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A Thousand and One Night, 1945) 영화

1945년작 할리우드 영화 “천일야화”는 알라딘과 요술램프를 소재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앞서 나와 크게 흥행한 “바그다드의 도둑”과 같은 영화와 비교해 보면 이 영화는 실감나는 효과나 신비로운 면을 적당히 포기하고 그저 뻔뻔하게 웃고 넘어 가려는 느낌을 강하게 집어 넣은 영화입니다. 그리하여 아라비안 나이트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면서도 태연자약하게 텔레비전이라든가, 프랭크 시나트라라든가, “그루비(groovy)”하다는 말 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이야기를 농담 속에 섞어치는 이야기입니다.


(포스터)

그런 즉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난 것은 조연 역할을 하는 필 실버스의 코미디 입니다. 그야 말로 조연 역할로 한정 되어 있고, 영화의 중심 줄기로부터는 확실히 떨어져 있지만, 계속해서 잔재미를 줍니다. 이런 식의 값싼 농담을 주워 섬기는 것은 어째 대충 각본을 짜 놓고 배우에게 “즉흥연기와 개인기로 한번 웃겨보세요”하고 때워서 영화를 채운 듯한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데도 그게 그럭저럭 어울려서 톡톡히 재미를 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필 실버스의 재주가 확실히 재미를 주고 있었습니다. 유쾌하고 수다스럽고 동시에 영리하고 비겁하며,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얍삽하고 비굴한 현대인의 가벼운 모습이 빤히 드러나는 까닭에 웃고 비웃을 수 밖에 없는 그 모습은 이 영화에서 기막히게 드러났습니다. 기억에 남는 재밌는 농담이나 명대사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고, 오히려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보고 놀라서 웃긴 표정을 지으며 기절한다는 등의 모습은 정말 옛 세대의 냄새가 풀풀나는 구식 코미디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그걸 워낙에 본인의 개성을 한껏 살려서 재밌게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천재의 재능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야기의 본령은 코넬 와일드가 연기하는 알라딘의 모험담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그냥 딱 정해 놓은 뼈대 그대로이고, 특별히 대단한 장식은 없습니다. 사실감 있게 세트와 의상을 꾸몄다기 보다는 그냥 20세기 미국 사람들의 환상 속에 있는 막연한 중동 풍으로 꾸려 놓은 무대에서, 요술램프, 지니, 지니의 주인이 바뀌는 것, 마법사, 소원, 아랍의 시장통, 시장통의 소매치기, 왕궁의 공주, 사악한 신하, 하렘 같은 소재들을 차례대로 짚어 나가는 정도였습니다. 대신에 지루한 순간, 질질 끄는 대목 없이 이런 소재를 모두 잘 밟아 나가서 재미난 쇼를 만들어내 보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실감은 나지 않아도 그럭저럭 할리우드 영화다운 화려한 맛은 적지 않았고, 코넬 와일드 중심의 이야기 본 줄기와 그것을 돕는 필 실버스의 코미디가 과도하지 않게 어울리고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옛 관습에 얽매여 이야기를 대충 짰기 때문인지, 굳이 여성 인물이 가당찮은 질투심에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거나 답답한 멍청한 행동을 하는 장면을 박아 넣어서 억지로 위기의 순간을 만들고 있었던 점은 맥이 빠졌습니다만, 대신에 “공주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고 하지만 목숨 걸고 공주의 얼굴을 보는 중세 시대에 들어 맞는 이야기 거리라든가, 계약에 따라 무조건 복종을 하게 되는 지니라는 소재, 하잘 것 없어 보인 뒷골목의 소매치기가 소매치기 재주로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결정적인 위기를 돌파하는 대목, 가난뱅이가 하루아침에 돈을 벌어 돈으로 왕자인척 치장한다는 소재,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요술램프를 찾는 것을 주선해 주는 척 하던 나이든 마법사가 사실은 자기가 요술램프를 찾기 위해서 이용하려는 것 뿐이었다는 점, 위험하다는 동굴 속에 뭐가 있는 지 궁금한데 거인 괴물이 숨어있다든가 하는 기억에 남는 소재들이 가려 주고 있었습니다.


(안경 쓴 사람이 필 실버스)

좀 더 흥겨운 쇼의 즐길 거리를 보충해 주기 위해 넣은 뮤지컬 장면이나, 칼싸움 장면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아라비아와는 아무 상관 없는 20세기 중반 할리우드 모험 영화 방식의 칼싸움을 펼치고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화려하게 되어 있고 코넬 와일드의 솜씨도 훌륭하거니와, 뮤지컬 장면 중에서 술집에서 코넬 와일드와 필 실버스가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가사는 좀 케케묵은 듯 해도, 영화의 두 축인 두 배우가 개성을 잘 뽐내며 이국적인 멜로디를 타는 것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밖에...

1992년 디즈니 애니매이션 “알라딘”의 등장인물 이름은 1940년작 “바그다드의 도둑”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이야기 구조를 보면 이 영화와 닮은 면도 많아 보입니다. 주인공의 친구인 소매치기라든가, 램프의 지니와 주인공의 관계, 공주와 주인공의 관계 등등은 무척 비슷합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판본에 따라서는 알라딘이 중국 출신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알라딘이 왕자로 행세하면서 자신을 “힌두스탄”의 “안 루 샨”이라고 소개 하는데, 아라비아의 전성기와 중국 당나라 때가 겹치는 것을 보면, 당나라의 반란자인 “안록산”에서 따온 이름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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