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 - 시수 / 제왕의 공덕과 백성의 공덕은 같지 않다 - 고려시대 명언 고려시대의 명언과 유행어

968년경의 일입니다.

고려 광종은 무자비하게 자신의 반대파들을 제압해 버리고, 온 나라를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게 하여 조금만 잘못을 하면 감옥에 가두고 유배를 보는 엄격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위엄을 높이는 데에도 골몰했으니 어찌보면 광종은 전형적인 독재자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인재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제도를 운영했고,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많이 써서 그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려 했습니다.

돌아 보면 광종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위세를 드높이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너무 엄하게 처벌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당연히 사람들은 점점 광종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무작정 이렇게 나가다가는 궁예처럼 신하들에게 배반 당하여 망할 지도 모릅니다. 무조건 엄히 처벌하기만 하면 결국 사람들은 견디지 못해서 무슨 수를 찾게 됩니다. 광종은 무슨 다른 꾀를 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종은 자신에게 거슬릴만한 인물은 혹독히 처벌하면서도, 여러 백성들에게 자신은 불교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는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선전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광종은 자신의 자비심을 과시하기 위한 불교 행사에 많은 재물을 쓰고 다양한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느끼게 하려 했습니다.

불교를 장려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승려에게 임금이 "나라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국사"라는 칭호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사에서는 아마도 거의 맨 처음으로 승려에게 "국사"라는 칭호를 준 사람도 광종이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종 시대에 맨 처음 "국사"였다고 이야기 되는 인물은 지금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오래 활동했던 혜거국사라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광종이 자비심을 보여 주기 위해 시행했던 여러 정책 중에는 무료 급식소 운영에 과감하게 재물을 썼던 일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도성 한 복판에 길을 따라 아주 길게 연결해서 지어 놓은 커다란 건물이 있어서 복도처럼 걸어 다닐 수도 있고 상인들이 입주해서 장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지하도의 아케이드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복합 쇼핑몰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건물에서 대략 기둥 30개 간격 마다 커다란 통이 있고 거기에 묽은 죽을 담아 놓아서, 누구든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지나가다가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광종 시대에 구체적으로 무료 급식을 얼마나 자주 어떻게 운영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지만, 적어도 968년 무렵부터 고려 조정에서는 도성과 지방 각지의 길 가에 떡, 경단, 쌀, 장작 등을 나눠주는 일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광종의 시대로부터 60년 정도가 지난 1123년에 고려에 온 중국 송나라의 서긍이 쓴 기록에도 "시수(施水)"라고 하여 이렇게 배가 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죽은 퍼 먹을 수 있는 제도가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시수는 직역하면 나눠 주는 물이라는 뜻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의 의미를 따와서 쓴 말인 듯 합니다. 서긍이 특별히 언급해 놓은 것을 보면, 중국 송나라에는 없었던 고려 특유의 복지 제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특히 눈에 뜨이는 대목은 통에 담아 놓은 죽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길 가다가 먹었다는 구절입니다. 아마 천한 사람도 거리낄 것 없이 다가 가서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쓴 말인 듯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한 사람도 종종 먹었다는 느낌을 주는 말로 보이기도 합니다. 시수라는 이 묽은 죽이 임금이 베푸는 자비니까 뜻 깊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해서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다들 조금씩은 맛보는 문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그 사람들만 모아 놓고 밥을 나눠 주는 제도 보다, 이렇게 누구든 거리낌 없이 조금이든 많든 자연스럽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제도가 있을 때의 장점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알아서 찾아 가기도 더 편하고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고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이렇게 음식을 그냥 나눠 주는 제도가 좋은 평을 듣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982년에 최승로가 발표한 "시무28조" 글을 보면 최승로는 성종 시대까지 비슷하게 계승되고 있었던 이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광종 시대에 시작된 음식을 무료로 베풀어 주는 정책은 광종이 사람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선행을 쌓으려고 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최승로는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업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비해 정말로 온 나라 사람들에게 득이 되는 정책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잘못된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최승로는 "시무28조"의 다른 조항에서 "제왕의 공덕과 백성의 공덕은 같지 않다(帝王士庶之爲功德 事實不同 제왕사서 지위공덕 사실부동)"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 말은 불교 문헌에 있던 말을 조금 변형한 것 아닌가 싶은데, 최승로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이런 말입니다.

누가 어떤 종교의 가르침이 정말 훌륭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 종교에 많은 재물을 기부했다고 합시다. 분명히 그 사람은 보람을 느끼고 선행을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가 어떤 종교가 좋다고 생각해서 그 종교에 막대한 세금을 투자한다면 어떨까요? 그런 일을 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세금은 결국 남의 재물을 가져온 것인 만큼 그 세금을 쓰는 사람은 그냥 자기 생각에 막연히 선행 같은 일에 그 재물을 마음대로 쓰면서 "이렇게 선행을 많이 했다"고 생색내면서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어디에 세금을 쓰는 것이 나라 사람 모두에게 좋은 지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승로는 광종이 무료 배식 사업에 세금을 쓴 것은 다른 더 중요한 일에 쓸 세금을 낭비한 것이고, 백성들에게 걷은 세금으로 인심을 배푸는 척 해서 광종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둔 악행을 숨기려는 술수라고 지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무료 급식 제도가 고려 특유의 제도로 당시의 외국인에게 눈길을 끌었던 것 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한번 다시 돌아 보게 하는 점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960년대의 고려에 비해서는 비할 바 없이 경제력이 막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고려 초기 사람들은 기술이 부족해서 벼농사를 지을 때 모내기조차 제대로 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하루에만도 1만 대가 넘는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수백만개씩 반도체를 찍어 내고 있는 곳입니다. 고려 시대 때에도 굶는 사람이 없도록 무료 배식 정책을 나름대로 시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적어도 고려 시대 때 보다는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려시대 청동제 국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 - 공공누리1)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덧글

  • ㅇㅇ 2019/09/13 17:53 # 삭제 답글

    띠기 만들어먹기 좋게 생겼네요
  • 게렉터 2019/09/13 18:29 #

    달고나/뽑기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건 정말 그렇게 생겼습니다. 고려시대 국자 유물은 이것말고도 여러가지가 좀 더 남아 있습니다
  • ㅇㅇ 2019/09/13 19:07 # 삭제

    네 그거 맞아요 우리 동네에선 띠기라고 불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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