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 계사지역 / 낙타교 - 고려시대 유행어 고려시대의 명언과 유행어

993년의 일입니다.

거란은 고려 북쪽 먼 곳에 살던 이민족이었습니다. 거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일컫능 “거란”이라는 말을 키탄(Khitan) 비슷하게 발음했던 것 같습니다. 거란 사람들은 나중에 멀리 서쪽으로 이동 해 가서 살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중앙아시아 및 일부 유럽 사람들에게는 거란을 뜻하는 키탄, 키타이(Khitai)등의 말이 중국, 동아시아를 나타내는 말로 남게 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어에서는 아직도 중국을 "키타이" 비슷한 발음으로 부르며, 홍콩 항공사 이름 "캐세이 퍼시픽"에서 중국을 상징하는 말인 "캐세이"도 바로 키타이, 즉 거란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옛날 고려 시대 사람들에게 거란은 아무래도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 사는 곳부터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고려는 한반도에 자리잡고 있어서 이웃나라에 갈 때면 배를 타고 바다를 자주 건너는 나라였습니다. 그렇지만 거란은 내륙 깊숙히 지금의 몽골 고원 방향의 황량한 땅에 발상지가 있어서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을 며칠이고 말을 타고 달리곤 하는 나라였습니다. 조선시대 학자인 이덕무의 "양엽기" 같은 책을 보면, 거란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몸은 사람이지만 머리는 개의 모습을 한 이상한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는 소문에 대한 기록이 있을 정도 입니다.

사는 방식도 확연히 달랐습니다. 고려 사람들 대다수는 집을 짓고 지내면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거란 사람들은 집 없이 떠돌이로 생활하면서 말이나 양을 기르며 먹고 사는 유목민이었습니다. 거란 사람들 특유의 머리 모양을 곤발(髡髮)이라고 불렀는데 머리의 정수리 부분을 삭발하고 옆 머리카락을 남겨 놓는 모습도 고려 사람들에게는 아주 특이해 보였습니다. 고려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때 땅에 사람을 묻지만 거란 사람들은 나무에 사람을 널어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거란 사람들이 쓰는 말도 고려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들렸고, 거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자를 만들어서 쓰기도 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흔히 "거란자명동경"이라고 부르는 거란 문자가 적혀 있는 거울이 있습니다. 그간의 연구로 대략의 내용에 대해서는 추측하고 있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무슨 말을 써 놓은 것인지 거울에 새겨진 거란소자라는 문자가 완벽하게 해독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거란 사람들이 개발한 고유의 문자는 표의문자 성격이 강한 거란대자와 표음문자 성격이 있는 거란소자 둘로 나뉘는데 뒤에 개발된 거란소자도 대략 920년대 중에는 개발된 것으로 봅니다. 한글의 개발보다 5백년 정도 먼저 개발된 문자인 셈입니다.


(거란 문자가 새겨진 거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공공누리1)


(거란 무덤벽화에도 전형적인 거란 머리 모양이 보입니다.)

멀게 느껴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거란이 한반도와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려시대보다 한참 앞서는 삼국시대인 378년에 거란 사람들은 고구려에 들어 온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인 392년에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이끌고 거란을 몰아 붙인 뒤 사람 1만명을 고구려에 데려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려고 시도하던 거란을 광개토대왕이 멀리 몰아 내어 버렸다는 느낌을 받는 기록입니다.

이후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던 시절에도 거란 사람들과 싸우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거란 사람들이 이때 중국 당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당나라 군대가 거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한반도에서 전투에 참여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전쟁 말엽 신라와 당나라 군사들이 싸울 떄 거란 사람들과 싸운 일도 있었습니다. 이때 신라 군사는 거란 군사들을 잘 막아낸 편입니다.

거란과 정말 관계가 깊은 나라는 역시 발해입니다. 애초에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일부터가 거란과 관계가 깊습니다. 당나라에 지배를 받던 거란 사람들 중 일부가 너무 당나라 관리들의 괴롭힘이 힘들어서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반란이 제법 커져서 혼란한 틈을 타서 대조영은 옛 고구려의 후예들과 함께 동쪽으로 멀리멀리 떠나가서 자신들만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발해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동안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던 거란은 야율아보기라는 사람이 임금이 되면서 갑자기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야율아보기는 많은 거란 사람들의 세력을 자기 중심으로 통일하고 주위를 정복하는데 성공합니다. 이어서 925년 음력 12월 겨울에는 거란 군사들을 이끌고 발해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놀라운 대성공을 거두어, 한 달도 되지 않아 발해가 패배해서 망해버립니다.

