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종 - 자손복수 / 동지용선 - 고려시대 유행어 고려시대의 명언과 유행어

977년의 일입니다.

광종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된 사람은 그의 아들인 경종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임금이었던 광종은 자기 아들 경종조차 자신의 임금 자리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만큼 경종은 아버지와 사이가 무척 나쁜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확실히 경종이 아버지 광종의 몇몇 행동을 아주 싫어했던 것 같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경종은 임금이 되자마자 광종 시대에 붙잡혀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모두 풀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드디어 무서운 광종시대가 끝났다고 환호했을 것입니다. 근거는 없지만 어쩌면 아버지 광종과 한때 대립하기도 했던 어머니 대목왕후의 권유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종은 아버지인 광종과 성격이 굉장히 달랐습니다. 광종이 음침하고 무서우며 속을 알 수 없고 의심이 많으면서도 항상 치밀하고 굳건한 성격이었다면 경종은 느긋하고 삶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성격에 가까웠습니다. “고려사절요”의 기록에 따르면 경종이 임금이 된 초기에는 온화하고 사람 좋고 너그럽고 인심이 좋았다고 합니다. 광종에게 질렸던 사람들은 아버지와는 너무나 다른 경종을 무척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경종은 그런 성격 때문에 약간 생각이 짧은 일을 허락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경종은 임금이 된 초기에 광종 때 부모가 희생된 사람은 “복수를 하게 허용 해 주는” 제도를 실시해 버렸습니다. 즉 "자손복수(子孫復讎)"를 허용해 준 것입니다. 임금이 바뀌어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자신과 자신의 부모를 고발한 사람을 찾아 가서, “너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서 결투를 신청 해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976년 한 해 정도의 시간 동안 고려에서는 서로 복수하고 결투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복수를 하기 위해 칼잡이나 암살자를 고용하거나, 스스로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치 비슷한 시기 유럽의 기사들의 결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너무 혼란스러워져 버렸습니다. “고려사절요”에서는 “서로 마음대로 죽여서 다시 원통해 하게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난장판이 벌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종이 특별히 잔인한 성품이었다거나 무예를 좋아해서 이런 제도를 시행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느긋한 성격에 삶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경종은 사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싫어했을 것입니다. 아마 광종 때에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이 워낙 “그때 원한을 풀어야 한다”고 자꾸 간청하는 일이 많으니까 잠깐 그런 제도를 시행했던 것 아닌가 합니다. 경종이 임금이 된 직후, 집정이라는 높은 벼슬에 오른 인물로 왕선이 있는데, 아마 왕선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그런 제도를 구상했을 듯 보입니다.

이 괴상한 제도는 바로 그 왕선이 복수를 한다고 천안부원군의 목숨을 빼앗은 것을 계기로 끝이 났습니다. 천안부원군은 임금의 삼촌 뻘 되는 친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복수를 허용하는 제도 때문에 자기 신하 왕선에게 당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심하지 않냐는 의견이 돌았을 것이고, 결국 경종은 자손복수를 허용하는 제도를 폐지 합니다. 왕선은 관직에서 내쫓기게 됩니다. 어쩌면 왕선은 그 정도는 애초에 각오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면 임금 친척을 처치해 버린 것에 대한 처벌치고는 가벼운 편 아닙니까?

그 후 한 동안 평화롭게 지내던 경종은 점차 향락 생활에 빠져 듭니다.

그래도 본래 성품이 평화로운 사람인지라, 어마어마한 재물을 낭비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놀았던 것은 아닙니다. 좀 방탕하게 살면서 몇 가지 놀이에 열중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원래 경종은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임금으로 뭐든 해도 되는 삶을 살면서 나이가 들어서 나중에 향락에 빠져 든 듯 싶습니다.

경종은 특히 방 안에서 하는 놀이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고려사"에 날마다 "오락"을 일 삼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특히 바둑을 아주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라 후기의 유물 중에는 주사위가 발견 되기도 하니, 경종도 무슨 말판 놀이나 도박 같은 종류에 빠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려시대 작가인 이규보의 글 중에 보면 백개먼 비슷한 주사위 놀이인 쌍륙이 고려시대에 많이 퍼져 있었던 듯 하니, 경종이 쌍륙에 심취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종은 현대로 따지면 아마 게임 중독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경종은 그런 부류의 놀이를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것을 모르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인배를 가까이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런 놀이를 알려 주는 사람, 그런 놀이 상대가 될 수 있는 남녀를 줄기차게 궁전으로 불러 들여서 놀이에 열중했던 듯 합니다.

