勸信]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기도 하고, 서원(誓願)을 기준으로 하기도 하며, 결속(結屬)을 기준으로 하기도 해서 유통이라 이름한다. 말하자면 「법계품」 말미에서 “티끌 같은 중생 마음 바다[衆生心微塵海]의 물방울은 셀 수가 있고, 허공 또한 잴 수 있지만 부처님 공덕을 설함에는 다함이 없으니 이 법을 듣고 환희하여 그 믿는 마음에 의심이 없는 자는 조속히 위없는 도를 성취하여 모든 여래와 동등하게 되리라”고 했으니, 이는 믿기를 권고하여 유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균여의 글인 "석화엄지귀장원통초"에 나오는 본문 해설 첫 부분입니다. 이런 말은 불교에 대한 넓은 이해 없이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 먹을 수가 없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렇습니다만, 균여가 원통량중대사(圓通兩重大師)라는 칭호로 불리웠던 것을 보면,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균여는 직역하면 "통하여 둥글게 한다"는 뜻의 "원통"이라는 말을 자주 쓰며 좋아 했으니, 적어도 그런 분위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풍기면서 서로 다른 화엄종 이론의 통합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은 해 볼만 합니다.

이후 균여는 눈에서 무지개 모양의 빛을 밤 중에 뿜어내는 이상한 초능력을 보여 준다든가, 염주가 공중에 붕 떠올라 균여의 주변을 세바퀴 돈다든가 하는 신기한 전설을 남기기도 합니다. 명성도 매우 높아집니다.

균여는 노래 가사, 시를 짓는 재주도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균여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화엄종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불교 경전 "화엄경"의 내용 중 일부를 노래 가사로 꾸민 향가를 지었습니다. 총 11편으로 보통 "보현십원가"라고 부릅니다. 이 향가들은 당시에도 너무나 좋은 평을 받았고, 현대에는 향가 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로 학자들이 널리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균여전"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보면 균여는 사람들이 노래로 부르기 좋은 이 가사를 지으면서 그 이유를 "누추한 말에 기대지 않고는 심오한 이치를 보일 수 없다 (非寄陋言 莫現普因 비기루언 막현보인)"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일 수록 차근차근 쉽게 설명해 나가야 남에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설명하려는 가운데 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도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감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어느 과학자가 했다는 말처럼 "뭔가를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완벽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는 뜻에 가까운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너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것보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건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항상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고, 오히려 더 일이 어렵게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언제나 맞는 이야기는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화엄종 이론의 온갖 갈래에 밝았던 균여가 이렇게 널리 화엄종을 알리기 위한 노래를 만드는데도 직접 나섰다는 점은 눈길을 끕니다.

광종이 무시무시한 임금이 되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감옥에 가두고 처벌하는 시대가 되자, 균여도 광종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귀법사의 정수라는 승려가 균여의 잘못을 고발하자, 균여는 검거 되어 처형 당할 위기에 놓입니다. 다행히 균여는 그래도 일단 풀려 나기는 합니다.

"균여전"에 나오는 전설에 따르면 그날 밤 광종의 꿈에 키가 매우 큰 거인 모습의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법왕을 능욕했으니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일어나 보니 송악산 북쪽에 소나무들이 바람도 없는데 몇 천 그루나 저절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광종은 꿈에서 들은 "법왕" 즉 진리의 왕이 바로 균여를 말하는 것임을 깨닫고 잘못했다고 죄를 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보면, 갑자기 소나무가 이유도 없이 쓰러진 것은 퉁쿠스카 폭발처럼 작은 운석이 떨어져 폭발한 사건 같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상상이지만 무슨 우주선이 착륙하거나 이륙한 자국 비슷하다는 상상도 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눈에서 무지개 빛을 뿜었다는 균여의 이야기도 조금 외계인 이야기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광종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아무리 종교적 깨달음과 관련된 이야기라도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따뜻한 이야기만으로 끝이 나지는 않습니다.

이제 광종은 반대로 균여를 고발한 정수를 처형하고, 정수의 형이 균여를 비방하는 글을 써서 연루되어 있다는 이유를 지목하여 그 사람까지 같이 처형했습니다. 또한 사찰에서 정수가 머물던 곳은 부수어 버리고 그곳에 다른 것을 만들지 못하도록 연못을 파버렸다고 합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덧글

  • 라비안로즈 2019/09/12 10:05 # 답글

    화엄경의 교리의 기본은 그냥 믿으면 뜻에 다다른다..라는 말인것 같습니다.
    기독교랑도 비슷하네요. 믿으면 천국간다라는 뜻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균여에 대해서 저도 그냥 아 화엄종을 통일한 승려다라고만 알았지 자세하게는 몰랐는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게렉터 2019/09/12 16:08 #

    사실 본문 중에 소개해 드린 대목이 완벽한 핵심이라기 보다는 그냥 저 글의 첫 대목일 뿐이라 핵심이 뭐라해야하는지는 너무 어려운 문제 아닐지요?
  • 라비안로즈 2019/09/12 18:27 #

    그런가요. 일부 소개되어있는 글만 보자면 그렇게 보여서 그랬습니다. ㅎㅎ
  • R 2019/09/12 10:44 # 삭제 답글

    이번 시리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누추한 말에 기대지 않고는 심오한 이치를 보일 수 없다"는, 제 생각에는 대승불교의 시발점부터, 그리고 사실은 불교 그 자체의 시발점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원칙입니다. 특별히 잘 들어맞는 부분은 가령 원시불교의 중도와 연기를 空사상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다시금 설파한 용수보살이 쓴 말입니다. "상대에 기대지 않고는 절대에 도달할 수 없다 The absolute cannot be reached without relying on the conventional." 균여의 경우는 위의 리처드 파인먼이 이야기했다는 인용구의 메세지를 마음에 담았을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용수보살이 의도한 바를 더 염두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불교의 어떤 부분들은 사실 말로 전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無我나 중도 같은 경우인데, 그것은 사실 불교가 '철학/사상'이라기보다는(철학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근본상 체현/체득을 통해 익히는 경험칙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들먹거리는 것 같지만(;; ) 이것은 사실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사과 맛을 전하거나, 자전거를 탄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전하는 것과 성격상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과를 건네거나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게 하는 법이지만, 일단 시작하게 하려면 '맛이 좋다'라든지 '왼쪽 페달을 누르고, 그 다음에는 오른쪽 페달'이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식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아예 누추나 심오를 따지기보다 용수보살의 경우 '속세와 열반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다'라든지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리고 아마 대승과 상좌부 사이에서 박터치는 말싸움이 시작되기도 하겠고요.(웃음)
  • 게렉터 2019/09/12 16:07 #

    설명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설명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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