너무나 어이가 없이 발해가 빨리 망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도대체 왜 이렇게 발해가 쉽게 망한 것인지는 역사의 큰 수수께끼입니다. 심지어 한 동안 백두산 화산 폭발 때문에 발해가 혼란스러워서 망했다는 이야기가 유행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학자들은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하여튼 거란 때문에 나라를 세울 기회를 얻었던 발해가 바로 거란 때문에 망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란이 발해를 무너 뜨려 손에 넣은 것은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 생각일 뿐이지만 거란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초반에 발해를 쉽게 얻었기 때문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말을 타고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거란 사람들에게 발해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집에서 살며 성벽을 건설하고 관청을 운영하는 새로운 문화를 잘 알려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자 거란은 드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중국 송나라와의 전투에서도 승리했습니다. 지금의 베이징 지역인 연운 16주까지 거란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일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거란에게 나라가 망한 발해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던 고려에게는 거란이 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왕건은 실제로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켰으니 원수"라고 대놓고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발해 난민들을 받아 들이며 한 편이 되어야 하는 고려 입장에서는 거란을 같이 욕하면서 대항하자고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왕건이 보여 주는 거란을 미워하는 모습은 발해 난민들에게 왕건이 믿을 만하고 왕건에게 충성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불어 넣어 주었을 것입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둘이서 뒤에서 같이 욕하다 보면 빨리 친해지는 원리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942년에 거란 사람들이 왕건에게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가져왔을 때, 낙타를 만부교라는 다리에 묶어 두고 다 굶어 죽게 만든 것입니다. 거란을 그 정도로 싫어한다는 느낌을 온 도성 사람들에게 강하게 보여 주려고 한 일일 것입니다. 왕건의 그 생각은 통했습니다. 이후로 사람들은 만부교를 낙타교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만부교를 흔히 "낙타교"라고들 합니다.

왕건이 왜 이렇게까지 거란을 싫어했느냐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발해 난민들의 마음을 빨리 얻고 싶어서 발해의 원수인 거란을 최대한 싫어하는 척 했다는 설명입니다. 고려의 역사를 돌아 보면 고려는 난민과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 들이면서 성장한 다민족 국가 같은 면을 가끔 보여 주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발해 사람들이 고려에 넘어 온 숫자는 대단히 많아서, 기록에 남아 있는 것만 봐도 대략 고려 전체 인구의 수 퍼센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숫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인 것을 생각해 보면, 백만 단위의 외국인들이 대한민국 인구로 편입되는 현상과 비슷한 규모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전부터 고려에 살던 사람들과 발해 사람들을 통합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였을 것이고, 이때 거란을 공동의 적으로 정하는 것은 한 가지 쉬운 방책이었을 겁니다. 왕건의 성격을 생각하면, 발해 난민들을 계속 만나는 가운데 한 맺힌 발해 사람들의 그 감정에 왕건 스스로가 빠져 들게 되어 일부러 별로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거란을 미워하는 감정이 생겼을 것 같기도 합니다.

왕건은 후대 임금들에게 남기는 "훈요10조"에도 거란을 나쁜 나라라고 대놓고 써서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왕건이 거란을 두고 "짐승의 나라"라고 했다는 기록까지 보입니다. 왕건이 원대한 생각이 있었다고 높이 쳐 준다면, 발해가 망한 이상 언젠가는 거란과 싸우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서, 그때를 앞두고 단단히 준비하라는 뜻에서 그렇게 강하게 말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왕건이 거란을 싫어한 진짜 이유가 뭐였든지 간에, 낙타들이 영문도 모르고 낙타교에서 죽은 지 4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993년 음력 8월 가을이 되자 거란 군사들은 정말 고려로 쏟아져 들어 왔습니다. 고려 입장에서는 평화로운 성종 시대를 갑자기 깨뜨린 외부의 침입이었습니다. 이것을 요즘에는 "거란의 1차 침입"이라고 하기도 하고 "1차 여요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역사 책인 "고려사절요"에서는 993년이 계사년이라고 해서 이 것을 "계사지역(癸巳之役)"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 사극 같은 곳에서 매번 "사면초가"나 "삼고초려" 같은 중국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비슷비슷한 고사성어만 나오는 것이 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려시대에 인기 있었던 명언이나 유행어 같은 것을 한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이 오히려 한국사의 유명한 말을 더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 이야기 자체가 참신해 보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려시대의 유명한 말인 만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영화, 사극 같은 것에서 주인공들이 옛 역사를 인용하는 대사로 써 먹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33편 정도만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대목 있거나 다른 의견 있으시면 언제고 덧글로 말씀해 주십시오.

덧글

  • 역사관심 2019/09/19 10:20 # 답글

    요즘 시리즈 읽는 게 즐겁네요, 감사합니다. ^^
  • 게렉터 2019/09/19 11:57 #

    감사합니다. 애초에 33회 예정이었는데 어느새 거의 다가 와서 어느 시점에서 완결할지 슬슬 가늠하고 있습니다.
  • Fedaykin 2019/09/19 10:24 # 답글

    임진왜란을 일본에서 분로쿠의 역이라고 한다길래 'xx의 역'이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현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국에서도 오래된 표현이었군요. 재미있는 시리즈 감사드립니다
  • 게렉터 2019/09/19 11:58 #

    부정적인 사건을 의미할 때 종종 쓰는 것 같습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조선 사람 글에서 임진지역 정유지역 이라고 하는 사례도 검색해보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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