조금 더 재물이 많이 소모되는 취미로는 “동지용선(東池龍船)”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쪽 연못에 용을 나타내는 배를 띄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궁전의 연못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이야기는 고려 시대 역사에서 몇 차례가 나오는데, 경종이 놀이한 기록이 상당히 초기 기록에 속합니다. 아버지인 광종이 열심히 재물을 모아서 위엄 있는 궁전을 지었는데, 아들인 경종은 거기서 어떻게 화려하고 재밌게 놀까, 궁리를 하다가 궁전 안에서 뱃놀이를 하자는 생각을 해낸 것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동지용선이 어떤 모양이었는 지 묘사는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임금이 타는 좀 멋진 배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보통 용선은 용 모양으로 꾸민 배를 말하니까 용선도 그 비슷한 모양이었을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문화가 많이 퍼져 있었는데 불교에서는 “반야용선”이라고 해서 이승의 사람을 저승으로 태우고 가는 용이 끌고 가는 배, 내지는 용이 변신한 배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통 불교 그림에서는 반야용선을 멋지게 지붕을 씌우고 거기에 수십 명 정도의 사람이 타고 있고, 뱃 머리에는 커다랗게 용의 목과 머리를 달아 놓은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용 머리가 여럿 있을 때도 있고 배의 옆구리에는 용의 다리 네 개를 붙여 놓은 화려한 모습으로 묘사할 떄오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종이 타고 놀았다는 동지용선도 그 비슷한 모양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양암 극락왕생도 중 반야용선 부분 발췌 - 국가문화유산포털 공공누리1)

역시 그렇다고는 해도, 동지용선을 타고 다니며 그 안에서 무슨 대단히 어마어마한 낭비와 사치를 한다든가, 쾌락을 위해서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했다든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경종은 아무래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후대인 1102년에는 "수희잡기(水戲雜伎)"라고 해서 용선을 띄운 뒤에 재주꾼들이 물에서 놀이를 하며 공연을 하는 것, 그러니까 일종의 수중발레 같은 것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중국의 "수희" 기록 중에는 다이빙 놀이를 했다는 것도 있고, 고려시대 의종 때 기록에는 불을 뿜는 서커스를 수영을 하면서 하는 놀이와 결합시킨 것을 보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종에게는 그런 구경을 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역사에 남아 있는 이야기라고는 977년에 과거 시험을 치를 때에 경종이 동지용선을 타고 나타나서 합격한 사람에게 합격증을 주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수험생들이 “나도 시험에 합격하면 임금님 옆에서 일하는 벼슬을 얻을 수 있을까”하고 기대하고 있을 때 경종이 괜히 그냥 아주 멋진 배를 타고 나타나서 멋을 부리면서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좀 하고는 들어 갔다는 정도입니다.


(인터넷에서 괴상한 고려 임금 모습으로 괜히 자주 돌던 이 사진이 KBS 연속극 "천추태후"에 나온 경종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면, 경종의 아버지 광종이 경종을 멀리한 것은 경종을 의심해서라는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경종의 성격이 자기와 너무 다른 점이 못마땅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상상으로 예를 꾸며 보자면, "견훤이 왜 망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경종은 "사람이 너그럽지 못하고 그 자식들끼리 우애가 없어서"라고 대답했겠지만, 광종은 그게 아니라고 하면서 "내부의 반란을 단속하지 못해 망한 것이다"라고 대답할 인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식으로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인데, 그런데도 임금 자리를 굳건히 하려는 자신의 온갖 노력을 생각해 보면 그 자식에게 임금 자리를 안 물려 줄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 괜히 더 미웠던 것은 아닐까요? 하여튼 광종은 당시로서는 평균 수명 정도인 50세까지 살았고 별 수 없이 20대 초의 경종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경종은 그렇게 너그러운 임금으로 편안히 시간을 보내면서 삶을 향락과 함께 즐기며 보낸 것입니다.

경종의 향락 생활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방안에 틀어 박혀 놀이만 하는 삶이 나라에 큰 부담은 안 될 정도였다고는 해도, 자신의 건강에 부담이 안 될 리는 없었을 겁니다. 경종은 임금 자리에 오른 지 6년 정도가 지나자 병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불과 27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덧글

  • 역사관심 2019/09/15 00:46 # 답글

    와, 복수제도에 불을 뿜는 서커스... 정말 고려시대 기록이 좀 더 상세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었더라면, 우리 문화 컨텐츠가 몇배는 다양했을 것 같습니다.
  • 게렉터 2019/09/15 10:59 #

    격구장 기록 찾다가 보셨겠지만, 고려시대 놀이문화 기록은 의종대와 무신집권기에 재밌는 것들이 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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